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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던 아이들, 그들은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기 쉬운 계층이다. ‘있는 집’의 자식들이 등 떠밀려 공부하러 학원을 전전하는 동안, ‘없는 집’의 자식들은 관심을 받지 못해 거리로 떠돈다. 거리를 통해서 습득하는 것은 두려움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가족의 관심을 받지 못한 예민한 시절은 고스란히 아픔과 이를 해소할 해방구를 찾게 되는데 같은 ‘동지’들이 모이면 ‘사회의 문제아’로 낙인찍히게 된다.


또래의 어울림이 가지는 위험성은 그들 사회에서의 미성숙한 ‘규율’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폭력적이며 가학적인 규칙은 선배와 후배를 통해 대물림 되며 이를 끊고 나오기엔 여린 어린 가슴이 가진 두려움이 너무 크다. 이들은 그렇게 사회의 최하층으로 전락하고 영영 빠져 나올 수 없는 늪에서 허우적대며 그들과 그들의 자식대로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건강한 사회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 소회계층에 대한 배려와 그들이 스스로 능력을 깨닫고 자신의 힘으로 우뚝 사회에 설 수 있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시스템)가 잘 되어 있는 곳이다. 범죄율도 낮아지고 거리 부랑자와 걸인, 사회 부적응 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도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진국이라 해도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보호까지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곳은 지구상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노력을 하고 그 성과가 있는 사례들은 충분히 있다. 이를 이용하고 점점 심해지는 사회 양극화 속에서 소외받는 아이들을 안아주는 곳.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은 상식만 있더라도 충분히 동의할 일이다.

 


아프리카 케냐 고로고초 마을에서 쓰레기를 주워 생활하던 아이들을 모아 합창단을 설립한지 1년 여, 처음에는 괴성을 내던 아이들이 이제는 경이로운 소리로 세계를 향해 희망을 노래한다. 그들은 이제 세계각국에 초대받아 그들의 목소리로 감동을 전파한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는 국가 지원을 받는 베네수엘라의 음악 교육 재단이다. 오후 1시 30분 학교 수업이 끝나도 폭력과 마약, 매춘이 우글거리는 거리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그들에게는 연주할 악기가 있고 악기를 통해서 하나가 된 아이들이 내는 하모니는 자신들 뿐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감동을 주고 있다. 이는 더 이상 기적의 사례가 아니다 이를 벤치마킹한 여러 나라에서 청소년기에 나쁜 길로 빠지기 쉬운 아이들을 모아 자신의 자존감을 키우고 사회구성원으로서 가치를 가지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우리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우리나라의 교도행정을 비판하면서 회색 담장이 아닌 분홍 벽돌집으로 지어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털보선생님’으로 대변되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어른이 그들 곁에 필요함을 이야기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1등과 서울대를 위한 1%를 위한 교육현장의 ‘들러리’가 되고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을 책임져 줄 곳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길거리에서 교복입고 담배 피는 학생들을 보면 대부분 ‘저 머리에 피도 안마른 XX'라고 하는 어른이라면, 그들을 과연 올바로 봐주고, 인격을 존중해주며, 사랑으로 감쌀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누구나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행동을 했더라도 무엇을 손에 쥐고 있더라도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본인이 가질 수 있도록 주변에서 격려해주는 일은 먼저 어려운 시기를 겪어본 ’어른‘의 일일 것이다.

 


아이들,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은 비단 내 자식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아주 특별한 곳이거나 영화 속에만 나오는 훌륭한 인성의 인생 안내자가 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그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고통, 슬픔이 있기 때문에 어찌 해야 할지 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몰라서 행하는 행동이 철없어 보이고 폭력으로 분출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영영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 아니라 바로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선생님. 그들의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는 선생님만 바뀔 수 없다. 우리가 바뀌어야 선생님도 바뀔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다. 주인공인 ‘준’이 가장 크게 상처받은 대상은 자신에게 자퇴를 강요한 담임선생이었다. 

 

그는 이미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었다. 자기 화를 주체 못하는 거친 짐승일 뿐이었다. 문득 준의 머릿속에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존 키팅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언제나 학생들의 멘토가 되어주던 존 키팅 선생님.

‘내게도 키팅 선생님처럼 이해해 주는 선생님이 있었으면, 키팅 같은 선생님이……’

 

감정으로 학생을 대하고, 학생의 내면을 무시한 채 폭력을 일삼는 선생. 우리가 겪어온 과거의 교육현장에서 아주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랑의 매’로 위장한 폭력은 교육현장에서 더 이상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책을 읽은 많은 어린 학생들이 주인공인 준과 수경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변화에 힘을 낼 것을 응원했다면, 내가 생각한 것은 이런 상황 속에 있는 아이들의 마음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노력일 것이다.


저자가 취재한 불량스런 청소년의 세계는 분명 어려움이 많고 힘이 들었을 것이다. 소설의 내용 중 모든 대화가 그 아이들이 상용하는 속어와 은어로 구성되어 있어 현실감을 더한다. 물론 또래의 아이들이 읽는다면 더 실감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과 친하지 않으면, 도는 들여다보려고 가까이 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디테일이 작가의 진정성을 말해 주는 듯하다.


하이타니 겐지로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동화작가이며 아이들의 교육과 그 또래의 감성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어른과의 소통을 그린 작품들을 써왔다. ‘분홍벽돌집’을 보면서 그 작가의 <태양의 아이>, <모래밭 아이들> 과 같은 작품이 떠올랐다. 작가의 감성과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는 점에서 이었을까.


아이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과연 어떤 배경에 기인한 것인가 연구하고 그들에 한 걸음 다가가 껴안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교육자가 지금 병들어 가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살 수가 있나.” 이 말이 공용어처럼 쓰이는 우리 집 풍경.

공부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언니.

시장에서 반찬 장사를 하는 엄마.

칠공주파와 모여 있는 꼴만 보아도 깻잎머리, 노랑머리, 재수 없는 문제아라고 손가락질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모델을 꿈꾸는 다리가 예쁜 나.

 

 

‘가시엉겅퀴’로 자신을 표현하는 글의 주인공 수경이 떠올리는 자신의 이야기는 어쩌면 자의가 아닌 주변의 ‘손가락질’로 비롯된 아픔과 방황의 길로 유도하는 우리의 의도였을지 모른다.

 (written by 소일-알라딘)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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