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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홍'이라는 어감에, 그 어감에 담겨있는 색채에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홍벽돌집'이라는 책 제목에 괜한 거리감을 두었다는 것이 떠올라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만 같다.


분홍벽돌집이라고 하니 왠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환상적이고 아기자기한, 흔히 말하는 '핑크빛무드'가 떠올라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닥 당기지 않는 기분으로 누군가 툭 내밀어준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없이 '분홍벽돌집'이 뭐야? 라는 심정으로. 그런데 내가 얼마나 막혀있었던가...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당황스럽게도 아이들이 쓰는 은어와 속어가 마구 뒤섞여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튀어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내 친구들도 많이 썼던 말이고,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아이들 역시 욕이 아니라 일상용어처럼 쓰이고 있는 언어들인데도 '문학작품'이라는 선입견에 막혀 이런 어색함을 느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책장을 넘겨갈수록 아이들의 대화는 내게 척척 달라붙듯이 익숙해졌고, 이야기는 내가 접해보지 못한 환경이지만 왠지 저자의 치밀한 사전조사를 통한 현실적인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 감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청소년 소설에 흔히 가정형편과 그러한 환경으로 인한 부모의 무관심과 학교에서의 차별이라는 성장배경이 있다면 분홍 벽돌집은 그런 성장배경에서도 착실히 자라나는 모범생을 하나정도 끼워넣어주는 희망도 주지 않고 있다.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게 아이들을 끝까지 내몰고 마는 부모와 교사와 수많은 어른들이 있을뿐이다. 아니, 아니다. 그런 수많은 어른들 사이에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부모다운 부모, 스승다운 스승이 있기는 하다. 그것이 어른의 관점에서 바라본 나의 희망이다.

경계선에 선 아이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천성이 나쁜것은 아니지만 그저 환경에 몰려 벼랑끝에 서게 되어버린 아이들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어쩌면 착한아이와 나쁜아이의 구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존감을 갖고 확실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아이와 자기 자신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해 온전히 서있기 힘든 아이의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의 이야기 줄기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겉돌기만 하게 된 준과 반찬장사를 하는 엄마의 경제력에만 의존해야하는 가정에서 언니와도 비교되어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는 수경의 이야기가 엮이며 경계선에서 흔들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감싸주는 어른들의 모습이 아니라 철저히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이 이야기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아웃사이더로 겉도는 준은 그를 철저히 경멸하는 담임에 의해 학교를 관두게 되고, 친구에게 끌려다니며 원하지 않는 폭력과 비행을 일삼게 되고, 자신의 꿈인 모델이 되기 위해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던 수경은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성매매를 일삼게 되어버리는 일들이 오로지 아이들만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기에 내 마음은 더 불편했다.


끝내 선처되지 않고 결국은 소년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나에게 퍽퍽한 현실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기도 했고, 괜히 어줍잖은 이야기로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라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다는 것에 알수없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절망으로 이야기를 끝내버리기엔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경계선의 아이들을 벽 속에 갇혀버리게 하는 것이될지도 모른다. 물론 준의 앞날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경계선에 높이 세워진 벽을 허물고 있는 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한없이 가벼울수만은 없지만 아이들을 이해하고 손을 내밀어준다는 것은 나의 입장과 나의 가치관과 나의 선입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곳에 있는 아이들이 잡을 수 있도록 내 손을 내밀기만 하는 것뿐임을... 생각하게 된다.

 

written by chika(알라딘)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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