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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번씩 읽었던 <바시르와 왈츠를>


예전에 한문 배우러 다닐 때 강독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매일 아침마다 삼국유사를 한 페이지씩 본다고 했다. 매번 들고 다니면서 읽는 게 삼국유사이지만, 아침에 읽을 때마다 새로운 관점이 열린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논어나 맹자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생각날 때마다 읽곤 했는데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최근에 좋은 기회가 생겨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을 보았는데 영상미와 음악이 돋보였다. 그래서 책으로 나왔을 때 얼마나 다를까 하여 보았다. 처음에는 영화의 이미지와 책의 이미지가 같기 때문에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을 더 뒤적거리다 보니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단순히 팔레스타인 학살 사건을 주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감당해야 할 폭력과 황폐화, 그리고 전쟁 경험으로부터 훨씬 멀리 도망갔는데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스라엘 퇴역병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전쟁에서 죽는 것과 죽이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전쟁 첫 날이었다. 나는 채 열아홉 살도 되지 않았다. 아직 면도조차 시작할 나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호위를 받으며 한편은 과수원이고, 다른 한편은 바다 길을 끊임없이 총을 쏘며 내달렸다.
누구를 향해 쏘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단지 총을 쏘아댔다. 미친 사람처럼 정신없이.
..........

전차병 : 무엇을 해야 하죠? 당신은 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죠?
장교 : 쏴
전차병 : 네? 
장교 : 나도 몰라. 그냥 쏴.
전차병 : 기도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장교 : 그럼, 총을 쏘면서 기도 해.

- <바시르와 왈츠를> 35~37쪽



전쟁의 모티브가 됐던 사브라ㆍ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학살만 기억하기 쉽지만 학살은 맨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등장할 뿐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학살보다는, 학살로 가기 위한 지난한 과정일 것이다. 그 안에 자신의 존재가 갇혀 있기 떄문이다. 책 안의 심리 실험도 흥미로운 주제였다. 전쟁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기 팔다리를 자르듯이 기억의 못된 부분을 잘라버리는 인간의 코나투스(자기생존본능)가 절절히 흐르는 것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120쪽 남짓에 불과한 데다 만화책이기 때문에 10분 정도면 일독이 가능하다. 하지만 10번 정도 읽어야 작가의 메시지가 하나 둘 잡힌다.


광고불매운동과 바시르 사건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내용에만 천착하는 게 아니라 현실과 갈마들며 살펴보게 된다. 그렇게 하는 독서가 나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리하게 관련을 짓는다는 느낌이 나더라도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다.
사브라ㆍ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정부를 실각시키고 수립한 괴뢰정권의 수장 바시르의 암살 사건에서부터 비롯됐다. 바시르를 따르던 팔랑헤당 당원들은 우리나라 현대사로 따지면 '서북청년단원'(서청)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승만에게 서북청년단이 있듯이 바시르에게는 팔랑헤당이 있었다. 팔렝헤당 당원들이 바시르를 따르는 것은 거의 광적인 추종에 가까웠다.



팔랑헤당 민병대들은 항상 바시르의 사진을 몸에 지니고 다녔어. 바시르 목걸이나 귀걸이. 바시르 시계 그리고 이러저러한 바시르 등을.
바시르는 그들의 우상이었고, 슈퍼스타였지.
그들이 바시르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일종의 에로틱한 것이었어.
그런데 그들의 우상이 왕관을 쓰기 직전에 살해된 거야.
바시르의 죽음에 대한 복수가 끔찍할 것이라는 건 너무나 명백했어.
- <바시르와 왈츠>를 94쪽


이스라엘 군대의 비호를 받으며 사브라ㆍ샤틸라에 도착한 민병대원들은 그러나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이 시기에 레바논 주둔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베이루트에서 튀니지로의 퇴로를 확보하는 조약을 체결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 튀니지로 모든 병력이 피신했고 남은 것은 어린이들과 노약자뿐이었다. 그들이 민병대원들의 처참한 희생량이 되었다. 파악된 것으로만 3,000명이다.

'뒷북 학살'이라는 건 시공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패턴이다. 우리 속담에도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라는 말이 있듯 제주 4.3 때도 무장대원들에게 습격을 당한 토벌대들은 무장대 색출을 핑계로 무고한 양민을 대량 학살했다.

조중동도 이에 비유할 수 있다. 2008년 5월 100만 인파가 분노의 촛불을 들었을 때 조중동은 대표적인 심판대상이었다. 시민들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조중동에 광고하는 기업에 대해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개씩 광고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본 조중동은 '희생량'이 필요했고 그것이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라는 카페다. 사실 그들은 조중동이 받았던 충격과 크게 관련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카페 개설자와 도우미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국가기관인 검찰과 공모해 탄압을 가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에 'ㅎㅎㅎ'라는 댓글을 달았다는 사실을 적시했고, 카페 메인화면에 태극기를 그려넣은 넣었다. 참 궁색하다. 검찰은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24인 대부분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언론운동을 '살인'(초범)과 같이 보는 검찰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서로 격렬히 싸우다 많은 전사자를 낸 전쟁보다 더 처참한 것은 전쟁이 끝난 후 패잔병들에게 학살을 당하는 상황이다. 조중동과 검찰의 뭇매를 맞고 죄인 취급을 당한 언론시민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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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4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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