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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7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자, 데스먼드 투투

“우리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사실을 가끔 잊어버립니다. 이 세상은 도덕적인 우주의 일부이며. 정의, 선, 사랑, 이러한 가치는 어느 날 그 반대되는 지독하고 형편없는 상대를 이길 것입니다. 부정, 압제, 악이 끝까지 남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_데스먼드 투투, <노벨 평화상 수상자와 함께하는 평화운동, 다른출판사 중에서>


인간이 인간을 차별한 무자비한 인종차별 정책
데즈먼드 투투는 193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작은 금광 마을인 크러크스도르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그가 열두 살 때 가족들은 수도 요하네스버그로 이사했다. 1948년부터 1993년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인종 차별 정책을 폈다. 인종 차별 제도는 백인이 유색 인종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법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백인이 400만 명 있었고, 유색인은 2300만 명이었다. 백인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살기 좋고 안전한 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곳 흑인과 유색인 들은 전기도, 물도 없는 가난한 판자촌으로 내쫓겼다. 그들은 먹을 것도 별로 없었고, 돈을 제대로 벌지도 못했다. 그들은 늘 신분증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신분증이 없이 다니면 곧바로 붙잡혀 감옥에 가야 했다. 그러나 백인들은 신분증 없이도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었다.

 구사일생한 소년, 위대한 스승을 만나다
데즈먼드는 10대 소년일 때 결핵에 걸려 죽을 뻔했다. 그래서 거의 2년이나 입원해 있어야했다. 그동안 트레버 허들스턴이라는 백인 신부가 가끔 그의 병실을 찾아왔다. 그 성직자는 책을 가져와 읽어 주거나 체커를 같이 두었으며, 공부도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데즈먼드는 다른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 데즈먼드에게 관심을 갖거나 존중해 주는 백인은 없었다. 데즈먼드에게 트레버 허들스턴은 정신적 지주였다. 그리고 그 둘은 친구가 되었다. 나중에 데즈먼드는 백인 신부의 이름을 따서 아들 이름을 짓기도 했다.

 돈이 없어 의사의 길을 포기한 데스먼드
결핵을 이겨 낸 데즈먼드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결핵을 없애는 방법을 알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가 의학 공부를 하도록 도울 돈이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지만 아버지처럼 학교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 데즈먼드는 선생님이 되었지만 흑인이었기 때문에 흑인 학교에서만 가르칠 수 있었다. 그는 학교에서 흑인들이 백인보다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받고 있음을 알고는 선생님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인종을 차별하는 정부에 협조하지 않겠어.”

 비폭력 인종 차별 반대 운동
데즈먼드는 트레버 허들스턴 신부가 성직자로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성직자가 된 데즈먼드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희망을 심어 주고 존엄성을 되찾아 주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영국 국교회(성공회) 최초로 흑인 대주교가 되었다. 투투 대주교는 지역 교회에서 일하면서 정부의 인종 차별 정책에 대항했다. 흑인과 유색인에 대한 폭력을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76년, 소위토 마을에서 1만 명이 넘는 고등 학생들이 모여 경찰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며 시위를 했다. 경찰들은 곧 그들을 공격했고 5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죽었다. 그 이후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는 더욱 심한 폭력으로 보복을 해 왔다. 이에 대응하여 투투 대주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경제적 제재 조치를 요구하는 평화 행진을 이끌었다. 세계 각국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만든 물건을 사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저항했다. 흑인이나 유색인에 대한 폭력을 끝내라고 하면서, 백인만을 위한 법이 아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모든 시민을 보호하는 법을 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투투 대주교는 비폭력 운동으로 인종 차별을 반대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람들에게 평등을 가져다 준 공로로 1984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몇 년 동안 협상이 거듭된 끝에 1994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종 차별 정책이 사라졌고 그해 4월 27일, 투투 대주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모든 유색인들과 함께 처음으로 백인들과 같이 투표를 했다. 그리고 그날 남 아프리카 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뽑혔는데, 그가 바로 넬슨 만델라였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
만델라 대통령은 투투 대주교를 ‘진실 화해 위원회’의장으로 임명했다. 이 위원회는 인종 차별 정책으로 학대받은 사례를 파헤치고, 희생자들이나 그 가족들이 명예를 되찾고 배상을 받도록 도왔다. 위원회는 그동안 진실을 말하고 행동에 옮겼던 양심수들 모두를 사면 받게 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위원회를 통해 아픔을 치료받고 위안을 받았다. 심지어는 희생자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한 가해자들을 용서하기도 했다.

 끝나지 않은 투쟁
투투 대주교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어 꾸준히 인권 회복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신의 자녀이자 형제자매이며, 한 가족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서로 연민으로 돕기를 바란다. 투투 대주교는 말라리아, 결핵, 에이즈와 같은 질병의 확산에 대해서도 관심이 깊다. 투투 대주교는 교육받을 기회와 건강 검진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세상, 누구나 살아갈 집이 있고 존엄성을 갖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람들이 물질보다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고 모두가 풍요롭게 사는 세상, 언어와 문화와 신앙의 다양성을 찬양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말이다.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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