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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레바논으로부터 북부지역을 폭격당한 이스라엘은 1982년 7월. 방위군을 동원해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당초 계획은 이스라엘 북쪽을 위협하는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이 주둔한 지역의 미사일 저장고를 제거하고 이스라엘과 레바논 접경지역에 40킬로미터의 안전지대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은 이 같은 당초의 계획을 베이루트 점령 후 자신의 기독교 동맹인 바시르 제마엘을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지명하는 극단적인 계획으로 바꿔버렸다. 이 계획은 샤론과 군 수뇌부만 알고 있었다. 샤론과 이스라엘 군 수뇌부는 이스라엘 북부에 대한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고 시리아를 견제하기 위해 전선을 확장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곧장 진격했고 1주일 만에 베이루트 외곽을 포위했다. 1982년 8월. 이스라엘 방위군은 베이루트를 봉쇄하고 진입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이 시기에 레바논 주둔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베이루트에서 튀니지로의 퇴로를 확보하는 조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그들은 이미 튀니지로 몸을 피한 상태였고, 따라서 이스라엘 방위군의 베이루트 침입 위협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팔랑헤당 민병대가 지도자인 바시르 제마엘이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제마엘은 아주 카리스마가 넘치고 패션 감각이 넘치는 젊은이로서 기독교 민병대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이스라엘 지도자들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제마엘이 레바논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이스라엘과 레바논 양국 사이의 긴장이 완화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1982년 9월 14일 대통령 취임을 9일 앞둔 시점에서 바시르 제마엘은 폭탄테러로 살해되었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오늘날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날 오후, 이스라엘 방위군은 서부 베이루트 지역에 있는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포위했다. 그리고 9월 16일 이스라엘 군이 쏘는 조명탄의 호위 속에서 바시르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팔랑헤당 민병대는 난민촌으로 들어갔다. 기독교 민병대의 진입 목적은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난민촌으로부터 색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무장세력들은 이미 2주 전에 모두 튀니지로 떠났기 때문에 난민촌에는 노인들과 여자들 그리고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 사흘 동안 기독교 팔랑헤당 민병대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난민촌의 팔레스타인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오늘날까지 정확한 희생자의 숫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3,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량학살 소식은 곧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수만 명의 자발적인 이스라엘 시민들으 s이스라엘 정부로 하여금 이와 관련된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들과 군 수뇌부를 조사하도록 공식 조사 위원회를 만들라고 압력을 넣었다. 조사 위원회는 아리엘 샤론 국방부장관이 대량학살을 인지하고도 그 학살을 멈추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샤론은 해임되었고 다시는 그가 국방부장관이 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도 20년 뒤에 이스라엘 총리가 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2006년 아리엘 샤론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현재까지 식물인간 상태이다.

- <바시르와 왈츠를> 5쪽 내용 인용

Posted by 소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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