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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르와 왈츠를/바시르의 자료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2.12 후진국의 공통된 학살 패턴
  2. 2009.02.12 재밌는 심리학 실험 - 나 몰래 움직이는 기억
  3. 2009.01.29 두 개의 이스라엘과 세 개의 팔레스타인
학살의 패턴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학살은 대체로 학살하는 자들의 무엇인가를 건드렸을 때 벌어지기 쉽다.
중국에서는 이것을 역린(逆鱗)이라고 하는데, 역린은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이다. 이것을 건드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죽인다고 한다. 그래서 임금의 노여움 등을 표현할 때 이 말을 쓴다.
샤브라-사틸라 학살사건이 벌어진 것도 일종의 '역린' 때문인데,
레바논의 팔랑헤당 민병대가 그렇게 우상으로 삼았던 바시르 제마엘 대통령의 암살이 그것이다.

레바논의 팔랑헤당은 기독교 우파로서 이스라엘에 의해서 세워진 괴뢰정부 형태다.
2차 대전 때 프랑스 비시정부나 일본에 의해서 세워진 중국의 만주국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에서 공을 들여 정권을 창출하였는데 그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기에 이스라엘의 심기도 불편했을 것이다.






학살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비극은,
정작 학살은 당사자가 아니라 애꿋은 약자들이 당한다는 점이다.
바시르를 살해한 주범이 누구인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팔랑헤당 민병대들은 자신들의 복수심을 해소할 대용물이 필요했으므로,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그토록 잔악하게 살해했던 것이다. 그것도 3,000명을..





<바시르와 왈츠를>(다른)이라는 책을 보면 팔랑헤당 민병대들이 3,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바시르를 신처럼 추종했고,
작중인물의 입을 빌리면 거의 '에로틱'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복수라는 것은 여기서 이미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브라-샤틸라 학살과 관련해서 태국의 정치 파동이 생각난다.

아래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에서
어릴 적 상상 속에서 김일성을 죽이러 다니던 기억이 잔인하게 스친다.




이 사진으로 197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닐 울비치는 아래의 설명을 첨부해 놓았다.

'1976년 10월 6일 태국의 수도 방콕의 타마사트 대학에 결집한 좌파 학생과 주변에 모인
우파 세력이 충돌했다. 총격전이 시작되고 국경 경비대가 동원되자 우세를 보이게 된
우파측은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하였는데, 학생을 때려 죽여 나무에 매달거나 길 위에서
태워 죽이는 참혹한 광경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수 십 명이 사망하였고 수 천 명이 구속되었으며 결국 급진적인 학생운동 세력은
일망타진되고 말았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국정의
실권을 쥐자, 1973년 학생궐기 이후 계속되었던 태국의 민주화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



▲ 어린이를 포함한 청중들은 해맑게 웃고 있고, 시민들에게 맞아 죽은 좌파 여대생은 나무에 목이 졸려 반쯤 떠 있고, 그 사체를 의자로 무섭게 내리찍는 한 남자가 있다. 장면 하나하나가 충격적이다.


학살을 일으키는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하다.
이해되지 않는 세월을 굴레처럼 달고 온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처참한 역사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Posted by 소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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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르와 왈츠를>의 비밀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 실험 사례다.
기억이 멈춰 있는 것이라는 평소의 생각과 달리 오히려 스스로 움직이며 다른 기억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감춰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기억은 자기 어떤 기억을 사라지게 하고, 그 곳에 전혀 다른 기억을 집어넣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 했다.
파렴치한 짓을 여러 번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뿐만 아니라 기억을 스스로 조작하기 때문에 벌건 대낮에 또다시 그 짓을 게속 할 수 있다.

기억이 움직이는 동물이라면 내가 만들어내는 기억들은 과연 나의 것이 아닌가.

Posted by 소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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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라-샤틸라 난민수용소에서 3,000여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팔랑헤당 민병대원들에게 무참히 학살되자 가족을 잃은 노인이 오열하고 있다.>

두 개의 이스라엘과 세 개의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 수난사

 
유엔의 이스라엘 만들기

중동에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정식으로 수립된 것은 1948년이지만 이스라엘이 아랍에 뿌리를 내리려는 작업은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

1917년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가 시온주의 단체들에게 팔레스타인 내에 유대 '민족국가' 수립을 인정한다고 선언한다. 1920~22년까지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했는데, 1947년 비로소 유엔 결의안 181조가 채택된다. 이는 예루살렘 시를 국제화하는 내용이었는데, 유대 국가와 아랍국가의 동시 수립을 염두에 둔 팔레스타인 분할안이 바로 181조이다.

팔레스타인 분할안은 지금도 예루살렘 문제에 관한 국제적 판단의 준거가 되고 있다. 유엔의 분할안은 예루살렘이 가지고 있는 성지로서의 중요성으로 인해 "별도의 지위"를 누리고, 국제적으로 관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국제적'이 아니라 '국내적'인 지역이라는 사실은 머지 않아 밝혀졌다. 1949년에 휴전선에 분리벽이 설치되면서 옛 예루살렘의 동쪽은 아랍 국가들의 통치 아래, 서쪽 지역은 이스라엘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1950년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서쪽을 자국의 수도로 선포한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인의 갈등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멀쩡한 나라를 둘로 쪼개 유대 국가에게 준다는 것은 주권국가에게는 가장 비참한 일이기 때문이다. 1948년 시작된 갈등은 이듬해 정전으로 잠시 멈추지만, 이 과정에서 70~80만 명의 피난민이 생겨 인근의 아랍 국가들로 이주한다. 상황이 이와 같은데 나라가 멀쩡할 리가 없다. 1950년 시나이 서안이 요르단 하심 왕국에 병합되고, 가자지구는 이집트의 통치를 받게 된다.

고단한 팔레스타인의 국제사

1967년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동쪽을 불법적으로 병합하는 동시에, 요르단 서안과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통치권을 행사한다. 같은 팔레스타인 인이라도 사는 곳에 따라 다른 신분이 된다. 요르단 서안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군정의 지배를 받으며, 예루살렘 동쪽의 팔레스타인 사람들만이 "영주권자" 자격이 주어진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데 그것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더욱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즉 1957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동쪽을 합병한 사실과, 이후 "대예루살렘"을 수도로 선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비난하면서도, 철수를 요구하지는 않음으로써 사실상 예루살렘 서쪽에 대한 "이스라엘화"를 인정한 셈이다.

결국 국제사회로부터 이스라엘 영토는 웃지 못할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예루살렘 서쪽은 '이스라엘 영토'로, 또 예루살렘 동쪽은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로 간주한다. 이 두 지역의 실질적인 차이는 없다.
Posted by 소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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