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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거리를 이안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간다. 이안은 걸으며 한 노인을 생각한다. 노인은 사과 하나를 꺼냈다.
“여기 잘 익은 사과가 하나 있다. 무엇이 보이지?” “빨간 구 모양의 물체요.” 노인이 준 장치를 귀에 대고 사과를 보니 보라색으로 보인다.
노인은 “이안, ‘사물이 보이는 것’과‘존재하는 것’ 사이를 구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단다.” 

과거에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은 철학을 어려운 이름의 '암기'와 무슨 설이니 이론이니 하는 것에 질리곤 했다. 시간이 갈수록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 만큼 철학에 목마르게 되었지만. 논술이 도입된 이후 족집게 예상문제와 예상답안이 주관식으로 비싸게 팔린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청소년기의 독서는 삶에 중요한 과정이다.  

철학 혹은 사유는 삶의 나침반 같은 것이다. 철학자 박이문 교수는 지식과 철학의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철학은 지식의 축적이나 기술의 연마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믿고 있던 모든 것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고 거기서 놀라움을 발견하고, 그 놀라움을 그 경이를 풀기위한 논리적 구조를 추구하는 능력의 행사 자체이다. 지식을 객관화할 수 있는 정보의 소유라고 한다면, 사유는 한 주체의 실존적 경험에 기초한 자율적 행위이다.”  

철학을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이야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 이야기를 통해 사유의 과정을 공유할 수 있다.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가거나 한발 벗어나 묻고 답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문학은 입문자들을 위해 좋은 안내자 같은 역할을 한다. 드림위버』는 중학생 주인공들이 멘토(노인), 세상(부모)과의 대화를 통해 지식, 자아, 과학, 신의 문제, 자유의지 등의 묻고, 답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소설적 구성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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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위버>는 철학적 문제를 14장으로 분류를 하고 철학에 있어 거의 모든 문제를 차례로 연결하여 사유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안은 밤의 여행을 통하여 철학적 사유에 접근하게 되고 다음 날 아침에 부모와 토론을 하면서 사유를 더 공고히 하게 된다. 또 친구 제프와 산책을 하면서 자신이 얻은 지식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우리가 안다고 믿고 있는 것을 우리는 과연 알고 있는 것일까 하는 문제로부터 철학적 첫 사유를 시작한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고 있고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착각이며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과 같은 지, 보이는 그대로가 실재인지 의심해 보라고 말을 하면서 우리가 믿어왔던 감각이라는 것도 사실은 그다지 믿을 만한 게 아니며 우리의 뇌와 이성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사실은 그대로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하여 충격을 받았다. 모든 것을 끊임없이 의심하라는 말에 멀미를 느꼈다.


자아, 이성, 정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서는 정신과 같은 비물질적인 것은 육체와 같은 물질에 영향을 줄 수 없다.’
-52쪽-


‘영혼과 정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며 시간이 지나도 동일한 사람으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란 아무것도 없다.’ -96쪽-

‘정신은 육체적인 자아 너머에 존재한다.’- 104쪽-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솔직히 읽는 내내 소피스트들이 생각났다. 혼란스러웠다.


우리가 배우는 과학이라는 것이 오늘은 진실일지 몰라도 영원히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오늘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새로운 발견에 따라 사실과 다른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과학을 진리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칼 포퍼는 말을 하고 있다. 어떤 법칙이 어떤 상황에서 유효하다고 해서 모든 상황에서 유효한 것은 아니다.(128쪽) 따라서 과학자들이 무엇인가를 확증할 때는 증명했다고 말하지 않고 아주 강한 근거를 발견했다고 말해야 한다.


역설을 설명하면서 숲에서 나무가 쓰러졌는데 듣는 사람이 없다면 소리가 난 것일까 물었다. 물음의 요지는 존재와 의미에 관한 것으로 나는 인식을 했다. 나무가 쓰러졌다면 쓰러지면서 아주 작은 소리일지라도 쓰러지는 소리는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식하는 사람의 존재가 없을 때는 그 의미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신은 어떤 이는 인간이 믿음 속에 신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신을 만들 것이라는 말도 하고 있다. 신의 존재여부, 존재형태에 상관없이 인생에 목적을 정할 수 있어야하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돕고 교감하면서 우리 인생을 만들어 가야한다고 느꼈다. 우리는 신을 전지전능한 절대선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신이 악을 알면서 그것을 허용한다면 신이 절대선이 될 수 없고 악에 대하여 모르거나 막을 힘이 없다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생각해 봤다. 선악의 문제는 관점의 차이인데 그것이 과연 신의 존재가지 부정 할 만한 논증인지는 의문스러웠다. 또 우리가 느끼는 불안, 공포, 불행은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며 무한히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이 어떤 형태로 우리들 앞에 나타나는지 그 징후를 발견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면서 인간의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 안을 들여다보고 자기 안의 소리를 들여다보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해탈이라는 말을 하는데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우리고 마음을 들여다보려 노력한다면 큰 과오 없이 편안한 사람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종교와 이성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자유의지란 이것저것을 선택 할 때 어떠한 강요 없이 자유롭게 의사를 결절하는 것을 말하는데 신의 전지전능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대립적인 의미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선택한 것 내지는 주어진 것(DNA, 환경, 부모와 집 그리고 양육)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인간의 무의식은 행동과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본성과 환경 또한 우리가 의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우리의 잠재의식에 영향을 끼친다. 인간들이 자유의지라고 믿고 있는 것도 어쩌면 우리의 무의식내지는 잠재의식에 영행을 받고 있으며 자유롭지 않은 반복된 행동에서 습득된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모든 결과까지 예상하고 하는 경우보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무심히 일을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무심히 행한 일이 어떤 때는 후회로 돌아오고 어떤 때는 기쁨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 장에서는 마더 테레사 수녀가 살아생전 선행을 베픈 것은 사실일지라도 그가 불멸의 이름을 얻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투자 대비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럴까? 단순 비교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순 비교로 얻은 것이 많다고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는 예시로 내세울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더 테레사 수녀가 선행을 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남을 돕고 있다고 생각 했을까? 그녀는 그녀의 가치관과 양심에 따라 행동을 했을 뿐인지도 모르는데.....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를 설명하면서 굳이 마더 테레사를 예로 들건 뭐람.’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처음에는 휘둘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든 생각은 궤변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 없이 머리가 복잡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 가면 갈수록 어떤 예시는 내가 동의하지만 어떤 예시에는 동의 할 수 없다고 하는 것들이 나타났다. 정말 열심히 책의 내용을 따라갔다. 책장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어려운 책을 포기하지 않고 읽은 내가 자랑스러웠고 다른 하나는 제시 된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는 것이다. 지금 책 내용을 이해 정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존재에 대한, 내 삶에 대한 질문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힘들었지만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 written by 아폴론

드림 위버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잭 보웬 (다른,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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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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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2일 저녁 서울 명동에서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 참가자들로 추정되는 시민들을 연행하고 있다. (사진 : 한겨레21)

민주주의는 '겸손'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합법적인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정부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고,
그 방법이 다소 격렬하다면 반정부투쟁이라 할 수 있을까?
저항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것을 들어줄 정부를 근본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정부를 완전히 불신한다면 행동조차 하지 않을 것이고,
별도의 정부를 구성하려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반정부'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항상 정부에 대해서 웃는 얼굴로 고분고분 따라야 한다면 선거를 치를 것 없이,
전두환이나 박정희가 했던 것처럼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으면 될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말이 몹시도 폭력적으로 쓰이는 부분에 대해서 좀더 근본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대검찰청 노환균 공안부장이 지난 토요일 대전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도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폭력시위를 벌인 사람들을 엄벌하겠다고 어제 밝히며  “불법과 폭력을 통해 의사를 관철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 자가 말한 민주주의라는 것은 힘을 가진 특정한 사람들의 소유권으로 전락한다.

민주주의란 근본적으로 '겸손'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항상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소수의견'이 빛을 볼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특징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바람에 진정한 의미를 오해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최초 입안자들은 '다수의 폭력'을 항상 경계했다

민중을 뜻하는 그리스어 mo와 힘을 뜻하는 croto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민주주의(democracy)는 민중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대표를 선출하는 정부체제를 말한다.
이론상으로, 민주주의는 민중에게 목소리를 준다. 하지만 이것은 민중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문제와 다수가 다른 사람을 희생하여 자신의 이익을 얻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액튼 경은 다수가 성공하는 것은 종종 무력이나 속임수를 통해서라고 주장하면서 민주주의는 '다수의 폭력'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에 공헌한 철학자나 지성인들은 민주주의의 위험성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결함이나 불완전성을 걱정했다. 민주주의가 꽃피우기 위해서는 이런 선현들의 우려를 항상 잊지 말고 품어야 한다. 마치 민주주의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완성된 구조물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민주주의는 산산이 조각나고 만다.

"신이라는 민중이 있다면 그들의 정부는 민주적일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정부는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 - 루소

"민주주의는 집단적인 지혜에 대한 슬픈 믿음이다." - H.L..멩켄

"민주주의는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하더라도 가장 나쁜 정부이다." - 윈스턴 처칠


※ 위 글은 다른 출판사의 <드림위버>를 참조하였다.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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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정성의 원리는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양자역학보다 훨씬 발전된 개념입니다.
이 이론은 움직이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를 알기 위해서 다른 하나에 영향을 주어야 하죠. 기본적으로 과학자들은 원인과 결과의 메키니즘 밖에서 작용하는 입자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죠. 뉴턴의 역학도 모든 입자에 적용되지는 않았습니다.

현대물리학 이론은 입자가 공간의 특정 점을 차지할 확률을 알 수 있습니다. 1930년대 슈뢰딩거 방정식이 널리 받아들여졌는데, 슈뢰딩거는 입자의 위치는 확률함수로서만 표현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양자물리학으로는 입자의 위치를 결정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는 “양자 극미세계에서 에너지는 자연발생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타났다 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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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유는 자신의 욕구는 알고 있지만 그 욕구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모르고 있는 아기와 같습니다. 그래서 만약 인간의 자유의지가 제한돼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인간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겠죠. 어디까지가 자유이고 어디까지가 그렇지 않다면 자유를 보다 경제적으로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말 아닐까요.

철학소설 <드림위버>에서는 팬케이크의 예가 나왔네요. 주인공의 외할머니가 이렇게 말했군요.

네가 이성에만 의존했다면 너는 아직도 접시만을 바라보며 앉아 있어야 할 거야. 하지만 너는 팬케이크를 먹는 것이 굶어 죽는 것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합리적인 선택이지.

이것은 뷔리당의 당나귀를 생각나게 합니다.
중세 철학자 장 뷔리당은 똑같은 건초더미 사이에 서 있는 당나귀 이야기를 재미있는 우화로 들려줍니다. 그 상황에서는 어느 것이든 아무거나 먹는 것이 합리적이지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근거를 찾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두 건초더미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지 합리적인 근거를 찾지 못한 당나귀는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죽고 만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시험을 볼 때 답을 선택해 놓고 다시 망설이다가 결국 시험을 망치는 일도 있고, 쇼핑을 가서 오랫동안 물건을 고민하다가 쇼핑을 망치는 경우도 있죠. 물론 쇼핑 자체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지만.

그래서 가끔은 이성보다 직관이 더 쓸모가 있습니다. 파스칼이 이런 말을 했죠.
당장 죽을 위기에 있는 철학자에게 이성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 프랑스의 대표적인 모랄리스트 블레이즈 파스칼. 그는 인간이 비참하면서도 동시에 위대한 존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극단적인 상황 앞에서 인간의 무기력을 고발하는 수상록 <팡세>를 남겼다.
Posted by 소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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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공문 한 장을 받았습니다.
이번 제74차 청소년권장도서에 다른 출판사의 <드림위버>가 선정되었다는 낭보였습니다.

책따세나 간행물윤리위원회의 도서 선정방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 참여했던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누리꾼들이 써 놓은 서평이나
그 책과 관련한 블로그 글과 그에 대한 반응이 판단의 중요한 척도가 된다고 합니다.

소설로 읽는 유쾌한 철학이야기인 <드림위버>를 읽고
30개가 넘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는 반응이 폭발한 것도 있습니다.

철학은 자신을 돌아보겠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에게만 마음을 여는 책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철학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치스럽다는 이야기를 듣기 십상이죠.
그래서 블로그의 글을 통해서 다가가기 쉽게 소개하고 정리를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겠지만,
<드림위버>의 판매고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더 쉽고 재미있게 <드림위버>의 진가를 알리겠습니다.
성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려요~~



 

▲ <드림위버>는 이안이라는 소년이 꿈속에서 할아버지를 만나며 철학여행을 떠나고 토론을 벌이는 소설입니다. 소설의 형식을 온전하게 빌려왔는데 철학만이 보여주는 '토론'의 형식을 소설에 배합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즉, 꿈속에서는 할아버지와 역설이나 허무 등 다소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해서 토론하지만, 현실에서는 과학자와 사회학자 부모님과 함께 온건한 토론을 하기 때문입니다. 꿈과 현실의 토론이라는 재미있는 구도가 소설 전체에 흐르고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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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의 주인공은 지독한 구두쇠 영감입니다. 얼마나 구두쇠냐 하면 인력거를 타고 차비를 내야 하는데, 인력거 기사도 함께 탔다며 차비를 반만 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구두쇠 할아버지 윤직원 영감에게도 천적이 있었으니 바로 손자였습니다. 손자는 윤직원 영감이 구두쇠인 것을 알고 필요한 돈을 두 배로 올려 부릅니다. 예컨대 등록금을 200만원이라고 속이면 100만원을 타낼 수 있는 이치입니다. <태평천하> 중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바로 공간과 역설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원에서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멀리 보이는 화장실까지 가게 되었다고 했을 때 논리적으로 화장실까지 영영 도착하지 못합니다. 현재 위치로부터 화장실까지 가는 길은 무수한 지점의 연속으로 되어 있고, 우리들의 수명은 유한하기 때문에 결코 화장실까지 갈 수 없죠.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고 할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틀리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가는 길에 중간지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중간지점에 도달할 때마다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A에서 B까지의 중간지점 H에 도달하자마자 H에서 B까지 또 반을 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이 공간역설의 비유를 인생관에 멋지게 표현한 사람이 바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입니다. 토인비는 “역설적이지만 중요하면서도 심오한 인생의 원칙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목표 그 자체가 아니라 목표 너머 좀더 야심에 찬 목표를 겨냥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에 정해진 목표와 한계는 없습니다. 꿈을 크고 높게 가져야 하는 까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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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위버>에서는 신의 대리인과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회자 : 시청자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이 분은 자신을 ‘꿈 속의 남자’라고 밝히고 있군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은 너무 무거워서 자신도 들 수 없는 바위를 만들 수 있을까요?”
신의 대리인 : 물론 할 수 있죠. 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요.
사회자 : (표정이 어두워진다) 예, 그렇군요. 하지만 이 질문에 긍정으로 대답하신다면 아주 심각한 혼동이 있을 것 같은데요. 만약 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는 할 수 없는 것을 창조한 것 같군요. 그러나 신이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는 전능한 것이 아니잖아요?
신의 대리인 : 그렇군요.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답은 분명히 ‘아니요’입니다.
사회자 : 그러나 그것 또한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신이 정말 전능하다면 그는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의 대리인 : 맞아요. 진퇴양난이군요. 괜찮으시다면 신의 다른 속성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군요.

이 인도의 신, 야마는 염라대왕과 저승사자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재미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신이라는 전능한 존재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즉 전능한 존재든 전능하지 않은 존재든 할 수 없는 것을 전능한 존재에게 요구하고 있는 셈이죠. 예컨대 신에게 둥근 사각형을 만들어보라고 하는 것과 같죠. 이처럼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둥근 사각형, 결혼한 총각, 아프지 않은 두통, 네 변의 삼각형, 자기보다 더 힘 있는 것을 만드는 전능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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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긴또깡 2009.07.12 1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느님께서 전능하시다고 말하시면서 들수없는바위를 말하시다뇨..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지만 님께서 그것을 믿지않기 떄문에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지만 님께서는 의문이 생기는겁니다 ㅎ

  2. 긴또깡 2009.07.12 1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다인이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믿지 않아서 생긴 의문들이랑 같은것처럼요~


<철학>과 <소설>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은 위험하다. 철학은 개념으로 말하고, 문학은 이미지로 말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두 가지 모두 잃기 십상이다. 두 영역의 문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철학 소설이나, 철학적인 내용을 전달하려는 소설들은 이 문법적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대부분 실패했다. 하지만 철학의 개념을 보존하면서도 소설의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다면 두 가지를 모두 갖출 수 있다.

<드림위버>(다른)는 소설로 읽는 철학책이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소설적인 특징을 철학적인 특징에 묘하게 결합시켰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상황설정’인데, 철학사를 다양한 소설적 상황으로 볼 수 있어서 의미가 분명히 들어왔다. 많은 철학자를 등장시키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세계로 철학자들을 이해하고 현실에서 만나는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철학사를 온전히 재현해 낸다.

특히 <드림위버>가 창조했다고까지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장치는 ‘꿈’과 ‘현실’의 토론이라는 형식이다. 주인공은 꿈속에서 만난 노인을 통해서 회의주의와 역설이라는 난감한 상황을 맞지만, 현실에서는 엄마아빠와의 토론을 통해 온건하고도 현실적인 관점을 회복하게 된다.


예컨대 모래더미에서 모래 알갱이 하나를 아무리 여러 번 빼도 그것은 더미라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다는 노인의 명제에 대해서, 현실의 아버지는 '모호한 언어'를 가지고 반박한다. 즉 단어가 아무것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함한다면 결국에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398쪽)

이 꿈과 현실의 토론이라는 과정은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의 모양을 이룬다.





▲ 1만개의 모래알갱이로 이루어진 모래더미가 있다고 했을 때, 여기서 1개의 알갱이를 뺀다고 해도 모래더미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1개씩, 1만번 반복해서 모래알갱이를 줄여간다면 어느 새 모래더미는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 때 '더미'란 모호한 용어로 명확한 개념을 설명하기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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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들어왔는데 다소 불안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짐?"
커티스 박사가 인사하자 그는 좀 편안해진 것 같았다.
"앉으세요."
그는 손을 무릎에 가지런히 놓으면서 의자를 앉았다.
"오늘은 무슨 일이세요?"
"최근에 비행기를 타는 것이 불안해졌어요. 승객들을 믿지 못하겠어요."
"정확하게 무엇이 두려운 거죠?"
"그럴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승객 중 하나가 폭탄을 들고 비행기에 탔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조사 결과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5만 분의 1이라고 했지만 내 불안을 없애줄 만큼 낮은 수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내가 그 숫자를 더 낮추면 도움이 되겠어요?"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해졌다.
"좋아요. 당신이 할 일은 폭탄을 갖고 비행기에 타는 거에요."
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설명했다.
"한 사람이 폭탄을 들고 비행기에 탈 확률은 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아주 낮아요. 그러니 두 사람이 폭탄을 갖고 같은 비행기에 탈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상상해 보세요. 따라서 당신이 폭탄을 갖고 비행기에 탄다면 또 다른 사람이 폭탄을 갖고 비행기에 탈 확률은 천문학적으로 낮아질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두려움 없이 비행기 여행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는 미소지었다.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황당하고 말도 안 되는 제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마음을 돌려놓거나 마음의 방향을 바꿔놓으면 아주 심각한 사태도 별 거 아닌게 되어 버린다.
커티스 박사는 말했다.
"모든 것은 네 마음에 달려 있단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어도 네 마음을 바꾸거나 그것을 바꾸면 된단다. 모든 문제는 그 안에 해결점을 가지고 있단다. 네 문제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찾는 것이라 해도 말이야."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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