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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페르마는 350년 동안 풀리지 않은 수학 문제를 제기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서 알려져 있는 이 문제는


여기서 n의 값을 구하는 것이다.
컴퓨터는 n에 대해서 숫자를 계속 대입했지만 답이 나올 수 없었다.
수학자 앤드류 와일즈는 1993년 150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으로 완벽하게 증명했다.



컴퓨터는 계산은 잘 하지만 증명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피카소도 컴퓨터는 그저 답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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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 과학윤리와 과학자윤리로 보는 우리나라의 과학 문제

황우석 스캔들은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지식의 대융합>의 저자 이인식 씨에 의하면 참여정부 시절 국내 유명한 과학자들이 비밀리에 스웨덴까지 갔다.
황우석 박사를 노벨생물학상에 수여해달라고 로비를 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대규모 로비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사실은 황우석 스캔들 이후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그들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과학자들이며 보통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사실에 대해서 아무도 고백하는 사람이 없다. 과학의 영광은 앞다퉈 보도하고 밝히지만, 어두운 면은 스스로를 가리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철학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자 자신'의 문제다.

▲ 토머스 쿤은 시대흐름에 따라 과학의 성과가 쌓이는 사고방식에 대해서 거부했다.  

이것은 과학의 바깥의 모습이다. 그 내용으로 들어가면 과학의 실체에 대해서 알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는 과학과 진리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뉴턴의 의론과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모두 과학에 속하지만 둘 다 진리일 수는 없으며 오히려 둘 가 거짓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칼 포퍼의 말이다.
과학자들은충분한 실험이 언제 충분할지 객관적으로 결정한다지만, 그것은 단지 '객관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주관주의적 결정일 뿐이다. 실험결과가 축적되고 성과가 쌓일 수록 우리의 과학이 발전된다는 착각은 토머스쿤에 의해서 거부된다.
토머스쿤은 이론과 자료가 축적되면서 진보한다는 개념을 거부하고 과학 발전의 평화적 시기는 폭력적인 지식 혁명에 의해서 종결될 막간극에 불과하다고 했다. 축적적 사고가 아니라 비축적적 사고이며, 패러다임이 교체할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패러다임은 그 시대의 관습과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흐름이기 때문에 쉽게 교체되지 않는다. 교양이 있고 지적이며, 과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일수록 가장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가장 근본적인 선입견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이야기했지만, 황우석 문제는 우리에게 과학의 윤리와 과학자의 윤리라는 두 질문을 동시에 던져준다.
황우석 연구실에서는 그 흔한 실험노트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그리고 불리한 정보는 철저히 차단시킴으로써 스스로 과학자의 윤리를 저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 과학에 대한 일반 대중 저변이 발전해야만 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의 과학 저널리즘은 '제로'(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계의 내부고발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 위 내용은 <드림위버>(다른출판사) 제3장 <과학> 편과 이인식 선생의 르네21강연 내용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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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을 본 사람이라면 하나의 살인사건을 두고, 모두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라쇼몽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1950 / 일본)
출연 쿄 마치코, 모리 마사유키, 미후네 도시로, 시무라 다카시
상세보기

일본의 명감독 구로사와 아키라가 만든 라쇼몽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사건이 벌어진 배경은 녹음이 우거진 숲속. 사무라이 타케히로(모리 마사유키)가 말을 타고 자신의 아내 마사코(교 마치꼬)와 함께 오전의 숲속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늘 속에서 낮잠을 자던 산적 타조마루(미후네 도시로)는 슬쩍 마사코의 예쁜 얼굴을 보고는 그녀를 차지할 속셈으로 그들 앞에 나타난다. 속임수를 써서 타케히로를 포박하고, 타조마루는 마사코를 겁탈한다. 오후에 그 숲속에 들어선 나뭇꾼은 사무라이 타케히로의 가슴에 칼이 꽂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관청에 신고한다. 곧 타조마루는 체포되고, 행방이 묘연했던 마사코도 불려와 관청에서 심문이 벌어진다.

 문제는 겉보기에는 명백한 듯한 이 사건이 당사자들의 진술을 통해 다양한 진실을 들려준다는 점이다. 즉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먼저 산적 타조마루는 자신이 속임수를 썼고, 마사코를 겁탈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무라이와는 정당한 결투 끝에 죽인 것이라고 떠벌린다. 하지만 마사코의 진술은 그의 것과 다르다. 자신이 겁탈당한 후, 남편을 보니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초리였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신을 경멸하는 눈초리에 제정신이 나간 그녀는 혼란 속에서 남편을 죽였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무당의 힘을 빌어 강신한 죽은 사무라이 타케히로는 또다른 진술을 털어놓는다.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배신했지만, 오히려 산적 타조마루가 자신을 옹호해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자결했다는 것이다.

라쇼몽이 아니라도 우리 영화 <오! 수정>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수정(이은주) 과 재훈(정보석)의 기억이 입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실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현실을 구분하는 방법은? 철학 교양소설 <드림 위버>에는 오렌지 빛으로 비춘 하얀 티셔츠를 상상해보면, 관점마다 현실이 다르게 보일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경험론 : 경험적 법칙에 의해 셔츠는 흰색이다.
현상론 : 인간의 눈에 셔츠는 오렌지 색으로 보인다.
실제론 : 우리의 감각은 셔츠 '그 자체'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셔츠 '그 자체'의 색에 도달 할 수 없다.
(P.34)

이쯤에서 우리 현실의 사건들로 돌아와보자.

국회에서 칠순 노인 한 분이 국회의원과 실강이를 벌였다. 눈에 상채기가 났다. 여기에 경찰은 수십명의 합동수사본부를 차렸다. 왜? 국회 내의 폭력 사태이기 때문에. 마침 당일 여당의 국회의원이 다치는 사건이 있었다. 영등포경찰서장은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즉각적인 수사본부 결성과 현장 체포, 구속 수사를 다짐한다. 

여기서 경험론으로 보면, 이번 폭력 사태가 특별하다고 판단했다. 근거(?)는 민간인의 국회의원과의 다툼이라는 점인데,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도 전에 한 나약한 국회의원에 대한 집단 폭행으로 몰고 간다. 구속영장 청구와 체포영장, .. 등등 무시무시한 압박을 가한다.

또다른 사건, 장자연을 보자.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불 명확하다.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에 대해 물질적, 정신적 압박이 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경찰은 문서에 적시된 명단조차 공개를 안한다. 수사는 하되,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형사처벌, 공개, 비공개 종료 등으로 분리 대처를 한다고 한다. 이는 마치 경찰이 문제가 된 유력인사에 면죄부를 준다는 의혹마저 준다. 

 

경찰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인식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라쇼몽>, <오! 수정>이 그렇고, 우리가 보는 빛이 반사되어 나오는 것이니 실체적 색을 논하기에 우리의 지식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불완전한 지식이, 공권력의 행위 주체자의 권력남용을 용인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90% 죄가 있음에도 10%의 죄없음을 강조하고, 죄가 없다는 것을 상당히 공감해도 유죄의 여지를 강조하는 것은 지들 마음대로 이다. 

그래서  똑같은 행동을 해도, 구속되는 사람과 집에서 발 뻣고 자는 사람이 나온다. 

만약, 이런 편파성을 지적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증명 불가능한 기준 때문에 명예훼손권의 족쇄를 차기 쉽다. 명예훼손이 안되려면 실체적 증명을 의혹 제기자가 풀어야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선량한 양심만 있는 사람이 고급정보를 어떻게 얻겠는가. 그냥 콩밥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공권력에게 항상 권력남용의 여지를 준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구체적인 수사지침을 국민의 감시하에 제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찰자치제의 시행도 권력의 꼭두각시로 전락할 수 있는 경찰을 국민에게 되돌리는 좋은 방법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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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향기로운 바람 2009.04.06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하고싶은 말들을 잘 정리 해 주셨군요..
    .. 마음에 분노만 있지.. 어찌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 힘없는 서민들의 생각을 ..

  2. 견찰애비 2009.04.06 1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니 견찰이지 달리 견찰이겠수...
    호로색히들...

  3. as 2009.04.07 1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들의 잔치가 벌어짐

  4. 그건 2009.04.07 1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등신같은 독자들 힘 믿고 까부는거지..

소설로 읽는 철학책 <드림위버>는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문제들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이해하는 훈련을 시켜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취지에 맞게 우리 생활과 밀접한 문제에 대해서 철학토론을 전개하려고 합니다.
책을 읽고 시사에 밝으신 분들이 시사 쟁점을 두고 토론글을 올리면 이에 대한 수긍이나 반박을 해주시면 됩니다.
때로는 필자의 글이 공격적이고 거칠다고 하더라도 페이스를 잃지 말고 논리적인 반박과 재반박을 해주시거나 긍정논거를 통해서 필자의 주장을 강화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주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바는 두 가지입니다. 바로 '작고' '강한' 정부입니다.
작은 정부라는 것은 민영화와 규제철폐, 감세 등 신자유주의적인 특징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당연히 서민들의 복지를 베어내 부자와 강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정치형태가 나타납니다.
그러면 당연히 반발이 생깁니다. 이럴 때 나오는 것이 '강한' 정부입니다. 한마디로 데모에 적절히 대응하고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어야 정부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작고'와 '강한'은 형용모순이 됩니다. 큰 정부가 강하고 작은 정부는 약하다는 게 상식인데 말 자체가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가 아닙니다. 재벌기업이 정부에 연합해 이루어지는 대연합 중에서도 대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정부라면 스스로를 지켜내기 어렵겠죠.
용산참사나 촛불시위에 대한 탄압, 언론에 대한 탄압 등 최근의 정부의 '무서운 모습'을 보면서 이것을 제1주제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토론을 감상하시죠.


제1주제 : 경찰의 강권 통치는 시민들의 '자유의지'를 속박하기 위한 수단이다.

▲ 엠네스티가 발표한 촛불집회 보고서에 들어간 삽화. 전경들이 시민들의 바로 앞에서 분사소화기를 난사하고 있다. 실명의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는 아찔한 순간이다.

2008년 5월 수 십만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처음에는 집회 결사의 자유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듯 도로로 나서지 않으면, 시위군중에 물리력을 행사하려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시위대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바리케이트가 등장하고,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잡혀가는 것을 '닭장투어'라고 부르며 자랑스럽게 붙잡혀 갔다. 정당한 요구를 위한 희생을 당연히 받아들인 것이다.

소위 공권력은 이런 경우 시민 대중에게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순히 손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순수한 사람들을 무조건 잡아갔다. 단순히 도로교통법 위반이나 집시법 위반이라면 간단한 조사 후 훈방하거나, 추후에 벌과금을 내게 하면 되는 것이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48시간에 가까운 시간동안 가두었다. 또, 구체적인 증거 없이 시위대를 일반적으로 200만원이라는 과중한 벌금을 매겼다.

시위 주체측을 잡아도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시위는 이러한 공권력이 시민에게 일방적인 권한 행사를 하는 순간, 시민들의 시위 참가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공권력의 승리이자, 한편으로는 권력에 의해 시민들의 '자유의지'가 훼손된 것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결국 자유의지로 자신들의 행동을 할 수 있다. 법이라는 형태로 규제는 가능하지만, 헌법은 자유의지를 보호하고 있다. 그럼에도 권력을 소유한 자들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같은 법을 빌미로 권력행사를 행하는 순간 헌법상의 보호 항목인 시민들의 자유의지를 깰수 있다. 즉 정당성을 떠나 처벌이라는 물리적, 경제적 불이익은 자유 의지에 따른 행동을 제약한다. 행복추구권, 집회결사의 자유 등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른 행동은 법을 집행하는 집단에 의해 왜곡된다.

우리는 왜 벌하는가
정부에 의한 처벌을 정당화하는 패러다임 두 개.
1. 공리주의: 다수의 이익을 위하여 유사한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처벌한다.
2. 응보주의 : 죄를 범해서 처벌할 만하기 때문에 처벌한다. p.372 <드림 위버>

이제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이유로 재판에 계류 중이다. 야간 집회금지가 위헌판결이 나지 않는 한 선량한 시민들은 주장의 정당성이나 오히려 공권력으로부터 당한 부당한 대우(폭력, 부당한 유치, 과다한 벌과금)는 도외시 된 채, 벌금을 줄이기는 위해서는 법관의 선처(?)를 호소해야 할 상황이다.

지금 벌금을 줄이기 위해 법의 선처를 받을 것인지, 자신의 자유의지의 정당성을 주장할 것인지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람들의 고민이다.

이렇게 공권력의 권력 남용은 시민들의 자유의지를 언제든지 훼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청소년철학소설 <드림위버>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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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유의지 신앙 2009.03.31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이는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이 신앙적인 수준인 것 같네요.
    자유의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정부가 그것을 지켜줘야 하나요. 역사상 어떤 정부도 자유의지를 지켜준 적이 없습니다. 자유의지를 쟁취하기 위해 피를 건 사투를 벌였던 사람들이 정부를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를 만들었을 때 자유의지가 한 꺼풀 벗겨진 적은 있어도, 알맹이도 없는 '자유의지'에 정부가 마음 조리면서 챙겨주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역대 정부는 자유의지에 대한 당연함보다는 권력의 지시에 대한 당연함을 우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시민들에게 자유의지가 더 많아졌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논란 속에는 국민들이 너무 건방져졌고 버릇없어졌다는 비아냥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 쪽 입장이 아니라 자유의지의 탄압사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2. 장산 2009.04.02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유의지>가 싸움과 투쟁의 산물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려는 자유의지 마저도 정부의 책임자가 싫어하는 내용이라면,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결국,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되었다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변화가 사실은 자신의 이기심을 유지하려는 인간들로 인해 쉽게 날아가 버리는 우리의 현실은 민주주의가 아직도 요원하다는 점입니다.

    결국, 권력은 부에 직결되고, 권력을 남용해도 가진자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하지 않는한 언제든지 가진자들에 의해서 선량한 의지는 찟기고 없어질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판에 임하는 개인들이 파편화 되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3. how to 2009.04.06 1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유의지 자체는 사회적으로 중요한게 아니고, 남의 자유의지를 물리적으로 억압하는 것은 안된다는 게 중요하죠.
    더군다나, 공권력의 힘을 가지고... 마치 내팔로 내목을 조르는 상황인데,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게 요새같은 때가 아닐까... 가만 냅둬도 먹고살기 힘들어 지게 만들어 놓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