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다른출판사에서 내년에 출간을 전제로 하고, 금년 3월 15일부터 매주 3회, 전 세계에서 8개국어로 동시에 만화를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제목은 <자라의 파라다이스>이에요.


지난여름 이란의 대통령선거이후의 사태를 배경으로 한 이슬람 정권 아래의 인권이야기로, 이 만화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이때의 이란의 부정선거 항의시위 중에 있었던 소녀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이 소녀가 묻힌 테헤란의 가장 큰 묘지이름이 <자라의 파라다이스>라고 합니다.

 이야기는 선거 직후의 6월로, 블로거의 동생이 이란 대통령 선거 직후 항의시위 중에 사라졌고, 형인 블로거와 엄마가 동생을 찾으려 하는 중에, 지난 10여 년 동안, 이슬람 정권아래에서 수백 명의 시위자와 반체제 인사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과거 아르헨티나에서 반정부 운동에 관여된 무수한 사람들이 실종되고, 그들의 어머니들이 사라진 아들을 찾는 어머니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합니다. 물론 멀리서 찾을 일도 아니지요. 80년대 군부독재에 항거하던 우리의 형들과 누나들이 생각나고, 광주민주화운동이 연상이 되네요.

 현재 포스팅되고 있는 사이트는 <ZARAH'S PARADISE>이고 아래를 클릭 한 번 해보세요.http://www.zahrasparadise.com/archives/76

 

가끔씩 들러서 댓글을 달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한 소녀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생각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참고로 여러 나라와 작업하다보니 몇 시간 내에 한글로 번역하여 웹 작업을 하다 보니 다소 번역이 거칠더라도 이해 해주시고, 간혹 번역이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수정 요구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종에 공동 작업이라 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번역의 게으름을 변명삼지 않겠습니다. 

'자라의 파라다이스 > 소개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묘지에 핀 소녀의 꿈_편집자 변  (0) 2010.03.15
Posted by 다른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이티에 이어 칠레·터키에서까지 지진 뉴스가 줄을 잇는다. 규모나 피해도 엄청나다. 사람들은 묻는다. 올해는 벽두부터 지진 참사가 왜 이리 크고 잦은가?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은 그렇지 않다"고 답하면서 단지 지진은 특정시기에 집중해 발생하는 경향이 있어 사람들에게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미 지질조사국(USGS) 지질학자 폴 얼(Earle) 박사는 말한다.

문제는 지진 피해 규모다. 학자들은 최근 들어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미 콜로라도대 지질학자인 로저 빌햄(Bilham)은 지난달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지난 10년간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그전 10년보다 4배나 많았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도 2000~2009년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를 45만3000명 이상으로 집계했다.


최근 지진 피해가 두드러져 보이는 데는 인간 문명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대표적인 것이 급속한 도시화. 도시화 물결은 지진 단층선이 지나는 곳까지 범람했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곳에 모여들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재난질병연구소장은 AP통신에 "인구 밀집이 작은 사건도 큰 것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 지역 건물들은 내진 설계를 갖춘 경우가 많지 않다. USGS의 얼은 "지진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건물이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기사 중 : 2010.03.10 03:23 인용


그러면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건물은 어떻게 지어질까? 즉 건물을 지을 때 내진 설계의 원리는 무엇일까? 다른출판사에서 출간된 <왜, 건물은 지진에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책에는 건축물에 숨어 있는 과학 원리를 통해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아래에 책에 실린 내용 일부를 발췌정리 해 본다.

지진이 건물에 미치는 영향은 수평으로 부는 강한 바람과 비슷하지만, ‘갑작스런’ 강풍이라도 지진에 비하면 부드러운 편이기 때문에 지진이 훨씬 더 위험하다. 운동방향을 갑작스럽게 바꾸거나, 갑자기 시작되고 갑자기 멈추는 지진은 힘을 갑작스럽게 가하는 것과 같다.

시리얼 상자 밑에 놓여 있는 사포를 갑자기 잡아당겼을 때 상자가 반대 방향으로 넘어지는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마치 상자 반대 방향으로 힘이 작용하는 것과 같다. 상자가 무거울수록 갑작스럽게 작요하는 힘이 더 커지는데, 이는 관성의 법칙 때문이다. 따라서 지진에 견디기 위해서 건물은 수평력을 견딜 수 있게끔 골조가 튼튼해야 한다.

지진으로 인한 건물의 진동을 제한하려면 건물을 휘어짐에 강하게 지어져야 한다. 플라스틱 자를 한 손으로 잡고 수직으로 세우면 고층건물의 진동을 실험해 볼 수 있다. 다른 한 손으로 자의 꼭대기를 당겼다가 놓으면 자가 흔들린다. 즉 진동한다. 유연성이 좀 더 뛰어난 쇠자로 똑같이 실험하면 좀 더 천천히 진동이 일어날 것이다. 다시 말해 고층건물은 지진이나 바람에 의한 진동을 막기 위해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기술자들은 건물의 중량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건물의 진동을 줄이기 위해 동조질량감쇠기(TMD)라는 장치를 마련했다. 동조질량감쇠기는 커다란 콘크리트 블록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데, 건물 상부에 있는 첨탑 안에 설치되어 스프링 두 개로 건물 양쪽 벽에 붙어있다. 콘크리트 블록은 기름이 얕게 깔린 탱크 안에서 미끄러진다. 콘크리트 블록의 무게와 스프링의 강도를 잘 조절하였기 때문에 건물이 고유진동주기로 진동할 때 콘크리트 블록은 건물과 같은 주기로 진동한다.

지진이나 강한 바람이 건물 꼭대기를 왼쪽으로 흔든다고 생각해 보자. 콘크리트 블록은 건물에 딱 붙어 있는 게 아니므로 움직이지 않지만, 블록 아래에 있는 건물은 바람 때문에 왼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블록의 왼쪽 스프링이 길어지고 오른쪽 스프링은 짧아지며, 이 두 개의 스프링은 건물이 중심 위치로 돌아오도록 건물을 밀고 당긴다. 더 나아가 건물이 제자리로 돌아오다가 두 개의 충격흡수장치에 의해 멈춰지게 되므로 건물은 콘크리트 블록을 지나치지 않고 중심에서 멈추게 된다.

만약 자유로운 진자처럼 움직였다면 중심을 지나쳐 계속 진동할 것이다. 그러나 건물의 진동은 동조질량감쇠기로 제어된다. 불과 몇 백 톤짜리 블록이 빌딩에 강철 중량을 많이 더하지 않고도 중량 수천 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강도를 더해 준 것이다.

건물은 지진에 무너지지 않을까
카테고리 과학
지은이 마리오 살바도리 (다른, 2009년)
상세보기


이 책 <왜, 건물은 지진에 무너지지 않을까>는 위에 예시한 것처럼 건축에 살아 숨 쉬는 과학, 수학, 예술, 문화 이해하기이며, 왜라고 질문하는 아이들에게 설명에 곁들인 그림을 보고, 실제로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책상 위에서 만들어 보면서 스스로 답을 찾게 해준다. 그래서 이 책은 미국 초등, 중등학교에서 수십 년 동안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Posted by 다른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해마다 9월이 되면 전 세계의 이목이 스웨덴에 집중된다.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가 누구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어둠이 짙을수록 등불을 간절히 찾듯 일상을 사는 게 힘들수록 큰일을 한 사람들을 보면서 잠시나마 위안이나 새로운 마음을 다잡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청소년 책을 만드는 편집자에게는 아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인물에 대한 책을 기획하는 건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이다. 하지만 이런 책을 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신선도와 참신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연히 알게 된 <노벨 평화상 수상자와 함께하는 평화학교>는 가뭄에 단비를 맞은 격이었다.  

이 책은 기존에 나온 위인전의 전형인 ‘어떤 인물이 어려운 환경에도 칠전팔기의 정신을 발휘해 역경을 딛고 세상 사람들을 위해 훌륭한 일을 했다’가 아니라서 좋았다. 물론 아이들에게 이런 책도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래서 어쩌라고요?”라고 물을 때, “난들 어쩌라고요?”로 대답해야 할까?

 이 책은 독자 또래의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는 데 보조적지만 준거점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을 동참시킨다는 점에서 큰 차별성을 갖는다. 달리 말하면 수상자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독자 또래의 아이들이 주체가 되기에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 특장이다. (어른의 잔소리가 심하면 아이들은 잘 하던 일도 안하지 않나?)

한편 편집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이 책에 소개되는 수상자 열한 명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 출판사에서 한 꼭지를 할애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실으려고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서거하셨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다른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

평화학교(노벨평화상 수상자와 함께하는)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이반 수반체프 (다른, 2010년)
상세보기

프레시안

[화제의 책] 노벨 평화상 수상자와 함께 하는 평화학교

기사입력 2010-03-06 오전 7:29:13

<노벨평화상 수상자와 함께 하는 평화 학교(A Billion Simple Acts of Peace, PeaceJam Foundation)>(이반 수반체프·돈 피커드 엥글 지음, 이순미 옮김, 다른 펴냄)는 '피스잼(PeaceJam)'이라는 시민 조직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단체는 국가가 가지고 있는 권력도 없고 기업이 가지고 있는 돈도 없다. 하지만 이들은 지구촌을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피스잼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영감을 통해서 청소년들이 스스로 변화하여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 사회부터 바꾸는 직접 행동을 벌이도록 돕는다. 지구에 살고 있는 60억 인류를 위해 평화, 인권, 정의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피스잼은 1966년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창립된 비정부조직(NGO)으로 전 세계 청소년을 위한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특히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도록 설계리더십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달라이 라마, 아웅산 수치, 데스먼드 투투 등 12명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 참여하며, 2007년 노벨평화상 협회에서 공식 인증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1996년에 시작한 교육 프로그램은 초등학생부터 중고생,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청소년 스스로 조직하는 봉사 활동과 평화운동을 촉구한다. 이들은 단지 전쟁, 갈등, 폭력이 없는 세상뿐 아니라 안전, 복지, 정의, 평등이 넘치는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동안 전 세계의 60만 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했으며 10개국에서 피스잼 청년국제회의를 진행했다.
2009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을 받기도 한 피스잼은 지구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활동하는 대표적 시민 조직으로 평가받는다.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지구적 시민 조직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들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구적 시민 조직은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구호를 내건다. 이들이 활동하는 영역은 다양하다. 빈곤 추방, 인권 옹호, 여성과 아동의 권리, 환경 보호, 제3세계 발전을 위한 지구적 차원의 공동 행동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지구시민사회가 충분하게 발전한 것은 아니다.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러한 지구적 시민 행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구의 대다수 인구는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은 취약 계층으로 시민 행동에 참여할 조직, 재정, 통신 수단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다.

실제로 대다수 시민 조직은 서양의 선진국에 살고 있는 교육받은 백인 중산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개발도상국의 빈민층이 참여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 유엔에 자문하고 있는 비정부조직 가운데 15퍼센트 미만이 개발도상국에 기반을 가지고 있다. 지구화되는 세계에서 주요 정책의 결정 과정과 집행 과정은 대부분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독점되고 있다. 국제기구, 각국 정부, 초국적기업, 국제 비정부기구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모두 소수의 사람들에게 지배되고 있다.

급속하게 하나로 통합되는 세계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피스잼은 다른 어떤 시민 조직보다도 풀뿌리 차원에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 계획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을 쓴 이반 수반체프와 돈 키퍼드 앵글은 피스잼을 창설한 사람이며, 평화운동의 미래가 청소년들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2000년에 결혼했고, 지금은 두 아들과 함께 콜로라드 주의 산속에서 오두막을 짓고 살고 있다.)

전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서 벌이는 자율적 시민 활동은 지구의 미래를 위해 큰 희망을 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한국의 청소년들도 우리가 살고 있는 전 세계의 젊은이들과 함께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윤태 고려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Posted by 다른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어디에 있든, 어느 나라에 살든 힘 있는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면 처절한 빈곤을 없앨 수 있다. 그러면 20년 뒤에 빈곤은 분명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 빈곤 퇴치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덕적 의무이다._ 주제 라모스오르타, <노벨 평화상 수상자와 함께하는 평화 학교, 다른출판사 중에서>




망명자의 아들
주제 라모스오르타José Ramos-Horta는 1949년 12월 6일 티모르 인 어머니와 포르투갈 인 아버지 사이에서 열한 명의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포르투갈 육군이었는데 포르투갈 군벌 정치에 항의하다가 동티모르에서 추방당했다. 어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무자비한 일본군 공격을 받아 가족 모두를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주제는 동티모르에서 멀리 떨어진 언덕에 위치한 가톨릭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텔레비전 없이 자라서 미디어나 배우들을 모르고 자랐고 음악가들의 영향도 거의 받지 않았지만, 비틀스나 롤링 스톤즈의 음악은 들었다. 음악에 감동해서라기보다 반전 운동을 하는 그들에 대한 전 세계인들의 갈채에 감명을 받아서였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군사정부에 항거
주제는 열여덟 살 때 아버지의 운명처럼 ‘위험 인물’로 낙인 찍혀 모잠비크로 추방당했다. 주제는 “동티모르는 가난하고 저개발국가니까 포르투갈이 지배하는 것이 정당하다.”라고 주장하는 친구들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곤 했는데 그는 고국에 잠시 들어왔다가 포르투갈의 군사정부에 반대하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1970년부터 1971년까지 다시 추방당했다.

 1974년, 주제가 스물다섯이 되던 해에 포르투갈이 식민지를 포기하고 동티모르는 독립을 선언했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흥분했지만, 한편으로는 인도네시아가 자기 나라에 다른 계획을 품고 있지 않은지 걱정했다. 그들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고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의 처절한 저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작은 나라를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점령하기 시작했다. 주제는 또 다시 추방을 당했다.

 유엔에서 최연소자로 자국의 독립을 위해 연설
그는 그때부터 24년간 동티모르 사태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애썼다. 유엔의 최연소 연설자 중 한 명인 주제는 유엔 대표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유엔은 마침내 동티모르의 독립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같은 승리에도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제는 유엔과 다른 세계 지도자들에게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에 주권을 되돌려주어야 한다.”라고 계속 설득했다. 

1992년, 주제는 3단계 평화 계획을 유럽 의회에 정식으로 제출했다. 인도네시아 군대의 철수, 정치범 석방, 인권 보호, 유엔 평화군 주둔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티모르가 독립한 후 국민 투표를 실시할 것을 호소했다. 동티모르 인들에게 완전 독립을 할 것인지, 인도네시아의 일부가 될 것인지, 아니면 포르투갈과 연합할 것인지를 유엔의 감독 아래 투표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1996년 12월, 주제 라모스오르타는 국민에 대한 억압에 대항한 노력과 굽히지 않는 의지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네 명의 형제가 군대로부터 살해당함
2000년, 동티모르 사람들은 독립을 위한 투쟁에 성공하여 세계에서 가장 어린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군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동티모르를 떠나면서 닥치는 대로 불을 지르고 모든 것을 파괴해 버렸다. 동티모르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주제는 드디어 24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형제 열한 명 중 네 명이 인도네시아 군대에 살해당했지만, 주제는 오직 화해와 용서만이 동티모르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폭력은 우리를 어디로도 안내해 주지 않는 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힘은 폭력이 아닙니다. 동정심, 관대, 겸손, 인내만이 진정한 힘입니다.”

 자국민을 극빈상태에서 해방시켜야겠다는 신념
동티모르의 초대 대통령인 사나나 구스마오는 주제 라모스오르타를 초대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2007년, 주제는 동티모르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08년 2월 11일, 주제 라모스오르타는 오전 산책을 하고 돌아오다가 딜리에 있는 자신의집 밖에서 암살을 당할 뻔했다. 그는 중상을 입었지만 2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나 대통령의 의무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딜리로 돌아왔다. 암살 위협에도 불구하고 주제는 계속해서 국민들을 직접 만났고 그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주제는 암살 사건으로 사람들을 극빈 상태에서 끌어올려야 한다는 신념을 재확인했다. 노천 카페에서 음식을 사 먹고, 대중교통 수단인 미니 버스를 이용했던 대통령으로서 가장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은 암살 사건 후 전처럼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주제 라모스오르타는 병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말했다.

 “며칠 후면 나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동티모르를 위한 나의 꿈을 실행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동티모르를 빈곤에서 끌어내고, 폭력 없는 평화 지역으로 만들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나는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Posted by 다른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_sweetillusion 2010.04.08 0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imor Leste 라는 호르타의 책을 읽고 동티모르의 역사와 독립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어느 책보다 동티모르를 잘 알게 해주었던책이었는데, 번역본이 없어서;;; 이분이 한국에 오셨었군요 ^^

“사회 정의는 인류의 최우선 가치다. 우리는 인류에 대한 미래상을 가지고 그것을 열렬히 믿는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은 ‘동일하게’ 평등하다.”
_ 메어리드 코리건매과이어, <노벨 평화상 수상자와 함께하는 평화학교, 다른출판사 중에서>




종교적 분쟁이 끊이지 않은 아일랜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메어리드 코리건매과이어Máiread Corrigan-Maguire는 1944년 1월 27일,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있는 아주 가난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창문을 닦아서 벌어오는 적은 돈으로 살았다.

 아일랜드는 12세기에 영국이 침입해 오면서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600년대에 영국의 신교도들이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에 이사를 오면서 종교 갈등도 시작되었다. 이 두 집단의 갈등과 폭력은 1921년에 남부 지방이 아일랜드로, 북부 지방이 북아일랜드로 나뉠 때까지 계속 되었다. 

갈등의 시대: 종교와 정치 분쟁
북아일랜드의 갈등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어 1969년부터 1998년까지를 ‘갈등의 시대’라고 불렸다. 북아일랜드의 갈등은 단순히 가톨릭 신자들과 신교도들의 종교적 차이 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북아일랜드의 통치 방법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주로 가톨릭 신자였던 민족주의자들은 북아일랜드가 아일랜드 공화국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신교도들인 연합론자들은 북아일랜드가 영국 연방의 일부로 남기를 주장했다.

 북아일랜드는 철저한 분리의 땅이었다. 많은 집단이 가톨릭과 신교로 나뉘어졌고, 사람들은 서로를 심하게 불신하고 두려워했다. 가톨릭 신자들과 신교도들은 따로 떨어진 가게에서 장을 보았고, 학교도 따로 다녔다. 이러한 현상은 북아일랜드 전역에 걸쳐 일어났다. 특히 벨파스트는 이런 긴장과 갈등이 가장 심한 곳이었다.

 조카의 죽음 앞에서 우뚝 선 여인
메어리드는 1976년 8월 10일, 언니와 어린 조카들 네 명이 벨파스트의 거리에서 차에 치이는 사고를 겪게 된다. 대니 레논이라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병사가 신교도인 영국군의 총에 맞고 도망치다가 차 사고를 낸 것이다. 그 사고로 메어리드의 언니인 앤은 아주 심하게 다쳤고, 조카 네 명 중 한 아이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민족주의자들이나 연합주의자들을 탓하고 비난해 보았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아이들이 헛되게 죽은 것에 격분했다. 사람들은 극도로 흥분한 채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려고 거리로 모여들었다. ‘갈등의 시대’에 벌어진 폭력에 대한 무감각과 무분별한 죽음에 북아일랜드와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평화 행진
메어리드는 사건 직후 현장을 본 여성 베티 윌리엄스와 기자인 친구 시아란 매케온과 함께 매주 대규모 평화 행진과 시위를 벌였다.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그리고 영국에서 온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폭력을 끝내자는 이 행렬에 참가했다. 1976년에 일어난 북아일랜드 역사상 가장 큰 평화 시위이자, ‘갈등의 시대’ 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시위였다. 벨파스트에서, 런던에서, 그리고 많은 다른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국제적 관심이 이 평화 시위 행렬에 쏠렸다.

 메어리드, 베티, 시아란은 평화 시위를 점점 확대해 나가기 위해 ‘피스 피플’을 결성했다. 그들은 학교, 휴양 시설, 거주 지역 같은 지역 시설을 통합해야 진정한 화해와 폭력 방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메어리드는 북아일랜드의 갈등과 충돌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데 삶을 바쳤다. 30여 년간 평화로운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비폭력이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퍼트렸다. 북아일랜드의 공동 단체들과 정치적 지도자, 교회 지도자 들과 쉬지 않고 일했고, 가톨릭과 신교로 철저히 분리된 단체에 가서도 대화를 끌어낼 방법을 찾았다.

 폭력 없는 미래를 위해 헌신
평화 운동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사라졌을 때도, 사람들이 면전에서 자신을 조롱하고 무시할 때도 메어리드는 평화를 위해 계속 일했다. 평화가 북아일랜드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님을 메어리드는 알고 있었다. 메어리드는 전 세계의 폭력 없는 미래를 위해 온 힘을 쏟았다.

1976년, 메어리드 코리건매과이어와 베티 윌리엄스는 북아일랜드에서 폭력에 반대해 온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들은 이렇게 수상 소감을 말했다.

 “우리는 생명과 창조 편에서, 전쟁과 파괴를 반대합니다. 증오로 가득 찬 폭력은 멈춰야 한다고 소리 높여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리 높여 말하는 것 말고도 뭔가를 또 시작했습니다.”

 메어리드는 이후 연설과 글을 통해 자기 생각을 알리고, 풀뿌리 평화 계획에 참여하여 세계에 희망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힘쏟고 있다.



Posted by 다른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리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사실을 가끔 잊어버립니다. 이 세상은 도덕적인 우주의 일부이며. 정의, 선, 사랑, 이러한 가치는 어느 날 그 반대되는 지독하고 형편없는 상대를 이길 것입니다. 부정, 압제, 악이 끝까지 남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_데스먼드 투투, <노벨 평화상 수상자와 함께하는 평화운동, 다른출판사 중에서>


인간이 인간을 차별한 무자비한 인종차별 정책
데즈먼드 투투는 193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작은 금광 마을인 크러크스도르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그가 열두 살 때 가족들은 수도 요하네스버그로 이사했다. 1948년부터 1993년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인종 차별 정책을 폈다. 인종 차별 제도는 백인이 유색 인종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법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백인이 400만 명 있었고, 유색인은 2300만 명이었다. 백인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살기 좋고 안전한 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곳 흑인과 유색인 들은 전기도, 물도 없는 가난한 판자촌으로 내쫓겼다. 그들은 먹을 것도 별로 없었고, 돈을 제대로 벌지도 못했다. 그들은 늘 신분증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신분증이 없이 다니면 곧바로 붙잡혀 감옥에 가야 했다. 그러나 백인들은 신분증 없이도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었다.

 구사일생한 소년, 위대한 스승을 만나다
데즈먼드는 10대 소년일 때 결핵에 걸려 죽을 뻔했다. 그래서 거의 2년이나 입원해 있어야했다. 그동안 트레버 허들스턴이라는 백인 신부가 가끔 그의 병실을 찾아왔다. 그 성직자는 책을 가져와 읽어 주거나 체커를 같이 두었으며, 공부도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데즈먼드는 다른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 데즈먼드에게 관심을 갖거나 존중해 주는 백인은 없었다. 데즈먼드에게 트레버 허들스턴은 정신적 지주였다. 그리고 그 둘은 친구가 되었다. 나중에 데즈먼드는 백인 신부의 이름을 따서 아들 이름을 짓기도 했다.

 돈이 없어 의사의 길을 포기한 데스먼드
결핵을 이겨 낸 데즈먼드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결핵을 없애는 방법을 알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가 의학 공부를 하도록 도울 돈이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지만 아버지처럼 학교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 데즈먼드는 선생님이 되었지만 흑인이었기 때문에 흑인 학교에서만 가르칠 수 있었다. 그는 학교에서 흑인들이 백인보다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받고 있음을 알고는 선생님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인종을 차별하는 정부에 협조하지 않겠어.”

 비폭력 인종 차별 반대 운동
데즈먼드는 트레버 허들스턴 신부가 성직자로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성직자가 된 데즈먼드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희망을 심어 주고 존엄성을 되찾아 주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영국 국교회(성공회) 최초로 흑인 대주교가 되었다. 투투 대주교는 지역 교회에서 일하면서 정부의 인종 차별 정책에 대항했다. 흑인과 유색인에 대한 폭력을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76년, 소위토 마을에서 1만 명이 넘는 고등 학생들이 모여 경찰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며 시위를 했다. 경찰들은 곧 그들을 공격했고 5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죽었다. 그 이후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는 더욱 심한 폭력으로 보복을 해 왔다. 이에 대응하여 투투 대주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경제적 제재 조치를 요구하는 평화 행진을 이끌었다. 세계 각국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만든 물건을 사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저항했다. 흑인이나 유색인에 대한 폭력을 끝내라고 하면서, 백인만을 위한 법이 아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모든 시민을 보호하는 법을 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투투 대주교는 비폭력 운동으로 인종 차별을 반대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람들에게 평등을 가져다 준 공로로 1984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몇 년 동안 협상이 거듭된 끝에 1994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종 차별 정책이 사라졌고 그해 4월 27일, 투투 대주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모든 유색인들과 함께 처음으로 백인들과 같이 투표를 했다. 그리고 그날 남 아프리카 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뽑혔는데, 그가 바로 넬슨 만델라였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
만델라 대통령은 투투 대주교를 ‘진실 화해 위원회’의장으로 임명했다. 이 위원회는 인종 차별 정책으로 학대받은 사례를 파헤치고, 희생자들이나 그 가족들이 명예를 되찾고 배상을 받도록 도왔다. 위원회는 그동안 진실을 말하고 행동에 옮겼던 양심수들 모두를 사면 받게 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위원회를 통해 아픔을 치료받고 위안을 받았다. 심지어는 희생자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한 가해자들을 용서하기도 했다.

 끝나지 않은 투쟁
투투 대주교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어 꾸준히 인권 회복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신의 자녀이자 형제자매이며, 한 가족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서로 연민으로 돕기를 바란다. 투투 대주교는 말라리아, 결핵, 에이즈와 같은 질병의 확산에 대해서도 관심이 깊다. 투투 대주교는 교육받을 기회와 건강 검진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세상, 누구나 살아갈 집이 있고 존엄성을 갖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람들이 물질보다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고 모두가 풍요롭게 사는 세상, 언어와 문화와 신앙의 다양성을 찬양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말이다.

Posted by 다른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는 아주 긴밀하게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길게 보면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의 적, 즉 여러분의 이웃을 공격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이웃이 필요합니다.”
_달라이 라마, <노벨 평화상 수상자와 함께하는 평화 학교>, 다른출판사 발췌


방미 앞둔 달라이 라마의 전략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는 2010년 2월 1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한사코 만나려는 속내는 무엇일까?

티베트문제 전문가들은 14일 달라이 라마(74)의 이번 방미는 국제사회에서 티베트 문제가 관심사가 되도록 유지하는 것이 주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2008년 3월 티베트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를 진압한 뒤 같은 해 베이징올림픽까지 성공적으로 개최한 중국이 달라이 라마의 미국 방문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들어내기 보다는 침묵으로 대응하면서 이번 방문을 애써 무시함으로써 이슈 자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소망이 가득한 여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
1935년, 히말라야 산맥 고지의 작은 마을 탁사르, 농부의 집에서 남자 아기가 태어났다. 부모는 아기에게 라모 돈드럽(소망이 가득한 여신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라모 위로는 누나 한 명과 형이 셋 있었다. 라모네 가족은 조그만 땅에서 보리와 감자 농사를 지었고 말, 야크(티베트 산 들소), 염소, 병아리를 키웠다. 그들은 돌과 진흙으로 지은 전형적인 티베트 집에서 살았다. 

13대 달라이 라마가 환생한 달라이 라마
라모가 세 살 때 일이었다. 하루는 몇몇 승려와 티베트 정부 사람들이 환생한 13대 달라이 라마를 찾기 위해 탁사르 마을을 찾아왔다. 승려들은 직감과 꿈의 계시에 따라 터키 색 홈통이 달린 집을 찾아다녔다. 바로 라모의 집이었다. 그들은 라모가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지켜본 뒤 안경과 지팡이, 염주 같은 것을 라모 앞에 꺼내놓고 13대 달라이 라마의 것을 골라 보라고 했다. 라모는 전 달라이 라마의 물건을 정확히 집어냈고, 다음 물건도 제대로 골라냈다. 승려들은 라모가 다시 태어난 13대 달라이 라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라모는 포탈라 궁에 들어가 다른 승려들과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티베트의 예술, 문화, 논리학, 명상 등을 공부하며 지도자가 될 준비를 한 것이다. 그리고 스물한 살에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되었다.  

비폭력 티베트 분리 독립에 헌신
1950년 10월, 달라이 라마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 중국군 8만 명이 티베트를 들어왔다. 티베트 군은 중국군에게 졌고 티베트 인 수천 명이 죽었다. 티베트 인들은 중국에 맞서서 나라에 평화를 가져다 줄 힘 있는 지도자를 원했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이 600만 명이 넘는 티베트 인들의 정신적, 정치적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과의 마찰을 해결하려고 9년간 힘썼다. 심지어는 마오쩌둥을 만나러 중국군의 호위를 받으며 중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1959년 3월 10일, 티베트 인들이 라사에서 중국 점령에 항거하고 독립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중국 군인들은 앙갚음으로 티베트 인 수천 명을 죽였다. 상황이 나빠지자 달라이 라마는 1959년 3월 17일 망명하여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웠다.

 달라이 라마는 국민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평화적인 투쟁을 계속했다. 유엔에도 몇 번씩이나 호소를 했다. 유엔 총회는 1959년, 1961년, 1965년에 걸쳐 세 가지 방안을 마련하고 중국에 티베트 인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독립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달라이 라마는 인도에 대규모 티베트 난민 거주지 50개를 마련했다. 그리고 난민 아이들에게 티베트 언어, 역사, 종교, 문화를 가르칠 학교를 세웠다. 그는 2000년 동안 내려온 티베트의 예술과 과학을 지키기 위해 문화 학원도 여러 개 열었다. 또한 살아 있는 불교를 가르치기 위해 200개가 넘는 수도원을 재건했다.

 비폭력만이 티베트의 독립을 가져온다
달라이 라마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그리고 중국 정부에까지도 동정심과 자비심을 갖게 하려고 애썼다. 달라이 라마로서는 비폭력이 티베트와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단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티베트에는 그와 반대되는 의견도 많았고, 결국 그는 국민들과 이별해야 했다. 중국이 티베트를 쳐들어온 지 30년이 되던 해인 1989년, 달라이 라마는 중국과 무력 충돌 없이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은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Posted by 다른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

http://blog.naver.com/career36/110077839917 

[출처] <왜 건물은 지진에 무너지지 않을까>|작성자 푸른꿈

 

왜 건물은 지진에 무너지지 않을까

마리오 살바도리 | 송민경 옮김

다른 2009.04.20

.

이책이 79년 출간된지 30년이 지나서야
나와 인연이 닿았다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가지 않았을 어린이도서관 덕분이다. 

집짓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건축의 원리, 재밌었고
다 본 후에 에스비에스 스페셜 다시보기로
버즈두바이 짓는 과정을 보았는데
흥미가 한껏 높아졌다

내가 만약 선생님이라면
고학년 아이들에게 꼭 권해주고프다
특히 여자아이들에게 읽혀주고
세상에는 아름다운 동화나
착한 마음씨 나쁜 마음씨에 대한 책이나
기껏해야 역사이야기 예술교양 서적 이외에
머리를 굴려서 생각해야 할
힘의 원리나
정치 경제에 대한 분야에 대한
어색함을 미리 떨쳐주기 위해서 말이다.

 어린이도서관 사회, 과학 열람실에서
소민이는 대부분 "살아남기" 나 "와이" 같은 시리즈 만화를 대출한다

함께 가면 20권 가까이 빌릴 수 있는데
몇권을 할당해준다.
아직까지는 모든 책을 자기 맘대로 고르려 하지는 않는다
나머지는 내가 고른다
창작동화, 고전과 관련한 만화, 원리과학, 사회경제 이야기 등등 
아직 소민이는 창작동화 이외에는
줄글이 많은 책은 읽으려고 하지 않아서
과학이나 사회 책은 내가 주로 읽는다 

그래도 엄마가 보는 책의 제목들은 한번씩 보기 때문에
나중에 정말 숙제가 아쉽거나
새로운 지식과 감성에 목마를때
엄마의 눈을 빌려서
스스로 그 책들을 집어드는 날도 있겠지 

고전을 정리한 웅진 씨리즈가 있었는데
빌려와서 한두장씩 그냥 소리내서 읽어준다

9살도 읽어주면 좋아한다 
건축물의 원리를 설명한
간결한 그림과 실험방법 안내가
훌륭한 책이었다..
 전에 쓴 독후감은 이렇지 않았는데 ^^


Posted by 다른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

행복한아침독서(2010년 2월호): 이 달의 책 선정

 『세 잔의 차』와 『열혈교사 도전기』는 한 사람의 열정과 헌신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책이다.

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 | 김한청 옮김

다른 2009.05.30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K2 등정에 오른 그레그 모텐슨이 조난을 당해 생사의 기로에 서 있을 때 히말라야 발치의 작은 마을 코르페 사람들이 그를 구해준다. 마을 사람들의 친절과 보살핌 덕분에 건강을 회복한 모텐슨은 어느 날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78명의 소년과 4명의 소녀가 선생님도 없이 언 땅 위에 막대기로 숫자를 적으며 공부하는 모습이었다. 이를 본 모텐슨은 덜컥 약속을 해버린다. “이곳에 학교를 짓겠어요. 약속할게요.”

 그 날의 약속은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모텐슨은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 때로는 탈레반에 억류당하기도 하고, 9·11 테러 후에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게 협박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교육 받을 기회를 주려는 산간마을 사람들의 열의와 모텐슨의 의지는 그 어떤 장애도 뛰어넘는다. 지금까지 그가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 산간마을에 지은 학교는 무려 78개나 된다. 여기에서 3만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을 안고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세 잔의 차-히말라야 오지의 희망 이야기

 

열혈교사 도전기

웬디 콥 | 최유강 옮김

에이지21 2009.07.17

『열혈교사 도전기』는 많은 어린이들의 삶을 바꾸고, 미국 대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 10위에 오른 ‘티치포아메리카(Teach For America, TFA)’에 대한 이야기다. TFA는 엘리트 대학 졸업생들을 선발해 2년간 빈민지역의 공립학교 교사로 봉사하게 하는 비영리 교육단체인데, 1990년에 처음 사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2만여 명을 파견하여 근본적인 교육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가난한 지역의 학교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며 전 미국이 주목하는 사회적기업이 된 TFA는 불과 스물한 살이었던 대학생 웬디 콥의 아이디어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너무나 무모하게 보였던 한 젊은이의 아름다운 도전은 꿈과 열정이 있었기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그 혜택은 온전히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모든 아이들이 고른 교육기회를 누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도전에 우리도 함께해야 하지 않을까?


                                            사진: 세 잔의 차-히말라야 오지의 희망 이야기

이 책들은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우리가 이러한 일에 관심을 가질 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생업까지 포기하며 자녀들이 교육 받을 학교를 짓기 위해 40킬로그램이 넘는 짐을 등에 지고 수십 킬로미터를 나른 산간마을 가난한 부모들의 애타는 마음이 가슴을 울린다. 아이들에게 고른 교육의 기회를 주는 일에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중2부터)



한상수_㈔행복한아침독서 이사장 

 
Posted by 다른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