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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4 "누구나 소설 쓰는 시대" <한겨레>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시장에서 이야기꾼이 돈을 받고
적벽대전이니 최척전이니 채봉감별곡이니를 읊어 나가던 시절,
구전으로 끊임없는 리메이크를 거듭하던 공동 독서 혹은 창작의 시절,
그때 그 사람들에게 소설이란, 그야말로 소설 뭐 별 거 있나, 아니었을까.

요즘 들어 글쓰기 관련 책들이 대유행하고,
대중들의 문학 창작에 대한 욕망 또한 곳곳에서 눈에 띈다.
소설이 장르로서의 장벽 없이 창작층을 넓혀 가는 것은 실로 반가운 일이다.

오래 지난 기사긴 하지만 "누구나 소설 쓰는 시대"라는 한겨레의 기획을 담아 본다.
작품 공모전이나 소설 창작 강의 목록이 들어 있어 유용한 정보가 될 듯하다.





누구나 소설 쓰는 시대



[한겨레21] [표지이야기] 거액 공모전이 늘어나고 인터넷 창작 사이트가 문턱을 낮춰…

몰입과 상상의 짜릿한 매력이 점점 사람들을 붙드네


“박완서 좋아.” “누군데? 가순가?” “그건 박완규고. 됐어.”

지난해까지 권태성(28)씨에게 소설가 박완서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런 대화를 나눴던 여자친구는 시인과 바람이 나서, 찬바람이 부는 날 그를 떠났다. 올 초 서울 강동에서 멀리 종로까지 영화를 보러 갔다가 서점을 들렀다. 그는 한 번도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결석과 출석이 반반이던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도 끝까지 다 읽어본 게 없다. 큰 서점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와 들른 뒤로 처음이고, 초등학교 때 만화책을 보러 들락거리던 뒤로 서점 자체도 오랜만이다. <외딴방>, 여자친구 방에 있던 소설이 눈에 띄었다. “너는 우리들 얘기는 쓰지 않는구나, 차가운 물이 한 글자씩 이마에 떨어졌다”는 문장이 그의 이마에 차갑게 떨어졌다. “단어를 다루는 사람이 존재하는구나.” 그날부터 소설을 잡았다. 소설 읽는 사람을 찾아 문화센터 강좌에 등록했다. 소설을 쓰는 강좌였다. ‘숙제’로 주인공 이름이 ‘태성’인 생애 최초의 소설도 썼다. 여자친구한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왜 나한테 책 읽으라고 그러지 않았어?”로 시작한 대화는 ‘너무 밉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독후감’을 읊으며 길게 이어졌다.

“태성은 유치장에 끌려가다가 창밖을 보는데, 이른 새벽 점점 푸른빛으로 변해가는 하늘에 별 같은 작은 불빛이 하나 있다. 태성은 눈을 떼지 못하고 보는데, 그 불빛이 움직인다. 태성 허탈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교도소. 독방만 아니라면, 지금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권태성의 첫 소설 <컨테이너에 가라앉은 광어> 결말

도대체 누가 소설을 쓰는가. 한 줄에서 다음 줄로 옮겨가는 눈동자가 움직임의 다인 세상이, 화려한 색깔과 빵빵 터지는 음악으로 무장한 세상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가. 놀랍다. ‘문학이 죽었다’라고 쉽게 말하는 세상에 고요한 견딤은 여전히 힘이 세다. 소설가 통계도 완전하지 못할 터이니, 소설가 지망생 수를 알 방법은 묘연하다. 간접 추론. 완성하지 못하고 꿈만 꾸는 자 많겠으나, 많은 이들이 마지막 마침표를 찍은 작품을 신춘문예 공모에 보낸다. 이 신춘문예 응모자 수는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문학동네신인문학상의 경우 1997년 1년간 328편이 문을 두드렸는데, 10년 만인 2007년 1천 편을 넘어섰다. 3배다. 2009 경향신춘문예의 경우 단편소설 부문에서 지난해의 3배인 1075편이 몰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모전 자체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그렇다. 위즈덤하우스·SBS·쇼박스 등 출판사·방송사·영화사가 공동 주최한 1억원 고료의 멀티문학상이 올해 7월 첫 당선자(김이환 <절망의 구>)를 배출했다. 응모작은 국내 장편소설 응모로는 역대 최대인 448편을 기록했다. 올해는 높은 상금을 내건 공모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한겨레문화센터는 중급 소설 작법 과정인 ‘소설 창작 과정’ 주말반을 4월 추가 개설한 데 이어, 등단을 겨냥한 ‘소설 창작 아카데미’를 8월21일 개강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은 지난 7월15일 창작 블로그를 열었다. 한 달 반 만인 9월1일 현재 창작 블로그 연재자 수는 857명에 이른다.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1만2천 명 내외다. 알라딘은 7~8월 중 신규 가입자 수가 23% 증가하면서 인터넷 서점 중 유일하게 증가세를 보였다. 홍보팀에서는 창작 블로그로 인한 새로운 신입회원 영입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시민혁명·산업혁명·종교개혁 등은 근대사회로의 발달을 재촉했고, 이와 더불어 시민들이 자각하고 그들의 삶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때 나타난 소설 속 주인공들은 보통 사람들이나 천민들이었다. 귀족이나 왕 같은 인물에서 보통 사람, 일반 서민들로 바뀐 것이다. 이때부터 소설은 시로부터 왕좌를 빼앗게 되었다.” -한승원, <한승원의 소설 쓰는 법>

인터넷이 보통 사람의 글쓰기를 유도하더니 이제 진입장벽이 높았던 소설도 스스로 그 벽을 낮추고 있다. 박진 문학평론가는 전문적인 글쓰기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글을 쓰는 게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다. 예전에는 평론가의 영역이 따로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 영역이 허물어지고 있다. 시사평론가, 영화평론가, 기자들 다 마찬가지다. 소설도 꼭 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소설, 이것은 소설 아닌 것 같은 구분도 일반인에게서는 사실상 사라져가고 있다.” 알라딘 창작 블로그의 방문자 상위 10위 안에는 일반인 블로그 4개가 포진하고 있다.

무려 4위에 랭크된 <내 이름은 나정연>을 연재하는 차새(본명 임정빈)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첫 회에 붙인 ‘작가의 변’에서 그는 “제 청소년 시절 마지막 작품이자 최고의 작품으로 기억에 남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차새는 중학교 때부터 소설을 썼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나지 않”아서 시기가 모호한) 중학교 1~2학년 때 쓴 <사형>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형수가 과학에 이용당하는 이야기이고, 지난해 겨울에 100회 분량을 쓴 <사기의 신>은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에 영향을 받아 구성한 추리소설이었다. <내 이름은 나정연>에 대해선 “횟수는 200회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며 지난 2월부터 메모를 해온 작품이다. 제목이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주는데, 앞은 밝지만 뒤로 갈수록 어두워진다”라고 설명한다. 차새에게 한 회라 함은 스크롤바를 내려 지겹지 않은 분량일 텐데, ‘어른’ 기준으로 따지자면 7~10매 정도의 분량이다. 200회 소설의 토막 역시 ‘책만 읽는 어른’이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나뉘어져 있을 것이다. 차새는 소설을 쓰는 이유를 “제가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거운데,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서 즐기면 더 좋지 않나요?”라고 말한다. 종이로 나온 출판물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이들과는 다른 ‘소설 메커니즘’이 차새를 비롯한 청소년에게 존재한다. 읽는 것은 쓰는 것이고, 영향을 받는 것은 창작하는 것이다.


‘소설가’가 소설을 내는 시대도 지났다.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씨도 소설책을 펴냈다.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은 게 있고 글로 표현하고 싶은 게 있잖아요.” 소설가 정이현을 우연히 만난 자리였다. “모임을 하나 만드시지요.”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주위 사람 4명을 끌어모아서 모임을 꾸렸다. 등단한 작가도 있었고, 초짜도 있었다. 주위에서 속속 “쑥스럽지만, 나도 예전부터…”라며 ‘커밍아웃’하는 사람들이 합류해 지금은 모임 인원이 10명에 이른다. 그리스 사람들처럼 느릿하게 걸으며 쓴 여행기 <지중해식 인사>는, 모임을 거치면서 여행과 소설이 결합된 <도쿄 펄프 픽션>으로 발전했다. 이미지로 생각하는 습관이 된 이강훈씨의 소설은 이미지가 먼저다. 일러스트레이션과 곁들여 아귀가 맞는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지는 않는 이강훈씨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즐거워서다. “여행기를 책으로 낼 생각을 했는데, 너무 재미없더라고요. 여행 경험의 플롯에 상상을 집어넣으니까 재밌었어요. 상상하니까 여행도 즐거워졌지요.”

일군의 소설가 무리에 최근 합류한 차관급 공직자도 “너무 즐거워서” 소설을 썼다. 최민호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은 자신이 펴낸 <아웃터넷>을 ‘지식 기반 소설’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2002년 충남 안면도 국제꽃박람회조직위원회 전시유치부장으로 식물 공부를 하면서 소설 구상을 했다. 공부와 소설이 함께 시작됐다. 2005년 미국 연수를 간 1년, 텅 빈 여가 시간을 그는 소설 쓰기로 채웠다. “제가 가진 식물 지식을 쓰고 싶었는데, 그런 이야기는 아무도 안 읽잖아요. 소설이라는 당의정을 입혔죠.” 전략적 사고가 만난 것은 달콤함이었다. “막상 겁없이 시작을 했는데, 의외로 재미가 있었어요. 상상한다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습니다. 소설에 꽃나무와의 대화가 나오는데, 대화 모두가 상상일 수밖에 없죠. 구상한 것을 컴퓨터로 치는데 빨려 들어갔습니다.” 한번도 맛본 적이 없는 몰입이었다.

소설에선 예상치 못한 즐거움의 축복이 쏟아져내린다. 붙들리면 사로잡힌다. 사로잡히면 붙들린다. 누가 보지 않아도 좋다. 이은정(36·가명)씨는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소설을 쓴다. 독자가 있는 작가 시절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 재미없는 수업 시간에 끄적여놓으면 반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순서대로 돌려가면서 본 ‘로맨스 소설’의 작가였다. 작가 기질은 드라마를 보면서 “에이씨, 나라면”으로 발현됐다. 내 마음대로 결론을 써보고 싶었다. 소설 욕망은 ‘자기 목적성’을 가지고 팽창해갔으니, “결혼은 했는데 2~3년 지나니 이 남자가 이상형이 아니었다. 묵묵히 지지해주고 따뜻하게 감싸안아줘야 하는데…” 현실의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경우 많은 사람들은 바람을 피운다. “바람을 피우려니 귀찮기도 하고, 바람을 피운다고 만나는 남자가 이상형일 리도 없다.” 그는 이상형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조각해내기 시작했다. 경찰직 공무원 생활을 잠깐 쉬면서 다니는 대학원의 방학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또는 밤에 공부한다고 컴퓨터방에 박혀서 소설을 썼다. 중학교 시절의 ‘로맨스’에 결혼 뒤의 ‘경험’이 생생함을 더했다. “살림이 안 된다. 대충 청소하고 글 쓰러 방에 가고, 애한테도 대충 있는 거 먹일” 정도로 소설에 붙들렸다. 소설 쓰기는 연애처럼 정신 못 차리게 짜릿했다.

“이미 짐작을 하신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일기를 적거나 편지를 쓰거나 그런 것에 자주 매달리는 사람들은 대개가 바깥 세계에서 자기 욕망의 실현에 실패를 하는 경향이 많은 쪽이기 쉽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현실의 질서에는 자신이 굴복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번에는 그 세계가 거꾸로 자신에게 굴복해올 수밖에 없도록, 그 세계 자체를 아예 자기 식으로 뒤바꿔놓을 수 있을 어떤 새로운 질서를 음모하기 시작한단 말입니다. 좀더 문학적인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자기의 삶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일종의 복수심이지요.” -이청준, ‘지배와 해방-언어사회학 서설3’, <자서전들 씁시다>

이성은(34·가명)씨는 딱 한 편의 소설을 썼다. 어느 날 회사에서 밤늦게 퇴근을 했다. 새벽 1시였다. 택시를 불렀다. 윗분의 심기가 불편해 여기저기 폭탄을 맞은 동료들이 함께 택시를 타고 갔다. 아가씨가 3명이었다. 택시 운전사는 3명의 아가씨에게 “어디서 일하는 분들이슈”라고 음침한 눈길을 보내더니, 3인의 억울하고 기가 막힌 사정 이야기를 잠자코 들은 뒤 한마디 말을 던졌다. “그런 회사는 확 불을 질러버려야 돼.” 그날 밤 이씨는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운전사는 그날 밤 그 회사를 찾아갔다. 그의 손에는 시너와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고 끝나는 소설을 썼다. “사이트에 올렸다가 조회 수도 낮고 부끄럽기도 해서 삭제했지요. 그런데 글 쓰는 중에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정도로 쾌감이 있더라고요.”

소설은 구제 불능으로 약한 자들의 이야기다. 약하지 않은 자 누가 소설을 쓰는가. <소설 이명박>처럼 재미없는 소설이 있을까. 그들의 예를 들면,

‘나’는 발레리노의 다리를 닮은 육감적인 굴곡의 손가락을 가진 남자가 베푸는 친절과 호의를 뿌리칠 수가 없어서 그 남자와 스타벅스 카페라테 톨사이즈를 끊임없이 마시고, 남자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 이야기를 한 뒤에는 그 손길이 나에게만 미칠 리가 없었음에 헛물 올라오는 고통을 참고, 돌아온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의 회사 앞으로 가고, 그 남자가 깁스한 모습을 보자 단호하게 남자를 집까지 바래다준다(이지민,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달라고 한다’).

20년간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아파트를 이혼한 아내에게 넘긴 뒤 다락방을 전전하는 아치는 박대만 당하는데도 친척들과 사는 옛 아내의 집을 수시로 찾아가고, 마지막으로 망가지고 필요도 없는 후버 진공 청소기를 찾으러 가고,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히스테릭한 친척들 목하, 공구함을 꺼내서는 진공 청소기를 고치고 그 진공 청소기로 자살을 결행하기에 이른다(제이디 스미스, <하얀 이빨>).

왕년의 스타급 육상 선수인 캐시는 술이 취한 날이면 의자와 탁자로 장애물을 만든 뒤 펄쩍펄쩍 뛰어 거실을 몇 바퀴나 돌고(존 치버, ‘오, 젊음이여 아름다움이여!’).

매춘부 아내의 돈으로 사는 ‘나’는 시장을 하염없이 돌아다니다가 정오의 사이렌 소리를 듣는다(이상, ‘날개’).

철도가 끊긴 시간 술에 취해 철도 공무원의 질긴 채근을 받은 뒤에야 부스스 일어났던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민망하고 어수룩한 일이 될 것이나 소설 속에서는 고뇌를 담은 몸부림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을 것이니, 성공과 펀드와 부자 아빠와 10억 연금의 시대에 소설은 노숙자를 구하고 알코올중독자를 변호하고 정신이상자가 믿는 세계를 진심으로 믿어준다.

‘누구나 소설을 쓰는 시대’는 전망 없는 시대와도 통한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겪은 뒤 1998년 소설 응모작 수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 적이 있다. 소설 쓰기를 자본이 들지 않는 ‘창업’으로 여겨서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소설 강의를 하는 김현영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직장에 다니는 많은 분들이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인생 2막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려고 소설을 붙드는 것 같다. 글 쓰면서 사는 게 가난하더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마침내 회사 측은 어떤 회사와 흡수·합병하기 위하여 700명의 사원을 정리하겠다고 조합에 통보를 했고, 따라서 모두가 알게 된 그 정보는 이용가치가 없어졌다. 이튿날부터 험악한 공기가 사내를 떠돌기 시작했고, 상사도 부하도 없어졌다. 그토록 견고하게 보였던 질서가 한 시간 단위로 무너져내리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유능한 영업사원은 고액으로 스카우트되어 다른 회사로 가고, 부장·과장들은 어수선한 틈을 타 무슨 좋은 일이 없을까 하고 분주하게 돌아다녔고, 중역들은 이리저리도 도망다니거나 숨어 있었다. 사장은 조합원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런 와중에 발신할 전보량은 적어지고 수신량도 나날이 줄어들어 나는 할 일이 없었다. …근무 시간에 떠들썩한 전신실에서, 회사 노트에다 회사 볼펜으로 하루에 세 장씩 써나갔다. 400자 원고지로 한 100매 정도면 <문학계>라는 잡지의 신인상에 응모할 수 있다는 얘기를 친구한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문학계>를 읽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순수문학이니 중간소설이니 하는 장르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 생활을 무로 돌리면서까지 문인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다.” -마루야마 겐지, ‘상금 오만엔’, <소설가의 각오>


인생 2막이다. 권태성씨는 소설을 쓰면서 ‘새로운 나’를 만났다. “스물아홉 살 먹도록 부끄러운 일이지만, ‘비루하다’라는 말을 사전을 찾아보아야 할 정도로 단어력이 부족해요. 그래도 계속 소설을 쓸 겁니다.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홍익대 앞 길 가다가 만나면 눈살 찌푸리게 되는 그런 사람 있죠? 그게 저와 제 친구였거든요. 술을 몇 병 먹느냐가 중요하던 사람에서 어떤 생각이냐, 사람이냐가 중요한 사람으로 건너왔어요.” 지금은 일하는 도중 바라본 하늘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심지어 가을 하늘이 아름답기 시작했어요. 지금 나무에 햇빛이 걸려 있는데, 그걸 표현하고 싶은데, 답답하네요.”

소설이 또 다른 나를 낳으며, ‘같기도 소설’을 낳으며, 무수한 읊조림을 낳으며 무한히 확장 중이다.



늘어나는 1억원 고료와 정체된 신춘문예

다양한 욕구에 맞춘 소설 공모는 없을까


1억원의 상금을 내건 공모전은 현재 6개다. 2005년 <미실>을 시작으로 한 세계문학상이 1억원의 스타트를 끊었다. <조선일보>는 2007년부터 뉴웨이브문학상을 주최하면서 1억원의 상금을 내걸었다. 2008년 문학사상사는 문사장편소설상을 공모하면서 사상 최대 금액인 1억5천만원을 고료로 약속했다. 올해 ‘1억원짜리’가 대거 늘었다. <조선일보>는 뉴웨이브문학상(9월26일 마감) 외에도 2009년부터는 판타지문학만 떼어내 1억원의 상금을 내걸었다(8월31일 마감). 7월 첫 당선자를 낸 멀티문학상도 1억원이다. 살림출판사와 영화사 프라임엔터테인먼트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대한민국문학영화콘텐츠 대전’도 장편소설 1억원, 청소년문학 부문 5천만원으로 올해 첫 공모를 했다(8월31일 마감). 역시 올해 처음 공모하는, <중앙일보>가 웅진씽크빅과 함께하는 중앙장편문학상(10월26일 마감)도 1억원이 상금이다.

상금은 올랐으나 ‘당선작 없음’이 문학상 수상작 발표의 다인 경우가 많다. 문학사상사의 문사장편소설상은 지난해 1회 수상작을 내지 못했고 올해 말 마감이었던 제2회는 공모 중지를 선언했다. 뉴웨이브문학상은 1회 수상자(유광수 <진시황 프로젝트>)를 낸 뒤 지난해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5천만원을 내건 문학의문학 장편공모상도 2007년 첫 회 당선작을 낸 뒤 2회 당선작을 내지 못한 채 공모를 잠정 중단했고, 자음과모음이 지난해 계간지를 출범하며 5천만원씩을 내걸고 의욕적으로 공모한 자음과모음문학상·네오픽션문학상은 자음과모음문학상만 당선자를 냈다(<자음과모음> 2009년 가을호 발표).

모두 장편소설 공모다. 그리고 많은 경우 멀티미디어의 ‘소스’로서의 소설에 대한 기대다. 1억원 고료 세계문학상의 <미실> <아내가 결혼했다> <스타일> 등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화화·드라마화된 선례가 있다. 일종의 ‘대박’에 대한 꿈이다. 장편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군에 비해 상이 난립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간 문학상은 단편소설 중심으로 운영돼왔다.

장편소설로의 쏠림 현상은 신춘문예의 ‘경직성’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기도 하다. ‘신춘문예’라는 정형화된 글쓰기는 한국 문단의 폐해로 지적되어왔다. 2009년 신춘문예 트렌드의 하나는 ‘40·50대 당선자의 대거 배출’이었다. 문학상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한 작가는 “‘정답’에 가까운 작품을 쓰는 데 나이 든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70대 심사위원들이 대거 포진한 것도 그 이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제도를 따라 1914년 시작된 신춘문예는 일본에서도 용도폐기된 지 오래다.

김진 문학평론가는 “꼭 기성 소설이 뭐가 갑자기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욕구가 다양해졌다고 봐야 한다. 문단 쪽에서도 필요성에 공감하고, 그것이 대중의 필요와도 만났다. 앞으로 문학과 대중, 두 방향으로 가는 길이 아니고 양쪽에서의 필요성이 점점 더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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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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