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뱅크시'란 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얼굴 없는 아트 테러리스트 혹은 게릴라 아티스트로 불리는 그는
오래 전부터 영국 대영 박물관에 쇼핑 카트를 밀고 다니는 원시인 암각화를 몰래 전시했고,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같은 유명한 곳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전시하기도 했던 예술가랍니다. 

또한 그가 영국 브리티쉬 미술관에 설치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시각을 담은 <원시인 마켓에 가다>라는 작품은 뱅크시의 웹사이트를 통해 그 사실이 알려진 후 미술관 측에서 이 작품을 영구소장 목록에 포함시키기도 했고, 배우인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는 <소풍>이라는 그의 작품을 구입하기도 했답니다.  

2005년, 이스라엘이 자살폭탄 테러범의 침입을 차단하는 명분 아래 길이 790km에 달하는 거대한 장벽을 건설하고 있을 때 그곳을 방문한 그는 전쟁단절을 상징하는 칙칙한 콘크리트 장벽에 파란 하늘과 열대 해변을 그려 놓아 바라보고 있노라면 '희망'이란 단어가 저절로 생각나는 작품이었죠.  

그런 그의 그림을 두고 독자인 No-buta님은 "팔레스타인 장벽에 그려넣은 그림들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그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자본제 사회에서의 물질주의, 소비주의를 비웃고 생태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권위만 내세우는 제도권 미술에 도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초창기에 거리 벽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놓고 사라지던 그의 그림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줍니다. 또한 반전을 테마로 한 그의 작품들은 선동적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그를 모른다면 그의 그림을 한번 만나보세요. 그림 속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곰곰 생각하면서.

 뱅크시의 홈페이지로 가는 길 => http://www.banksy.co.uk/  






Posted by 다른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


""
""
▲ <바시르와 왈츠를>(다른)에서 주인공 아리 폴먼의 친구 카미가 고백한 경험사례다. 병사들은 적군이 득실대는 해변에 도착하고 나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보이는 것은 무엇이건 간에 총으로 쏘았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는 가족이 탄 차량이 있었는데 병사들은 그들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선량한 가족이었다는 사실은 날이 완전히 밝고 나서야 밝혀졌다.

외신에게 알려진 이스라엘 병사들의 학살 경험

최근 외신을 통해 이스라엘 병사가 가자지구에서 있었던 학살의 만행을 고백한 것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전투기 조종사와 보병으로 가자 전쟁에 참전했던 이츠하크 라빈 예비군사학교 졸업생들이 지난 13일 학교 심포지엄에서 이스라엘의 만행을 털어놨다고 현지 일간 하레스 등이 19일 보도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바시르와 왈츠를>(다른)이라는 책의 내용과 흡사하다.

"가족들을 한 방에 몰아 넣었는데, 며칠 후 그들을 풀어주라는 명령이 있었다. 보병 지휘관은 그들에게 '오른쪽으로 나가라'고 했다. 여성과 두 자녀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왼쪽으로 갔지만, 지휘관은 지붕 위에 있는 사수에게 '그들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수는 그들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즉시 총을 쐈고 그들은 죽었다."

병사들은 전장에서 테러의 위협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 끝에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는 "당시에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생명은 이스라엘군의 생명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가득했기 때문에 의도된 실수도 정당화되곤 했다"고 고백했다.

다른 분대장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털어놨다.

이스라엘군이 접수한 주택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을 걸어가는 나이든 팔레스타인 여성을 총쏴 숨지게 한 병사는 "이 여성은 아무런 무기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우리는 총을 쏴야 했다. '길에서 사람을 발견하면, 무기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쏴라. 왜냐하면 테러리스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전에 이스라엘 군은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동안 높은 수준의 도덕적 행동기준을 지켰다고 공언했는데 병사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스라엘은 거짓말을 한 셈이다. 인권단체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사망한 팔레스타인 사망자 1,300여명 중에서 3분의 2인 870여명이 민간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바라크)는 "보도된 것은 예외적인 사례들"이며 "이스라엘 군은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군대"라고 논평했다.

★ 관련뉴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01807345&code=970209


이스라엘 국방부, '이스라엘 군은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군대'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언제나 전쟁상황에 노출된다. 레바논, 팔레스타인 같은 이웃 나라가 쏘는 폭탄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고, 전국민 징병제이기 때문에 군대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야 한다. 

어디서든 전쟁이 펼쳐진다. 실제로 총을 쏘고 사람을 죽여야 하고, 부당한 명령을 감수해야 한다. 
1982년 9월의 그리스도교 민병의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사건에 참여했던 한 병사가 사라진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기 위해 당시 동료들을 찾아나선다는 이야기를 골자로 한 <바시르와 왈츠>는 영화와 책으로 동시에 출시됐다.

영화는 일찌감치 제61회 칸 영화제 공식경쟁부문 선정작, 2009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200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제1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이 되었다. 그리고 영화로 표현하지 못한 세심한 부분들을 책으로 표현했다. 영화와 책의 맛이 다르기 때문에 동시에 감상하면 좋다.

주인공 아리 폴먼의 무의식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가장 끔찍한 기억을 '블라인드' 처리해 버린다. 어느날 친구로부터 우연히 악몽 이야기를 듣고 무의식의 결계가 깨지면서 폴먼은 자신의 기억을 좇게 된다. 기억에 다가가면서 끔찍했던 그 날의 영상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두려움이 밀려들지만, 심리학자인 친구 오리의 조언으로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

폴먼 : 위험하지 않을까? 어쩌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잖아?
오리 : 걱정하지 않아도 돼. 사람들에겐 절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의 어두운 면으로 다가가는 것을 막아주는 방어기제가 있어. 아마 네가 알고 싶은 부분에만 다가갈 수 있을 거야. (<바시르와 왈츠를> 중에서)




 


▲ 바시르와 왈츠 표지. 주인공의 표정 속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뉴스에 보도된 것처럼 자신의 행위를 고백한 이스라엘 병사, 자신의 경험을 영화와 책으로까지 만들어 세상에 밝힌 이스라엘 퇴역군인을 보면서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괴롭혔을 죄책감과 그들이 행위를 고백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고민했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적과 아군이 너무나 확실히 구분되지만,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가득 채울 만큼 깊이를 보여주지 못한다. 다만 전쟁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일부분의 시간들을 징집한다. 하지만 징집된 사람은 평생 동안의 기억을 지배하는 전쟁의 상황을 견뎌야 한다. 전쟁에 참여한 순간은 잠깐이지만, 전쟁의 안 좋은 기억을 지우기 위해 사람은 너무나 오랫 동안 비용을 들이는 이 전쟁상황을 대면한다. 이스라엘의 젊은이들도 드디어 전쟁정부의 세뇌에서 조금씩 전쟁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걸까?
Posted by 소셜북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주인공 아리 폴먼은 2006년 1월에 그의 친구 보아즈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보아즈와 30년 동안이나 우정을 나눈 사이였지만, 보아즈가 겪었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보아즈는 이년 동안이나 스물여섯 마리의 개들이 나타나는 환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고백을 한다.

 

▲ 보아즈의 기억에 갑자기 찾아온 '개꿈'. 이것은 아리 폴먼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보아즈는 1982년 봄에 전쟁에 참여하게 되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으러 레바논의 어느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다. 보아즈의 부대원들은 보아즈가 마음이 약해서 사람들을 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신에 시끄럽게 짖어대던 마을의 개들을 쏘라고 했다. 보아즈는 그 당시에 개에게 총을 쏘면서 죽어가는 개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고, 이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갑자기 개들의 환상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아리 폴먼은 보아즈의 고백을 듣고 돌아온 날 밤에, 이십년 만에 처음으로 끔찍했던 레바논 전쟁에 대한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레바논, 서부 베이루트, 사브라와 샤틸라의 난민촌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지던 날의 기억까지…….

 그는 가장 절친한 친구인 정신과 의사 오리 시반을 찾아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서 어떻게 이십년 동안 전혀 기억도 못했던 일들이 갑자기 떠오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분명히 전쟁에 참여했지만, 그동안 실제 전쟁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는지 이상하다고 했다. 오리는 아리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 실험에 대해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실험자들이 피실험자들에게 어린 시절에 찍었던 실제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진들과 함께 실제 어린 시절의 사진이 아닌, 놀이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한 장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피실험자들 중 80%가 자신들이 결코 경험한 적도 없는 그 이벤트를 기억해냈다고 한다. 실험자들은 나머지 20%의 사람들에게 집에 가서 그 사진에 대해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그 이벤트가 생각난다고 했다. 이 실험의 결론은 ‘기억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역동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지난주에 EBS TV에서 방송한 ‘다큐 프라임 원더풀 사이언스-기억의 재구성’에서 그와 비슷한 실험 결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방송에서는 인간 기억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잘못된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보여주었다.

 오리는 아리의 기억을 검증해줄 친구를 만나보라고 했다. 아리는 자신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릴까봐 걱정을 한다. 그렇지만 오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에는 방어기제가 작동해 자신이 알고 싶은 부분에만 다가갈 거라며 걱정하지 말고 친구를 찾아보라고 한다.

 아리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친구 카미를 찾아간다. 카미에게서 베이루트에서 있었던 학살 이야기를 듣고, 아리는 점점 자신의 기억을 찾게 되는데…….

 수년간 레바논으로부터 공격을 당한 이스라엘은 1982년 7월 방위군을 동원해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다. 이런 혈전들 속에서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은 끝없이 많다. 그리고 이런 복수의 나날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대량학살의 현장으로 몰리는 개개인의 군인들. 그들은 자기들이 왜 총을 쏘아대야 하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그 대상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마구 총을 쏘며 사람을 죽인다. 죽지 않기 위해 이유도 없이 상대방을 죽여야 했던 군인들은 끔찍한 공포 속에서 다음 순간을 알 수 없는 한계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그들의 의식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넋이 나간 상태로 총기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엄청난 살육의 현장에서 자신의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격리시켜버린다. 그런 끔찍한 전쟁 상황이 그들에게는 현실이 아닌, 아주 비현실적인 상황처럼 느껴졌고, 그들은 마치 창을 통해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잘못된 지원사격으로 생기는 사고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들 앞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그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인간의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이런 식으로 작동해 그런 처참한 현실로부터 자신들을 철저히 분리시켜버렸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도저히 그 상황에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났고 살육의 현장에 있었던 군인들은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자신들의 의식의 기억창고에서 교묘하게 제거해버렸던 것이다.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웠기에 그런 방어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했을까. 그런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상상해볼 수도 없기에 그런 상황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고,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한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내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절대 없겠지만 말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전쟁에 참여한 개인, 즉 군인들은 자신의 사상이나 이념에 관계없이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생동안 그런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전쟁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죽이고 죽는다. 이 분노의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평화를 오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가 먼저 화해의 악수를 청할 것인가 .

 <바시르와 왈츠를>은 대량 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만행을 양심적으로 폭로한 영화인 <바시르와 왈츠를>를 만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비록 만화로 만들어졌지만 데이비드 폴론스키의 뛰어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영화를 눈앞에서 볼 때처럼 생생하게 감동을 느꼈다.

 작품을 읽는 동안, 인간악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 끝없이 의문이 들었고, 인간의 야만성과 야수성에 대해 치를 떨었다. 그리고 최근에 붙잡힌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에 관한 기사까지 떠올라,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은 회의가 들었다.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진짜 본성인지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몹시 우울해졌다. 다시 한 번 그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과연 인간의 참모습은 어떤 것인지…….

posted by 오리

Posted by 다른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잘라(Hanzala, 혹은 Handala) 

1948년 11살 소년의 가족은 갈릴리의 나자렛과 티베리아 사이에 있는 ‘알 샤자라’ 마을을 떠나 남부 레바논의 난민촌 ‘아인 알헬웨’로 옮겨갔습니다. 소년의 옛집에는 유대인(시온주의자)들이 대신 둥지를 틀었죠. 거지굴 같은 정착촌. 소년의 삶은 비참해,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레바논 정보기관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투옥된 소년은 감옥의 벽에 정치적 표현을 담은 그림을 그렸어요. 그것이 시초였죠.   

나지의 만평에 나오는 캐릭터인 ‘한잘라’는 열 살쯤. 난민촌에서 흔히 보이는 거지 아이. 나지의 11살 무렵 자화상입니다. 작가는 한잘라를 두고 “내가 엇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아이콘이다. 그리고 항상 뒷짐지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지역의 모든 부정적인 흐름을 거부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234480.html>

 

1982년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휘둘리는 기독교민병대는 자신들이 밀던 바시르 제마엘 대통령이 폭사하자 난민촌 두 곳을 봉쇄하고 9월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 동안 민간인 3천명을 도살했지요. 그동안 이스라엘군은 탱크로 에워싸고 있다가 학살이 끝나자 철수했습니다. 전세계의 눈은 스페인에서 열린 월드컵에 쏠려 있었죠. 당시 만평 속 펜은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나지의 그림이 변모한 것은 이 무렵. 등장인물 한잘라는 뒷짐을 풀고 돌을 던지거나 사막에서 솟아오르는 팔레스타인 깃발을 보고 만세를 부르기도 합니다.





1982년 가을 레바논으로 향하는 이스라엘의 탱크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이스라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탱크가 난민촌 주위를 포위한 3일 동안 3,000명이 죽었고 그 중 대부분은 이스라엘이 '잠재적 테러리스트'라 부르는 노인, 여성, 어린이들이었다. 

그리고 세계는 침묵한다.

 

 

 바시르와 왈츠를(Waltz with bashir) 

아모스의 명령으로 대량학살은 끝이 났어요. 팔랑헤당 민병대들은 길 아래로 사라졌고, 팔레스타인 여자들과 아이들은 난민촌으로 되돌아갔지요.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기 위해 난민들을 따라 난민촌으로 갔어요. 난민촌 안에서 나는 거대한 돌무더기를 보았어요. 

 갑자기 작은 손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어요. 소년의 손인지, 소녀의 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돌무더기에서 삐쭉 튀어나와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보였어요.
아니 그것은 먼지에 뒤덮인 곱슬머리를 한 사람의 머리였어요. 손 하나와 머리 하나. 

그 소녀는 내 딸 또래였어요. 내 딸도 그 소녀처럼 곱슬머리였거든요.
난민촌의 집들은 작은 마당이 있었어요.
마당마다 여자들과아이들의 시체가 즐비했어요. 

팔랑헤당 민병대들은 가장 먼저 젊은이들을 체포해서 총살을 시켰어요.
그러고나서는 나머지 가족들을 총살시켰겠지요. 

우리는 한 사람이 간신히 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어요.
골목은 가슴 높이만큼 쌓인 젊은이들의 시체로 막혀 있었어요.
곧바로 내가 보고 있는 이것이 바로 끔찍한 대량학살의 현장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밀려들었어요.

 

 

 

 "과연 이것이 미국과 유럽이 외쳐온 자유와 인권입니까?" 
                                                     - 팔레스타인 지도자 아흐메다 야신

Posted by 다른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미 제국주의 역사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온다. 학창 시절 결코 나에겐 미국이 제국주의가 아니었다. 그 당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남산의 한 구석으로 끌려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자 영원한 자유민주주의 표상이었다. 어린 시절 즐겨본 서부 영화는 언제나 인디언은 악당이고, 기병대는 악당으로부터 시민들을 구해주는 영웅들이었다. 이런 만들어진 환상은 성인이 된 후에도 한참 동안 변함이 없었다. 몇몇 주장이나 책들이 강하게 미국을 비판하였지만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나의 의식과 지식이 너무 굳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십 수 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하워드 진의 역작이라는 <미국 민중사>를 만화로 각색한 것이다. <미국 민중사>에 대해 이름을 들은 것도 개인적으로 몇 년 되지 않는다. 이 책이 1980년에 발간 된 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그 당시 한국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더 힘든 시기였다. 현재 이 책은 600쪽이 넘는 두 권으로 번역되어 나와 있다. 언젠가는 꼭 읽고 말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책이다. 그런 와중에 만화로 나왔다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것도 한 권이다. 각색이란 과정을 통하면서 많은 내용이 누락되었겠지만 그 핵심은 결코 변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20세기와 그 후의 이야기 일부는 그의 자서전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원작의 내용을 모르니 만화로 나누어진 12장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시작을 국내의 제국으로 삼고, 운디드니 학살을 이야기하는데 얼마 전 읽은 운디드니 학살 관련 책 기억이 떠오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디언 학살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북미 대륙 백인의 지배가 확고해졌기 때문이며, 이후 세계로 뻗어나가는 미국의 제국주의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알려주는 단서가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부유한 자본가들을 위해 여론을 조작하고, 군대를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고, 약속을 깨고, 민중들의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책은 국내에서 인디언과 악덕 자본가와 대립한 민중들을 먼저 다룬 후 미국의 문호 개방 정책으로 말해지는 제국주의에 시선을 돌린다. 그 처음이 쿠바인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쿠바에서 스페인을 쿠바 혁명군과 함께 몰아낸 후 스페인 민간정부가 공공업무를 계속 담당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놀랍도록 해방 후 한국의 모습과 닮아있다. 친일파를 그대로 둠으로써 한국 현대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알고 있기에 이 글을 읽는 순간 미국의 정책이 일시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제국주의의 본질이 결코 변함없이 겉모습만 바꾸고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많은 글 중 나에게 가슴으로 와 닿은 문장이 있다. “돈에서 생겨나 법으로 유지되는 독단적인 힘에 대한 분노”라는 대목이다. 현재 우리의 법들이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만들어졌고, 만들어지는지 알려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간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결들을 보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런데 하워드 진이 이런 감정을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서 느꼈다니 순간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많은 이야기 중에서 미국 체제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 방어 방법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통찰이다. 첫 번째 방어는 진실을 부인한다. 만약 진실이 드러나면 두 번째 방어는 조사를 하되 깊이 있게 하지 않는 것이다. 언론이 그 조사를 보도하겠지만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지만 결코 속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보인다.


만화로 보니 딱딱함이 많이 사라졌다. 원작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가볍게 작가의 주장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이 만화는 오만한 제국 미국의 역사에서 제국주의 모습을 중심으로 그렸다. 사실을 다루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외면하고자 한다면 결코 마음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자유 민주주의의 미국만 본 사람들에겐 분명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제국의 이면에 숨겨진 더러운 역사와 정책은 이 만화에 극히 일부분만 실려 있다. 원작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고 있다.
 


                                                                                                       posted by 행인

Posted by 소셜북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문 만화의 역사가 변화한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만화를 보면 혼냈던 시절이 있다. 요즘도 그런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다만, 아이들이 보고 싶은 만화라는 장르와 부모들이 원하는 학습이라는 목적이 만나는 학습만화는 일단 자리만 잡기만 하면 수백만부가 나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인들은 어떨까? 성인 만화 시장은 적지 않다고 한다. 작가의 이름을 줄줄 꾀는 것뿐만 아니라 만화에 나온 캐릭터의 이야기를 '감동'을 넣어 전달하기도 한다. 손을 잡고 펴보는 만화뿐만 아니라 마우스를 딸각딸각하며 보는 만화도 인기가 높다. 포털에서 만화는 뉴스라는 장르를 제외하고는 메인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왜 만화가 좋을까?

"허어~ 산이 있어 오르는 것을 왜 좋으냐고 묻느냐? 그냥 산이 저~기 있으니 오르지~"라고 할 만화광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만화는 재미와 흥미, 그리고 나름대로의 유익함을 던져준다.


성인만화의 짜릿함을 뒤로 하고, 아동만화의 현란한 색깔을 뒤로하고, 일본 청소년 만화의 일탈을 에돌아서 도착하는 곳에 인문만화가 있다. '만화가 인문이지 인문만화가 따로 어딨어?' 하면 할 말은 없다. '일본의 동성 만화를 읽고도 인문적인 사고력이 늘어가는 것을 어찌 모르느냐?' 역시 할 말은 없다. 다만, 인문만화라 하면 '누구나 읽어도 이 만화는 인정해줄만한 삶과 문화가 들어있는 만화'가 아닐까.


한겨레에 연재되며 수백만부 팔린 홍성우의 비빔툰은 읽는 독자에게 '깔깔거릴' 수 있는 즐거움과 삶의 단면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카툰하나가 '한쪽의 명문에 모자랄 쏘냐~!' <무대리>는 또 어떠랴? 셀러리맨에게 <무대리>가 없었다면 이직율이 지금보다 높았을 지도 모른다.




 사회적인 큰 논란을 일으켰던 <천국의 신화>은 상고사에 대한 상상력을 한껏 높였다. 허영만의 <식객>, <타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만화를 창조해내며 영화화되기도 했다.




인문 만화는 요즈음의 현상이 아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읽는 사람들은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멋진 멜로와 함께 맛볼 수 있었다.

'피가 끓던 1980년대 젊은이들이 선배에게 자랑하며 볼 수 있는 만화라나 뭐래나~!'




     그런가 하면 잔악한 인간의 본성을 폭로한 <쥐>나 원폭의 피해를 절절히 보여주는 <맨발의 겐> 같은 만화도 빼놓을 수 없는 수작들이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인문 만화가 현재의 정치적인 이슈에서 벗어나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생활 문화를 다룬다면, 최근에 나오는 인문 만화들은 지금의 역사를 다루려고 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도서출판 '다른'에서 나온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바시르와 왈츠를>는 지금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미국의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제국주의의 속성을 상세히 밝히는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이 책은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의 함축본이면서 원전에서 다 이야기 못한 역사의 실상을 형상화한다. 또, <바시르와 왈츠를>은 골든 글로브 상을 수상한 애니메이션이 원작으로 한 이스라엘 병사가 자신이 저지른 학살을, 이유도 없는 죽음에 방관하는 자신을 망각한 채 사라가다가, 어느 순간 다시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하워드 진 (다른, 2008년)
상세보기

바시르와 왈츠를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아리 폴먼 (다른, 2009년)
상세보기

분쟁지역에 있는 나라가 학살에 대해 방조하고 공조하는 모습과, 자신도 동일한 살인자라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망각하고 싶은 한 병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끔찍한 지구촌에서 어느 누구도 방관자이거나 관찰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되묻고 있다. 


'내 삶을 바꾼 한권의 책'이 있다면 '내 삶을 바꾼 한권의 만화책'이라고 나오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남녀노소 모두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는 인문 만화가 대화를 이어가는 촉매제로서 더 바람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Posted by 다른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학살의 패턴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학살은 대체로 학살하는 자들의 무엇인가를 건드렸을 때 벌어지기 쉽다.
중국에서는 이것을 역린(逆鱗)이라고 하는데, 역린은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이다. 이것을 건드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죽인다고 한다. 그래서 임금의 노여움 등을 표현할 때 이 말을 쓴다.
샤브라-사틸라 학살사건이 벌어진 것도 일종의 '역린' 때문인데,
레바논의 팔랑헤당 민병대가 그렇게 우상으로 삼았던 바시르 제마엘 대통령의 암살이 그것이다.

레바논의 팔랑헤당은 기독교 우파로서 이스라엘에 의해서 세워진 괴뢰정부 형태다.
2차 대전 때 프랑스 비시정부나 일본에 의해서 세워진 중국의 만주국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에서 공을 들여 정권을 창출하였는데 그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기에 이스라엘의 심기도 불편했을 것이다.






학살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비극은,
정작 학살은 당사자가 아니라 애꿋은 약자들이 당한다는 점이다.
바시르를 살해한 주범이 누구인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팔랑헤당 민병대들은 자신들의 복수심을 해소할 대용물이 필요했으므로,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그토록 잔악하게 살해했던 것이다. 그것도 3,000명을..





<바시르와 왈츠를>(다른)이라는 책을 보면 팔랑헤당 민병대들이 3,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바시르를 신처럼 추종했고,
작중인물의 입을 빌리면 거의 '에로틱'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복수라는 것은 여기서 이미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브라-샤틸라 학살과 관련해서 태국의 정치 파동이 생각난다.

아래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에서
어릴 적 상상 속에서 김일성을 죽이러 다니던 기억이 잔인하게 스친다.




이 사진으로 197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닐 울비치는 아래의 설명을 첨부해 놓았다.

'1976년 10월 6일 태국의 수도 방콕의 타마사트 대학에 결집한 좌파 학생과 주변에 모인
우파 세력이 충돌했다. 총격전이 시작되고 국경 경비대가 동원되자 우세를 보이게 된
우파측은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하였는데, 학생을 때려 죽여 나무에 매달거나 길 위에서
태워 죽이는 참혹한 광경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수 십 명이 사망하였고 수 천 명이 구속되었으며 결국 급진적인 학생운동 세력은
일망타진되고 말았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국정의
실권을 쥐자, 1973년 학생궐기 이후 계속되었던 태국의 민주화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



▲ 어린이를 포함한 청중들은 해맑게 웃고 있고, 시민들에게 맞아 죽은 좌파 여대생은 나무에 목이 졸려 반쯤 떠 있고, 그 사체를 의자로 무섭게 내리찍는 한 남자가 있다. 장면 하나하나가 충격적이다.


학살을 일으키는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하다.
이해되지 않는 세월을 굴레처럼 달고 온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처참한 역사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Posted by 소셜북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바시르와 왈츠를>의 비밀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 실험 사례다.
기억이 멈춰 있는 것이라는 평소의 생각과 달리 오히려 스스로 움직이며 다른 기억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감춰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기억은 자기 어떤 기억을 사라지게 하고, 그 곳에 전혀 다른 기억을 집어넣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 했다.
파렴치한 짓을 여러 번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뿐만 아니라 기억을 스스로 조작하기 때문에 벌건 대낮에 또다시 그 짓을 게속 할 수 있다.

기억이 움직이는 동물이라면 내가 만들어내는 기억들은 과연 나의 것이 아닌가.

Posted by 소셜북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982년 9월 14일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될 팔랑헤당 민명대의 지도자인 바시르 제마엘이 폭탄 테러로 살해 당한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팔랑헤당 민병대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무장 세력을 제거 한다는 명목으로 사브라와 샤틸라라는 지역으로 들어가 사흘(16~18)동안 노인, 여자, 아이들 3000여명을 학살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바로 ’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이다. 그런데 이 대량학살에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직접적 연관이 있는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 사건 당시 이스라엘 군대는 이 난민촌을 둘러 싸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 왜 이스라엘은 막을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을 묵인했을까? 살해 당한 바시르 제마엘은 친이스라엘 세력이었고, 이스라엘 정부의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라는것이 그 답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이 당시 난민촌을 둘러싸고 있던 이스라엘 군대에 복무한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지면으로 옮겨 놓은 작품이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전쟁에 있어서 전쟁을 직접 일으키는 사람들은 전쟁과 관련해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는 반면, 정작 전쟁이 일어나는데 있어서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 피해를 온 몸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은 살해 당함으로써 피해자고 되고,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살아남음과 동시에 그 당시 기억으로 고통받음으로써 또 다른 피해자가 된다. 정작 전쟁을 일으킨 정부나 정치인, 고위 관료는 전쟁에 직접 참여한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이 전쟁의 가해자가 아닐까 싶다. 진주만이라는 영화에서 ’전쟁에서 진 놈은 죽고, 전쟁에서 이긴 놈은 병신이 된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 대사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하마스가 전쟁중에 있다. 그런데 그 피해액과 사상자수가 PLO측이 이스라엘보다 100배정도 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정도면 이는 양국간의 전쟁이라기 보다는 한쪽의 일방적인 공격이라고 밖에 볼수 없다. PLO측의 사상자수만도 6000~7000명에 달한다는데, 이는 30년전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과 다를바 없는 제2의 대량학살 사건이다. 그런데 더 기가 찬 것은 이 전쟁이 일어난 계기이다. 30년전과 같이 표면적인 이유는 무장단체의 제거이다. 그러나 실질적은 요인은 정치이다.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나는 정치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올해 2월 10일이 총선 예정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쟁전 야당의 지지율이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PLO측과의 전쟁으로 집권 여당의 지지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이는 집권 여당이 총선의 승리를 위해 전쟁을 활용하고 있다고 밖에 볼수 없다. 미국측 역시 이스라엘에 반미적인 정권보다는 친미적인 정권이 계속 집권하는 것이 자국에 이익이기 때문에 현재의 학살을 묵인하고 있다는 나는 생각한다. 어찌보면 30년전과 똑같다. 전쟁을 일으키는 놈은 따로 있고, 전쟁에 참가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국민이 따로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살아가려는 국민만 희생당하는 현실이 암울하다.



이 책은 애니메이션을 지면으로 옮겨 놓은 작품이다. 영화와 이 책을 비교해 본다면 영화는 조금 지루한 반면 전쟁의 암울한 상황과 주인공의 심적 상황을 잘 알수 있고, 책은 영화에서 다루지 못한 배경이라든지 작품 해설이 있어 ’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을 보신분이라면 영화도 한번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고, 영화를 보신분이라면 이 책으로 좀더 깊게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소셜북스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때 할리우드 상업주의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있었던 아카데미가 올해 후보작 발표에서도 상업성보다는 작품성을 중시하는 자세를 뚜렷이 나타냈다.
뉴욕타임스는 "아카데미가 점점 더 영화예술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외국작품에 대해서도 보다 개방적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헐리우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아카데미가 변화하지 못하면 세계 영화의 흐름에 뒤쳐지게 된다는 위기감이 많이 작동한 듯하다.

이번 외국어영화상 부문에는 <바시르와 와츠를>도 들어 있는데, 이스라엘 전쟁과 관련해 오랫 동안 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일생을 짓눌러 왔던 전쟁의 참화가 한 인간의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로 정체를 나타내고 있는 영화다. 이번에 오스카의 선택을 받게 될지 기대된다.

외국어영화상
더 바데르 마인호프 콤플렉스 (독일)
더 클래스 (프랑스)
디파쳐 (일본)
보복 (오스트리아)
바시르와 왈츠를 (이스라엘)

Posted by 소셜북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