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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빵 유랑작가 출동! | 빵 유랑작가
원문 http://blog.naver.com/s4a2z/50076023853


 

드림 위버(소설로 읽는 유쾌한 철학 오디세이)(양장본)

잭 보웬 지음 | 하정임 옮김
다른 2009.03.30
평점

올해는 대박이다. 별 6개짜리 책을 2권 발견했으니... 이 책. 소피의 세계도 재미없어서 던져버렸던 과거를 말끔히 씻는.. 적당히 사색적이고 철학백과사전적이며. 사회의 굵직한 이슈들 (자아, 신, 논리, 도덕과윤리, 과학, 정치와 사회와 돈, 이기심, 선과 악) 을 한 권에 담아낸 책.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내려갔습니다.

자아가 변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지 말라는 찰스 핸디 (포트폴리오 인생 중에서) 의 이야기가.. 이 곳의 첫 장에 녹아 있고.

아! 철학과 논리. 그리고 과학이 서로 통할 수 밖에 없겠구나.. 논리, 과학 section에서 한 판 논의를 벌입니다.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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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인연으로 시작된 기적
히말라야 오지 사람들과 가족이 된 한 등반가의 학교 78개를 지은 감동실화

세 잔의 차-그레그 모텐슨 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사라 톰슨 개작/김한청 옮김/다른/1만 원

 
  폭우로 길이 막히자 40㎏짜리 돌을 손수 나르는 코르페 마을 주민.
 
"자네가 발티족과 처음으로 차를 마신다면 자네는 이방인이네. 두 번째로 차를 마신다면 자네는 환대받는 손님이 된 거지. 세 번째로 차를 함께 마신다면, 가족이 된 것이네. 그러면 우리는 자네를 위해 죽음도 무릅쓰고 무슨 일이든 할 거라네…자네는 세 잔의 차를 마실 시간을 가져야 하네. 우리는 교육을 받지 못했네.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지 않네. 우리는 여기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았네."

파키스탄에서 학교 짓는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자 사람들을 심하게 몰아붙이던 그레그 모텐슨에게 코르페 마을 촌장 하지 알리는 30분간 끓인 사키나가 차를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빨리 빨리'만 생각하며 조바심을 내던 그레그는 '먼저 가족이 돼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결국 마을 사람들과 세 잔의 차를 마셨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40㎏이나 되는 돌을 불평 없이 밤낮 잠도 자지 않고 날랐다. 심지어 육체적 노동을 하지 않는 이슬람 성직자들도 짐을 나르는 데 동참했다.

그레그가 파키스탄에 학교를 짓기로 한 것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1993년 9월 지병으로 숨진 여동생을 추모하려고 K2 등정에 나섰지만, 탈진하면서 실패했다. 그를 거두어 준 곳은 코르페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눈을 뜬 그레그는 언 땅 위에 무릎을 꿇고, 책과 공책도 없이 공터에서 막대기로 진흙에 글을 쓰는 아이들을 보게 됐다. 그는 촌장에게 약속했다. "이곳에 학교를 짓겠어요."

http://www.kookje.co.kr/news2006/asp/center.asp?gbn=v&code=0550&key=20090523.22018201754

 

권혁범 기자 pearl@kookje.co.kr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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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스라엘이 세워진 땅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오랜 세월 속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살았던 곳이다.  물론 성서를 통해 알고 있듯이 더 오랜 세월 속에서는 이스라엘인들이 살았던 곳이나 로마와의 마사다 전투에서 패해 유대인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2차 대전에서 히틀러에 의해 수많은 유대인이 학살되고 이 사건을 통해 세계의 동정심을 호소하며 유대인들은 레반트 지역에 이스라엘 건국을 원하게 된다.  그들, 이스라엘 민족지도자들은 영국에게 전쟁 비용을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영국군이 주둔해 있는 현 이스라엘 땅을 되돌려 받고자하는 협상을 시도하고, 2차대전이 끝나자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의 이주와 동시에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하게 된다. 

 팔레스타인들은 얼결에 몇 천 년을 살았던 땅에서 내쫓김을 당함으로 수많은 난민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런 역사적 배경은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그들 사이의 끊임없는 피로 얼룩진 분쟁의 원인이 되어오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은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부를 유대인들에게 할당하면서부터였다.  이듬해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아랍 연합군과의 1차 중동전이 시작되었고. 1973년까지 4차에 걸친 중동전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1982년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전쟁을 하게되었다.

  수년째 레바논으로부터 북부지역을 폭격 당했던 이스라엘은 1982년 7월 레바논과의 전쟁을 통해 남부를 점령한다.  요르단에 있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본부가 레바논에 자리를 잡고있어 그 기구의 제거와 시리아를 견제하기 위해 베이투트와 레바논 남부를 공격했던 이스라엘은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이 베이루트 점령 후, 자신과 기독교 동맹인 바시르 제마엘을 레바논 대통령으로 지명한다.  레바논의 무장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공격이었지만 이 시기 그들은 베이루트에서 튀니지로 퇴로를 확보한 상태였기에, 레바논에는 더이상 무장세력의 위협은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공격을 감행했던 이스라엘은 대통령으로 세우려던 바시르가 취임을 앞두고 폭탄테러를 당해 살해되고 만다.  그날 오후,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 지역에 있는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포위했고, 지도자를 잃은 팔랑헤당 민병대는 이스라엘군이 쏘아주는 조명탄 아래에서 난민촌으로 들어가 대학살을 자행한다.  기독교 민병대의 난민촌 집입 목적은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잡기위함이었지만 실상 그곳에는 늙은 노인들과 힘없는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 있을 뿐이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 대학살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 바로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이 만화로 그려진 책이다.  뒷장에는 그때의 학살된 난민촌 사람들의 사진이 실려있는데, 그 사진을 보고있자니 전쟁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에게도 학살이라는 것에 대한 기억이 있다.  제주 4.3 사건을 이야기해보자면, 1948년 3월 1일 제주읍 관덕정 마당에서 3.1절 기념집회에 참석한 시위군중을 향해 경찰이 총을 쏘아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4월 3일 제주도 전역에 걸쳐 무장봉기가 일어난다.   제주도민들은 남한의 단독 정부수립과 단독 선거 반대투쟁에 나서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정부는 좌익의 책동으로 몰아세우고, 이에 미군은 8개 중대 규모의 경찰병력을 제주도에 투입하였고, 남한정부가 수립된 11월부터 4개월 동안의 초토화작전으로 160여 마을 가운데 130여 마을의 주민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되거나 재산상의 피해을 입었다고 하며, 이 집단학살에서 최소 3만여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좌익무장대 사령관 김달삼과 제주 주둔 연대장 김익렬이 48년 4월 28일 전투중지와 무장대 해산 등의 평화협상을 합의했으나 정부는 그런 김익렬을 해임시키고, 11월 초토화작전을 좌익빨치산의 피난처와 물자공급원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강경한 진압을 보이며 제주도민을 학살한 것이다.   그 외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양민학살사에대한 내용을 더 알고싶다면 김상웅의 <해방 후 양민학살사>를 읽어보면 될 것 같다.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그것이 안겨주는 두려움과 고통, 충격에 대해 뼈져린 와닿음을 느껴오지 못 했었다.  하지만 이 책 <바시르와 왈츠를>를 읽으면서,  전쟁 그 한 중간에 놓여져 삶을 살았냈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희생자든 가해자든 방관자든 그 기억은 평생을 칠흑같은 암연에 감금당하는 일인 것 같다.   
   이스라엘은 1982년 레바논과의 전쟁과 이어진 대학살로 인해 결과적으로 레바논에 과격테러단체인 헤즈볼라가 생겨나게 만들었고, 그들이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한 것이 계기가 되어 최근 레바논과의 전쟁을 일으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은 시온주의와 아랍민족주의의 충돌과 영토에 관한 것이다.  무엇이 그 이유가 되었든 가장 큰 피해자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그 이유들에 휘둘려야 하는 힘없는 시민들이 아닐까 싶다.  왜 끔찍한 붉은 피는 이유를 만들어낸 그들이 아닌 힘 없는 시민들이 흘려야 하는 것인지 이 책을 통해 알게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붉은 피나, 우리 역사 속의 양민 학살의 붉은 피들이 여며지는 가슴으로 더욱 검붉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posted by 푸른물결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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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저스;;; 2009.05.15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뷰 개편해도 문제 많네....이게 베스트야????

  2. n016nnn 2009.05.15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이 악해서


[드니로 게임]이라는 소설을 읽은 다음 곧바로 내 손에 도착한 책이 이 책이다. 운명같은 공교로움이다. 같은 레바논 이야기라니. [드니로 게임]은 기독교 민병대원의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이 책은 이스라엘군으로 레바논에 갔던 '나'의 이야기다. 이 에니메이션을 보고 싶었지만, 극장에 갈 시간이 여의치가 않아 책으로라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했다. 물론, 책을 본 후에는 더욱 에니가 보고 싶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옛 친구 보아즈와 술집에 들른 나(아리)는 반복되는 보아즈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된다. 사건을 겪은지 20년이 지난 후 느닷없이 찾아온 악몽은 2년 동안 매일 밤 26마리의 사나운 개가 나타나는 꿈이었다. 보아즈는 어느 마을에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기 위해 들어갔다가 개 짖는 소리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 도망갈까봐 개를 쏘아죽이게 된다. 딱 26마리. 꿈 이야기에 이어 레바논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당시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되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옛 동료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비밀을 밝혀 낼수록 기억들은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맙소사! 책에서는 사진으로 보여주어 함께 실감하도록 도와준다. 톡 쏘는 듯이 느껴지는 사실적인 그림체는 책에 집중하게 했다.

위에서 손가락으로 때로는 말로 지시만 내리는 사람들은 전쟁 속의 일을 대단하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마치 게임하듯 장기 두듯이 이 엄청난 일을 만들어 낼테니까. 하지만,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은 공격하는 사람이나 공격당하는 사람이나 상처 입지 않았겠냐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공격당하는 사람들이 잃은 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겠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이스라엘의 책임 회피용 에니메이션이라고 써 놓은 것을 보았었다. 하지만, 이 에니를 만든 사람이 국가적 임무를 띄고 이 에니를 만든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개인이 이 엄청난 사태에 대해서 책임 회피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잘못을 이런식으로라도 밝히고, 작전에 투입된 개인들의 아픔을 이야기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의 더러운 내전에 대해서 심도있게 이야기 하지 않아서 같은 남쪽 땅에 살면서도 매일 같이 이념전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되는 전쟁 이야기에 내 머리속이 전쟁판이다. 전쟁. 정말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 뿐이다.

 

posted by 오로지 관객

Posted by 소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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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화약고 중동'의 핵심문제는 비단 중동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도 항시 불안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여러 지역을 포함하며, 대체로 서쪽의 지중해에서 동쪽의 요르단강까지 그리고 북쪽으로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대, 남쪽으로는 가자지구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곧 난민사다.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따라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바람에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1982년 9월 16일 벌어진 팔랑헤딩 민병대의 소행으로 알려진 이스라엘 전쟁과 관련해 오랫 동안 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일생을 짓눌러 왔던 전쟁의 참화가 한 인간의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로 정체를 나타내고 있는 영화다. 1980년대 초반 이스라엘과 레바논 전쟁에 참여한 당시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이다. 자신과 같이 복무했던, 또는 복무했다고 주장하는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동료의 기억을 쫓아 자신의 기억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팔랑헤당 민병대들이 3,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분명한것은 이 학살의 배후에는 이스라엘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주목할 부분은 살인군대가 난민촌으로 들어가 피의 학살을 벌이는 동안에 이스라엘 군대는 명령에 따라 난민촌 주위를 탱크로 봉쇄하고 밤새도록 조명탄을 쏘아올리며 학살을 도운 사실이다. 


이 영화의 장르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아리 폴만 감독은 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자신의 기억을 찾는 얘기의 영화화를 위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독특한 형식을 도입한다. 이스라엘 출신인 아리 폴만 감독은 친구와 얘기하던 도중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가 뭉텅,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아리 폴만 감독은 스스로가 잊고 싶었던 가슴 아픈 진실과 마주대하게 된다.

""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당시의 잔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들의 죽음에 절규하는 노인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애니로 진행되던 내용이 갑자기 사진으로 바꼈을때 느끼게 되는 사실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현실적인 느낌이 더해지던 순간이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지역을 일컫는 지명에는 가나안, 이스라엘, 유대, 팔레스타인, 등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이름들이 많기도 하다, 이 명칭의 근원처럼 이스라엘 전쟁의 근원도 제대로 파악할려면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가 아니라 모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쩌면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날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을 지역이 있다면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150명 이상이 사망하는 큰 인명 손실을 보는 등 양측의 분쟁은 당분간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휴전상태지만 이 전쟁의 끝은 양육강식의 원리가 철저하게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피비린내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사건과도 많이 닮아있음에 서글픔이 더욱 느껴졌다.



posted by 아련한 추억

 

Posted by 소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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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영화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특히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느니, 무슨 상 후보로 올랐느니 하는 수식어가 붙은 영화도 그리 흥미를 두지 않는다. 그런데도 개인적으로 유독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만은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 스스로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영화였기에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유대인 게토를 청소(?)하는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바흐의 피아노곡은 참혹한 학살의 이미지와 묘한 대비를 이루며 기억 속에 오랜 시간 각인돼 있었다. 캄캄한 밤공기를 가르는 처참한 비명과 반복적인 총소리 그리고 피아노곡이 만들어 내는 비현실적인 무대는 인간 내면에 흐르고 있는 학살의 공포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場)이었다. 2차 대전이 만든 살육의 무대 그것이 바로 유대인 홀로코스트였던 것이다.

 레바논. 베이루트 서부. 1982년 9월 16일.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다시 학살의 무대가 세워졌다. 나치를 대신한 팔랑헤당 민병대와 이스라엘군, 유대인의 자리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번엔 바시르라는 인물이 원인을 제공하고 바시르와 왈츠를 추던 이스라엘의 묵인아래 참담하고 야만적인 학살의 축제가 벌어진 것이다.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은 모두 떠나고 난민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과 부녀자 그리고 노인들이었다. 아무런 저항수단이 없는 이들을 향한 무자비한 폭력의 장(場)은 이스라엘과 바시르의 왈츠를 배경으로 베이루트 서부에서 무대에 올려진 것이다.


 20년 전 학살의 현장에 섰던 아리가 끔찍했던 그 날의 기억을 잊어버린 이유는 무엇이고, 그가 기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 『바시르와 왈츠를』은 주인공 아리를 통해 팔레스타인 난민학살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망각과 침묵의 방관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저지르는 야만적인 학살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에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럴 때 마다 사람들은 학살을 규탄하고 숭고한 인간애를 이야기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망각의 늪에서 침묵하게 된다. 아니 기억자체에서 지워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래서 야만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팔랑헤당 민병대가 학살을 자행하는 동안 조명탄을 쏘아 올렸던 아리는 과연 학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얼마 전 폭격 속에서 죽어간 가자의 아이들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야만의 무대에서 우린 아무런 교훈도 얻을 수 없는 것일까? 작품 해설에서 김재명 기자가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바시르와 왈츠』를 과 같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수는 없는 걸까? 그래서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피로 얼룩진 학살의 과거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없는 걸까?


 잃어버린 학살의 기억을 되찾았음이 학살을 방조한 책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반복되는 야만의 고리를 끊어내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 인간이라면 누구나 전쟁과 학살에 대하여 인간 본연의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갑자기 작은 손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어요. 소년의 손인지, 소녀의 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돌무더기에서 삐쭉 튀어나와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보였어요. 아니 그것은 먼지에 뒤덮인 곱슬머리를 한 사람의 머리였어요. 손 하나와 머리 하나. 그 소녀는 내 딸 또래였어요. 내 딸도 그 소녀처럼 곱슬머리였거든요.” ---------- p.117

posted by jjolp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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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카르도 2009.03.17 2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되어서 더욱 강렬한 느낌을 줄것같네요.
    덕분에 좋은 영화 하나 알고갑니다. :)

    • 상상문학 2009.03.19 1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리카르도 님 아니십니까.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님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추천 많이 눌러주셔서 도움 많이 받았어요.

      영화도 영화지만 책도 좋습니다. 영화의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죠. 감사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괴롭거나 부끄러운 일이라서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에 참여해서 아주 일부의 기억만을 잃어버린 아리 폴먼처럼 말이다. 그럼으로써 아리는 자신의 행동이 아주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잊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있었을까. 그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아리는 기억을 잃는 게 아니라 죄책감에 시달렸겠지.

아리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전쟁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알게 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사브라와 샤틸라 마을의 주민이 무참히 학살 당하는 것을 목격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하지만 거기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특히 난민촌으로 돌아가는 노인이 절규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아니,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들을 위해 조명탄을 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그래서 아리는 그때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잊었는지도 모른다. 

▲ 지금은 혼수상태에 빠져서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한때 이스라엘의 극우노선을 이끌었던 샤론 전 총리. 팔레스타인 학살을 주도한 장본인.

영화를 책으로 펴낸 것이라 중간중간 장면이 급격히 바뀌어서 몇 번을 읽어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배경이 된 사건이 1982년이라니 불과 20년도 안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알게 된 것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서 샤론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잘 몰랐었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샤론이 그 사건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사임시켰고 다시는 국방장관이 되지 못하도록 했단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에 오히려 더 힘이 있는 총리가 되었으니 이스라엘 국민의 속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뭐,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대통령으로 선택한 우리도 오십 보 백 보일 테지만.) 그들이 자기네는 평화를 존중한다고 해도 과연 그 말이 진실인지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긴 지금도 전쟁을 일으키고 팔레스타인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하는 걸 보면 그런 말을 할 사람들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나마 작은 희망을 갖는 것은 이와 같은 자기고발적인 영화를 만들고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뽀죡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사태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그 일의 발단이 그다지 오래된 것도 아니라는 데 있다. 문득 결자해지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 결자의 힘이 약하니, 원. 만약 팔레스타인이 힘이 있었다면 이스라엘이 그렇게 나올 수 있었을까.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 취했던 행동들은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인들은 그동안 학대받았던 것을 기억해 내면서 다른 민족을 똑같이 응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대민족의 생활방식과 교육방식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난 그것마저도 괜히 거부감이 든다. 그들이 그렇게 교육시키고 철저하게 생활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들끼리만 잘 살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배타적인 것은 분명 옳은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남을 인정할 줄 아는 관용이 통하는 세계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posted by 봄햇살

Posted by 소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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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개인에게 행하는 폭력과, 살인은 어떤 식으로든 처벌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단위가 커지고, 힘있는 소수가 힘없는 다수에게 행해지는 무자비한 폭력은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그런말이 있겠는가.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백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는.....말도 안되는 그런 말.

책의 주인공 역시 기억을 잃고 헤매고 있다. 전쟁에 참여했으나 그때 상황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암흑. 그 암흑 속에서 빛을 찾고자 동료들을 찾아 그들을 인터뷰한다. 그러면서 그 당시의 참혹하고 끔찍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의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비추고 있다. 피해자를 집중 조명한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사람을 죽였던 군인의 기억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인터뷰가 모두 변명같이 들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와닿는것이 있는 것은, 결국 그들 모두 전쟁의 피해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소리없는 지지속에 팔레스타인 수천명의 난민들은 죽어갔다. 힘없고 저항조차 하지 못한 그들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갔다, 아무런 명분없이. 비단, 명분없는 학살이 1982년 사브라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것같은 수많은 끔찍한 살인이 지금 현재에도 너무나 사소한 이유로 자행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 참가했던 이의 자기고백을 들으면서 이 세상 모든 끔찍한 상황을 그저 모른채 수수방관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런 이유없이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천명의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될 것이다. 자기반성을 하는 이유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가지는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그들의 눈물과 한숨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는 그 순간, 이 세상에 전쟁이라는 끔찍한 일은 사라질테니 말이다.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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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괴롭거나 부끄러운 일이라서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에 참여해서 아주 일부의 기억만을 잃어버린 아리 폴먼처럼 말이다. 그럼으로써 아리는 자신의 행동이 아주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잊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있었을까. 그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아리는 기억을 잃는 게 아니라 죄책감에 시달렸겠지.



아리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전쟁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알게 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사브라와 샤틸라 마을의 주민이 무참히 학살 당하는 것을 목격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하지만 거기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특히 난민촌으로 돌아가는 노인이 절규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아니,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들을 위해 조명탄을 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그래서 아리는 그때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잊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책으로 펴낸 것이라 중간중간 장면이 급격히 바뀌어서 몇 번을 읽어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배경이 된 사건이 1982년이라니 불과 20년도 안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알게 된 것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서 샤론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잘 몰랐었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샤론이 그 사건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사임시켰고 다시는 국방장관이 되지 못하도록 했단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에 오히려 더 힘이 있는 총리가 되었으니 이스라엘 국민의 속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뭐,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대통령으로 선택한 우리도 오십 보 백 보일 테지만.) 그들이 자기네는 평화를 존중한다고 해도 과연 그 말이 진실인지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긴 지금도 전쟁을 일으키고 팔레스타인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하는 걸 보면 그런 말을 할 사람들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나마 작은 희망을 갖는 것은 이와 같은 자기고발적인 영화를 만들고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뽀죡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사태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그 일의 발단이 그다지 오래된 것도 아니라는 데 있다. 문득 결자해지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 결자의 힘이 약하니, 원. 만약 팔레스타인이 힘이 있었다면 이스라엘이 그렇게 나올 수 있었을까.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 취했던 행동들은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인들은 그동안 학대받았던 것을 기억해 내면서 다른 민족을 똑같이 응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대민족의 생활방식과 교육방식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난 그것마저도 괜히 거부감이 든다. 그들이 그렇게 교육시키고 철저하게 생활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들끼리만 잘 살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배타적인 것은 분명 옳은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남을 인정할 줄 아는 관용이 통하는 세계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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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9월 16일 서부 베이루트 지역에 있는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난입한 레바논 팔랑헤당 민병대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3,000(추정)에 이르는 양민을 학살했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포위했고 팔랑헤당 민병대가 학살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조명탄을 쏘았고 이들의 행위를 방조해 주었다. 이 혐의로 당시 국방장관이던 샤론 전 총리는 장관에서 해임되었으나 20년 후에 총리로 다시 돌아왔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대량학살의 현장으로 몰리는 개개인의 군인들. 그들은 자기들이 왜 총을 쏘아대야 하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그 대상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마구 총을 쏘며 사람을 죽인다. 죽지 않기 위해 이유도 없이 상대방을 죽여야 했던 군인들은 끔찍한 공포 속에서 다음 순간을 알 수 없는 한계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그들의 의식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넋이 나간 상태로 총기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엄청난 살육의 현장에서 자신의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격리시켜버린다. 그런 끔찍한 전쟁 상황이 그들에게는 현실이 아닌, 아주 비현실적인 상황처럼 느껴졌고, 그들은 마치 창을 통해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잘못된 지원사격으로 생기는 사고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들 앞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그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인간의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이런 식으로 작동해 그런 처참한 현실로부터 자신들을 철저히 분리시켜버렸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도저히 그 상황에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났고 살육의 현장에 있었던 군인들은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자신들의 의식의 기억창고에서 교묘하게 제거해버렸던 것이다.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웠기에 그런 방어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했을까. 그런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상상해볼 수도 없기에 그런 상황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고,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한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내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절대 없겠지만 말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전쟁에 참여한 개인, 즉 군인들은 자신의 사상이나 이념에 관계없이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생동안 그런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전쟁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죽이고 죽는다. 이 분노의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평화를 오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가 먼저 화해의 악수를 청할 것인가 .


 <바시르와 왈츠를>은 대량 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만행을 양심적으로 폭로한 영화인 <바시르와 왈츠를>를 만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비록 만화로 만들어졌지만 데이비드 폴론스키의 뛰어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영화를 눈앞에서 볼 때처럼 생생하게 감동을 느꼈다.

 작품을 읽는 동안, 인간악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 끝없이 의문이 들었고, 인간의 야만성과 야수성에 대해 치를 떨었다. 그리고 최근에 붙잡힌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에 관한 기사까지 떠올라,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은 회의가 들었다.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진짜 본성인지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몹시 우울해졌다. 다시 한 번 그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과연 인간의 참모습은 어떤 것인지…….


<바시르와 왈츠를> 줄거리..(스포일러 주의)

주인공 아리 폴먼은 2006년 1월에 그의 친구 보아즈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보아즈와 30년 동안이나 우정을 나눈 사이였지만, 보아즈가 겪었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보아즈는 이년 동안이나 스물여섯 마리의 개들이 나타나는 환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고백을 한다.

 보아즈는 1982년 봄에 전쟁에 참여하게 되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으러 레바논의 어느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다. 보아즈의 부대원들은 보아즈가 마음이 약해서 사람들을 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신에 시끄럽게 짖어대던 마을의 개들을 쏘라고 했다. 보아즈는 그 당시에 개에게 총을 쏘면서 죽어가는 개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고, 이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갑자기 개들의 환상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아리 폴먼은 보아즈의 고백을 듣고 돌아온 날 밤에, 이십년 만에 처음으로 끔찍했던 레바논 전쟁에 대한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레바논, 서부 베이루트, 사브라와 샤틸라의 난민촌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지던 날의 기억까지…….


 

 그는 가장 절친한 친구인 정신과 의사 오리 시반을 찾아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서 어떻게 이십년 동안 전혀 기억도 못했던 일들이 갑자기 떠오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분명히 전쟁에 참여했지만, 그동안 실제 전쟁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는지 이상하다고 했다. 오리는 아리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 실험에 대해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실험자들이 피실험자들에게 어린 시절에 찍었던 실제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진들과 함께 실제 어린 시절의 사진이 아닌, 놀이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한 장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피실험자들 중 80%가 자신들이 결코 경험한 적도 없는 그 이벤트를 기억해냈다고 한다. 실험자들은 나머지 20%의 사람들에게 집에 가서 그 사진에 대해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그 이벤트가 생각난다고 했다. 이 실험의 결론은 ‘기억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역동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지난주에 EBS TV에서 방송한 ‘다큐 프라임 원더풀 사이언스-기억의 재구성’에서 그와 비슷한 실험 결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방송에서는 인간 기억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잘못된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보여주었다.


 

 오리는 아리의 기억을 검증해줄 친구를 만나보라고 했다. 아리는 자신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릴까봐 걱정을 한다. 그렇지만 오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에는 방어기제가 작동해 자신이 알고 싶은 부분에만 다가갈 거라며 걱정하지 말고 친구를 찾아보라고 한다.


 

 아리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친구 카미를 찾아간다. 카미에게서 베이루트에서 있었던 학살 이야기를 듣고, 아리는 점점 자신의 기억을 찾게 되는데…….


 

 수년간 레바논으로부터 공격을 당한 이스라엘은 1982년 7월 방위군을 동원해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다. 이런 혈전들 속에서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은 끝없이 많다. 그리고 이런 복수의 나날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posted by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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