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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괴롭거나 부끄러운 일이라서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에 참여해서 아주 일부의 기억만을 잃어버린 아리 폴먼처럼 말이다. 그럼으로써 아리는 자신의 행동이 아주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잊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있었을까. 그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아리는 기억을 잃는 게 아니라 죄책감에 시달렸겠지.



아리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전쟁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알게 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사브라와 샤틸라 마을의 주민이 무참히 학살 당하는 것을 목격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하지만 거기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특히 난민촌으로 돌아가는 노인이 절규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아니,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들을 위해 조명탄을 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그래서 아리는 그때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잊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책으로 펴낸 것이라 중간중간 장면이 급격히 바뀌어서 몇 번을 읽어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배경이 된 사건이 1982년이라니 불과 20년도 안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알게 된 것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서 샤론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잘 몰랐었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샤론이 그 사건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사임시켰고 다시는 국방장관이 되지 못하도록 했단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에 오히려 더 힘이 있는 총리가 되었으니 이스라엘 국민의 속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뭐,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대통령으로 선택한 우리도 오십 보 백 보일 테지만.) 그들이 자기네는 평화를 존중한다고 해도 과연 그 말이 진실인지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긴 지금도 전쟁을 일으키고 팔레스타인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하는 걸 보면 그런 말을 할 사람들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나마 작은 희망을 갖는 것은 이와 같은 자기고발적인 영화를 만들고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뽀죡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사태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그 일의 발단이 그다지 오래된 것도 아니라는 데 있다. 문득 결자해지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 결자의 힘이 약하니, 원. 만약 팔레스타인이 힘이 있었다면 이스라엘이 그렇게 나올 수 있었을까.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 취했던 행동들은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인들은 그동안 학대받았던 것을 기억해 내면서 다른 민족을 똑같이 응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대민족의 생활방식과 교육방식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난 그것마저도 괜히 거부감이 든다. 그들이 그렇게 교육시키고 철저하게 생활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들끼리만 잘 살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배타적인 것은 분명 옳은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남을 인정할 줄 아는 관용이 통하는 세계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Posted by 소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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