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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의는 인류의 최우선 가치다. 우리는 인류에 대한 미래상을 가지고 그것을 열렬히 믿는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은 ‘동일하게’ 평등하다.”
_ 메어리드 코리건매과이어, <노벨 평화상 수상자와 함께하는 평화학교, 다른출판사 중에서>




종교적 분쟁이 끊이지 않은 아일랜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메어리드 코리건매과이어Máiread Corrigan-Maguire는 1944년 1월 27일,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있는 아주 가난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창문을 닦아서 벌어오는 적은 돈으로 살았다.

 아일랜드는 12세기에 영국이 침입해 오면서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600년대에 영국의 신교도들이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에 이사를 오면서 종교 갈등도 시작되었다. 이 두 집단의 갈등과 폭력은 1921년에 남부 지방이 아일랜드로, 북부 지방이 북아일랜드로 나뉠 때까지 계속 되었다. 

갈등의 시대: 종교와 정치 분쟁
북아일랜드의 갈등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어 1969년부터 1998년까지를 ‘갈등의 시대’라고 불렸다. 북아일랜드의 갈등은 단순히 가톨릭 신자들과 신교도들의 종교적 차이 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북아일랜드의 통치 방법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주로 가톨릭 신자였던 민족주의자들은 북아일랜드가 아일랜드 공화국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신교도들인 연합론자들은 북아일랜드가 영국 연방의 일부로 남기를 주장했다.

 북아일랜드는 철저한 분리의 땅이었다. 많은 집단이 가톨릭과 신교로 나뉘어졌고, 사람들은 서로를 심하게 불신하고 두려워했다. 가톨릭 신자들과 신교도들은 따로 떨어진 가게에서 장을 보았고, 학교도 따로 다녔다. 이러한 현상은 북아일랜드 전역에 걸쳐 일어났다. 특히 벨파스트는 이런 긴장과 갈등이 가장 심한 곳이었다.

 조카의 죽음 앞에서 우뚝 선 여인
메어리드는 1976년 8월 10일, 언니와 어린 조카들 네 명이 벨파스트의 거리에서 차에 치이는 사고를 겪게 된다. 대니 레논이라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병사가 신교도인 영국군의 총에 맞고 도망치다가 차 사고를 낸 것이다. 그 사고로 메어리드의 언니인 앤은 아주 심하게 다쳤고, 조카 네 명 중 한 아이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민족주의자들이나 연합주의자들을 탓하고 비난해 보았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아이들이 헛되게 죽은 것에 격분했다. 사람들은 극도로 흥분한 채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려고 거리로 모여들었다. ‘갈등의 시대’에 벌어진 폭력에 대한 무감각과 무분별한 죽음에 북아일랜드와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평화 행진
메어리드는 사건 직후 현장을 본 여성 베티 윌리엄스와 기자인 친구 시아란 매케온과 함께 매주 대규모 평화 행진과 시위를 벌였다.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그리고 영국에서 온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폭력을 끝내자는 이 행렬에 참가했다. 1976년에 일어난 북아일랜드 역사상 가장 큰 평화 시위이자, ‘갈등의 시대’ 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시위였다. 벨파스트에서, 런던에서, 그리고 많은 다른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국제적 관심이 이 평화 시위 행렬에 쏠렸다.

 메어리드, 베티, 시아란은 평화 시위를 점점 확대해 나가기 위해 ‘피스 피플’을 결성했다. 그들은 학교, 휴양 시설, 거주 지역 같은 지역 시설을 통합해야 진정한 화해와 폭력 방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메어리드는 북아일랜드의 갈등과 충돌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데 삶을 바쳤다. 30여 년간 평화로운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비폭력이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퍼트렸다. 북아일랜드의 공동 단체들과 정치적 지도자, 교회 지도자 들과 쉬지 않고 일했고, 가톨릭과 신교로 철저히 분리된 단체에 가서도 대화를 끌어낼 방법을 찾았다.

 폭력 없는 미래를 위해 헌신
평화 운동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사라졌을 때도, 사람들이 면전에서 자신을 조롱하고 무시할 때도 메어리드는 평화를 위해 계속 일했다. 평화가 북아일랜드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님을 메어리드는 알고 있었다. 메어리드는 전 세계의 폭력 없는 미래를 위해 온 힘을 쏟았다.

1976년, 메어리드 코리건매과이어와 베티 윌리엄스는 북아일랜드에서 폭력에 반대해 온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들은 이렇게 수상 소감을 말했다.

 “우리는 생명과 창조 편에서, 전쟁과 파괴를 반대합니다. 증오로 가득 찬 폭력은 멈춰야 한다고 소리 높여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리 높여 말하는 것 말고도 뭔가를 또 시작했습니다.”

 메어리드는 이후 연설과 글을 통해 자기 생각을 알리고, 풀뿌리 평화 계획에 참여하여 세계에 희망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힘쏟고 있다.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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