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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곳'에 있었다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책을 출간하겠다던 출판사 관계자와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의 제목도 <바시르와 왈츠를>(WALTZ  WITH  BASHIR, 2008). 책의 부제를 붙여달라는 것이 영화를 공짜로 보여주는 조건이다. 그가 붙인 부제는 "지옥으로 내몰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였다. 이스라엘인이 저지른 팔레스타인 학살사건이 주제인 이 영화는 얼핏 들으면 현실과 겹친다. 택시를 타고 영화관으로 가는 길에, 나는 최근에 보았던 기사를 바탕으로 부제를 마구 뱉어냈다. "팔레스타인, 죽음이 고통의 끝은 아니야."나 "홀로코스트는 전염된다, 팔레스타인" 따위의 부제를 떠올리며 왜 이것이 부제가 되어야 하는지 마구 떠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자 앞서 언급했던 부제들이 쏙 들어갔다. 나는 순간 <바시르와 왈츠를>이 예술작품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 같다. 예술작품은 특정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 점점 거대한 역사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이 현실과의 차이점일 것이다. 이 '예술작품'에서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개인은 아리 폴만(Ari Folman) 감독 자신이다. 26마리의 개에게 쫓기는 악몽을 꾸었다는 친구(보아즈 레인 부스키라)의 이야기가 아리 폴만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었다. 그런데 폴만은 친구의 '개꿈'이 왜 자신의 잊힌 꿈을 일깨웠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꿈이 나를 가지고 장난을 친 것이거나, 내가 꿈을 가지고 장난을 친 것이리라. 그는 절친한 정신과 의사 친구 오리 시완으로부터 이론적인 도움을 얻는다. 즉

"기억은 역동적이야.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우리의 정신은 가끔 아주 세세한 일을 놓치기도 해. 하지만 도저히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블랙홀 같은 공간을 품고 있기도 하지."

그는 기억을 복원해줄 친구를 찾으라고 조언을 해준다. 나는 아리 폴만이 일종의 '폭풍의 눈'을 머금고 있다고 느꼈다. 폭풍의 테두리에는 엄청난 비바람과 천둥이 내려치지만 폭풍의 눈에서는 고요한 적막과 함께 공포심만 배양된다. 아리 폴만이 기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레바논이 아니라, 서부 베이루트만이 아니라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 사브라와 샤틸라에서 3,000여 명의 민간인 학살이 발생했는데 대부분이 노인과 어린이들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아무도 일어나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화는 주인공이 기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20년 전의 학살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며 사건의 핵심으로 도달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의 훼손된 기억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 사람들도 사실은 '그 사건'에 관한 기억이 훼손된 상황이었다. 잠재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법정의 기록은 어느 누구의 소설보다도 스릴이 풍부하다. 왜냐하면 예술이 손을 대기 꺼려하거나, 또는 겉으로밖에 손을 대지 않는 인간 영혼의 암흑면에 빛을 던져 밝혀 주는 것이 바로 그러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도스또예프스키)

그런데 주인공이 왜 훼손된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가 불분명하다. 예술작업 안에 정치적 논쟁이 끼어들었다는 의혹이 들기 충분하다. 좀 안 좋게 말하면 '민피용' 영화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유대인이 미국의 금융계뿐만 아니라 예술계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2009년 오스카에서 수상할 것이 유력하리라는 주장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주인공의 꿈처럼 모호한 영화의 메시지가 아무리 아쉽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를 꼭 보아야 하는 이유는 이런 식의 전쟁영화, 특히 중동을 다룬 영화가 전무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사브라', '샤틸라'라는 검색어를 입력해 보았다. 나 역시 생전 처음 듣는 용어였다. 전두환 시절의 일이다. (1982년) 하지만 검색어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3년도 안 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작품이 당시 학살에 관한 거의 유일한 정보다. 지저분한 정치적 거래가 어린 인권을 마음껏 살육한 충격적인 사건을 신문기사나 논픽션이 아니라 예술작품으로 처음 맞게 된 것은 일반독자로서 어쩌면 행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제작비 문제 때문인지 숏컷이 충분치 않아 동작이 부자연스러웠지만 영상은 눈을 즐겁게 하기 충분했으며 영화 안에서 만나게 되는 음악들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동시에 전쟁에 관한 허무하고 일상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쏟아냈다. 그리고 현실을 조롱하는 듯한 패러디 영상이 질 높게 펼쳐졌다.
이 영화가 전쟁에 대해서 보여준 관점이 무척이나 깊이가 있었다. 그것은 감독이 전쟁의 한가운데를 살아왔으며 전쟁을 일상처럼 느끼는 상황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의 전쟁영화는 전쟁을 '신비'로 다룬 반면, 이 영화는 '현실'이자 '일상'으로 다뤘다. 그것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전쟁은 이미 일상이 돼 버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감독의 선언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영화가 끝난 후 방청객을 봤을 때는 또 다시 충격을 받았다. 방청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켠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자막이 내려갈 때까지 나를 포함한 방청객들은 먹먹한 마음으로 자막이 약속된 장소까지 행렬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영화가 끝나고 그 출판관계자와 맥주를 마시며 나는 그가 원하는 카피를 내놓지 못했다. 이슬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중동의 복잡한 정치사, 사브라 샤틸라 학살 사건 등 이 모든 것들이 생경할 수밖에 없는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카피를 써달라는 '값싼' 조언만을 해줄 수 있었다. 당신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카피를 생각하겠는가?

▲ 87분짜리 러닝타임을 120여쪽으로 압축해서 보았다. 같은 그림을 쓰고 있지만 읽는 맛은 달랐다. 영화에서 내가 캡처한 장면과 비교하면서 읽었더니 재미가 쏠쏠했다.
Posted by 소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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