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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망각도 학살의 일부이다. 왜냐하면 학살의 망각은 또한 기억의 학살이며, 역사의 학살이고, 사회적인 것 등의 학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망각은 또한 사건만큼이나 본질적인 것이다.
-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일부


유태인의 홀로코스트를 방영한 TV 프로그램을 보며 보드리야르는 비로소 홀로코스트가 망각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유태인들은 화장터나 가스실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소리와 이밎와 테이프에, 기독교적 화면에, 소형 정보처리기로 도달하면서 망각은 마침내 미학적 차원에 도달한다. 때문에 텔레비전은 모든 사건의 역사성에 종지부를 찍는 진정한 해결이다. 텔레비전은 무척 정제된 화면만 시청자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불편한 진실이 통과할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방송심의위원회라는 국가기관에서 모든 내용을 심의한다. 불편한 진실이 통과하는 순간 그 방송은 생명을 멈춘다. 그런 텔레비전을 전 국민은 즐겨 본다.

생생하게 기억해야 할 역사적인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반드시 지워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억은 그냥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치밀한 전략과 세뇌에 의해서 지워진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차별적이니 학살이 이루어졌던 사브라-샤틸라 학살의 경우 이를 주도한 국방부 장관이 파면되면서 망각의 전주곡이 울렸다. 도대체 국방장관이 파면된 것과 3,000여명의 어린이와 노인들이 학살된 것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국방장관의 파면도 이스라엘 국민들의 분노와 거대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이었겠지만, 이스라엘 국민들의 여론은 서서히 진압된다. 망각할 수 있는 기제를 자꾸 퍼뜨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닥친 위험성, 팔랑헤당의 필요성,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위험성 등등을 지속적으로 세뇌하면 언젠가는 학살 사건이 망각되는 것이다.

▲ 이스라엘 병사들은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았지만 팔랑헤당 민병대의 학살행위를 돕기 위해 조명탄을 쏘아주었다. 어쩌면 이들은 직접 학살을 저지른 살인자들보다 더 나쁜 학살자들인지도 모른다.

<바시르와 왈츠를>(다른)은 1982년 학살 때 현장에 있었던 이스라엘 퇴역병사가 망각한 기억을 힘겹게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그 병사가 망각을 애써 찾아야 하는 동기부여는 잘 되고 있지 않아 아쉽지만 전쟁의 무의미함과 인간에 대한 뿌리깊은 폭력이 잘 그려져 있다. 학살을 자행한 사람들은 맹목적인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신념의 노예가 되어 비이간적인 학살을 저지르고, 별다른 의식 없이 학살행위에 동조한 사람들은 평생 동안 트라우마에 고통을 겪는다. 물론 학살을 당한 피해자는 전인생을 송두리째 뽑히는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팔랑헤당 같은 맹목적 신봉자들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 어느 정도의 상식과 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독자로 구분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들은 학살을 직접 한 당사자들은 아니지만 학살을 방조했기 때문에 간접적인 학살자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 역시 밝혀야 하는 진실을 망각했다면 간접적인 학살자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학살의 기억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 망각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군 의문사위 폐지 논란이나 제주 4.3특별법에 대한 폐지 논의는 우리나라의 상식 있는 사람들이 학살자의 대열에 가도록 강요하고 있다. 학살에 대한 망각은 학살일 뿐만 아니라, 학살을 망각한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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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다른 출판사의 철학책으로 책살핌이를 했었습니다.

책살핌이 했던 곳(링크)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카피 용 리뷰>를 써달라고 모호한 요구를 했는데,
쎈쓰 있게 카피를 떠주셔서 예쁘게 나왔습니다.
일단 감상하시죠~



박사, 교수, 정치인, CEO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학부모, 대학생, 회사원 같은 평범한 독자들의 멘트를 책 뒷면에 실어준 출판사의 배려에도 깜짝 놀라게 됩니다.

청소년 철학소설 출간 기념으로 깜짝 놀랄 만한 '유익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이름하야 <사이버 세미나>입니다.
다른 출판사의 티스토리 블로그에 세미나장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드림위버>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주제 중에서
우리 실정에 맞는 것을 엄선해서 마중물을 올리고 댓글토론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입니다.
3월 30일에 출간될 책을 벌써 선보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선 책살핌이에 참여해서 책을 받게 될 분 명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피드백을 보내 주신 분에 한정해서 책을 드립니다. (책값이 장난 아니라..) 혹시 제가 빠뜨린 분은 댓글로 항의를 해주시면 바로잡겠습니다.

파란흙, 들풀처럼, 치카, 이슬, 낙서가, jjlopcc, 구르믈버서난달처럼, 봄햇살, affectus, 여유로움 님

위 명단에 있는 회원님들은 책을 읽으면서 서평을 다듬어주시고 인터넷서점에 책이 뜨면 바로 서평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리더스가이드에 먼저 올려도 좋습니다.

★ 사이버 세미나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책을 신청해 주세요. 분량이 500쪽이 넘기 때문에 한 번만 생각해서 선택해 주시구요. 책을 받으신 분들은 서평 쓰기에 앞서 댓글로 토론 주제를 달아주시면 세미나 준비위원들이 적극 참조하겠습니다. 사상 최초로 진행하는 사이버 철학 세미나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서평이벤트는 사이버 세미나와 공동으로 진행합니다.


서평이벤트 신청하러 가기=>클릭

 

책제목 : 드림위버 - 소설로 읽는 유쾌한 철학 오디세이 
출판사 : 다른
지은이 : 잭 보웬(지음), 하정임 옮김, 박이문 감수
출간일 : 2009-03-30
쪽  수 : 548  ( 판형 : )
ISBN : 9788992711241
정 가 : 32,000원
 




◈ 자격조건 및 참고 사항


1. 서평참여인원은 10분으로 제한합니다.

2. 마일리지 차감은 없지만 이벤트서평을 쓰실 때까지 서평도서를 신청할 수 없습니다.

3. 최소 3편 이상의 서평이 알지에 등록 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특별 서평이벤트인 만큼 서평을 쓸 열의와 책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책을 보내 드립니다.

4. 이벤트 서평은 알지 외에 2곳에 등록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알라딘, yes24 등)

★ 이야기하고 싶은 토론 주제를 댓글로 달아주세요.

- 서평이벤트가 책 공짜로 주기, 단순한 홍보 목적으로 호도되는 상황에서 우수 독자들의 의견을 소통하는 의미와 일반 독자들이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얻어갈 수 있는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습니다.

5. 이벤트 서평은 알지 외에 2곳에 등록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알라딘, yes24 등)

- 서평이벤트가 책 공짜로 주기, 단순한 홍보 목적으로 호도되는 상황에서 우수 독자들의 의견을 소통하는 의미와 일반 독자들이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얻어갈 수 있는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습니다.

6. 이벤트 서평을 알지 이외의 사이트에 등록하시면 확인 후 소정의 마일리지를 적립해드립니다.
(알지에 서평 등록 시에 댓글로 서평을 올린 사이트를 알려주세요.)

: 서평 등록 사이트(게시판에서 확인되는 아이디 또는 필명)
예) 알라딘(알지랑), yes24(알지랑)

7. 으뜸 서평자 한 분에게는3000점의 마일리지를 드립니다.

8. 우수 서평자 세 분에게는2000점의 마일리지를 드립니다.

9. 서평 기간은 4월 6일까지 입니다.

Posted by 소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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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대부분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은 특이한 것 같다. 남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곧잘 떠올린다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특별히 기억하는 유년 시절의 기억은 빨간 열매를 따 먹으로 뒷산에 올라갔다가 깨진 콜라 병을 밟은 일이다. 그 일로 산에서부터 피를 질질 흘리면서 집으로 내려왔고, 한 달간 방안에서 민간요법으로 치료한 기억이다.


그 밖에 중학교 2학년 무렵에 아버지가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신 일, 초등학교 시절에는 노래를 조금 잘 불렀다는 것, 중학교 시절에는 남학생으로 구성된 반이라 교실 뒤쪽에서 힘 꽤나 쓰던 아이들이 싸움질을 했다는 것,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저 조용한 모범생으로 살았다는 것, 그것들만 내 기억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에 반해 내 아내는 나와 정 반대다. 아내에게 어린 시절을 물어 보면 뭐든지 다 떠올리곤 한다. 아내는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의 모든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곤 한다. 특별히 6살 때의 기억도 내게 해 주곤 하는데, 그 시절 여동생이 태어난 이후 어머니가 몹시 아팠던 기억까지도 생생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곧잘 따르는 후배 녀석이 나의 늦깎이 대학시절을 떠올린 일도 있다. 나는 27살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대학 4년 동안 몇 차례 이사를 한 기억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후배 녀석은 내가 이사할 때마다 봉고차로 짐을 실어서 함께 이삿짐을 날라줬다는 것이다. 후배 녀석은 이사하면서 겪은 재미난 이야기도 곁들어 주었지만 나는 도통 떠오르지 않아 답답했다.


왜 나는 옛 일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일까? 어린 시절에 찍어 놓은 사진들이 없어서 그럴까? 사진이라도 찍어 놓았더라면 해마다 한 번씩 들여다보면서 연차적으로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 너무 많아서 의도적으로 내 머리 속에서 지워버린 것일까? 조금 더 나이가 들면 혹시라도 아이들이 '건망증 많은 아빠'라고 놀려대지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바시르와 왈츠를〉이 3천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을 떠올리게 하다


그런데 최근에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만화책을 읽으면서 중학교 시절에 했던 몹쓸 짓이 떠올랐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이스라엘군의 묵인과 협조 하에 팔랑헤당 민병대원들이 3천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학살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현장 속에 있던 주인공이자 이 책의 지은이인 아리 폴먼도 꿈속에 나타난 26마리의 개를 통해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지난 시절의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책이다. 


당시 이스라엘 정부는 레바논의 바시르 제마엘 대통령과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바시르 대통령이 기독교인이었던 까닭에 친 이스라엘 정책을 펼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갑작스레 암살을 당하자, 이스라엘 정부는 군대를 파견하여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진격해 들어간다. 물론 그곳에는 이미 기독교 측 팔랑헤당 민병대원들이 시가지 곳곳을 점령해 들어간 상태였다. 다만 팔레스타인 민병대원들은 이미 그 시가지를 떠나고 없던 때였다.


바로 그 시가지 곳곳에서 팔랑헤당 민병대원들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무참히 살해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어두컴컴한 한 밤중에도 그 일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군이 조명탄을 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른바 이스라엘 군은 그들의 살육 현장을 돕는 지원군이자 공범인 셈이었다. 주인공 아리 폴먼도 그와 같은 몹쓸 짓을 여태껏 자신의 뇌리 속에서 지우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가 지독한 전쟁 참사를, 자신의 손으로 무참히 쏴 죽인 그 살육현장을 지워 없앴던 것일까? 주인공은 전쟁 트라우마의 세계적인 권위자를 통해, 그와 같은 기억을 지웠던 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종의 '방어 기제'였던 것이다. 아리 폴먼은 여태껏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지키기 위해서 그 살해 현장에 있던 자신을 머리 속에서 없애왔던 것이다.


 


 불현듯 중학교 시절에 행한 나의 몹쓸 짓이 떠오르다


〈바시르와 왈츠〉라는 책을 덮고 난 후, 불현듯 내 머리 속에서 지워왔던 중학교 시절의 몹쓸 일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로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이었다. 그 일은 당시 한 동네에 살던 기독교인들이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으로 몰아세운 나머지 그 집에 쳐들어가 집안 안팎을 벌집 쑤시듯 들쑤신 사건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집이 우리 집과 불과 몇 미터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시절 시골 교회의 담임목사님과 장로님, 그리고 몇 몇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주도하여 그 집을 쳐들어갔는데, 당시 순진했던 나는 교회 어른들이 하는 방식대로 무조건 따라 하기에 바빴다. 당시 교회 어른들은 피켓만 안 들었을 뿐 일반 시위하는 사람들이 하는 대로 다 했다. 우리들은 그 집안 어르신과 아주머니를 향해 수많은 고함과 삿대질과 욕설들을 마구 퍼부어댔다.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왜 그와 같은 기억들을 지금 이 순간에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나도 아리 폴먼처럼  '방어기제' 때문에 여태껏 머리 속에서 지우고 있었던 것일까? 더욱이 현직 목사라는 이유 때문에 어린 시절에 했던 그 몹쓸 짓을 사죄하지 않고 그냥 버텨보려고 했던 것일까?


지금은 그 어르신이 이 세상을 떠나고 없다. 그 집도 다 허물어져 잡초만 무성할 뿐이다. 그런데 몇 해 전에 그 어르신의 둘째 아들이 시골 뒷산 가까운 곳에 터를 잡아 초보농사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때가 된다면 그 둘째 아들 되는 분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지난 날 그 어르신에게 했던 몹쓸 짓에 대해 정중하게 용서를 구해야 할 것 같다.


posted by littlechri

Posted by 소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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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9월 14일. 이스라엘 방위군은 서부 베이루트 지역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포위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의 호위속에서 팔랑헤당 민병대는 난민촌의 팔레스타인을 도륙했다. 이 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금까지도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않은 바시르의 암살이다. 당시 이스라엘 군부는 기독교 세력인 바시르를 레바논 대통령으로 추대하였으나 취임 직전 살해당했다. 이에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 당원들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색출을 명분으로 사브라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양민 3000여명을 학살하였지만, 무장세력은 이미 2주전에 튀니지로 떠난 뒤였고 살육당한 사람들은 어린이를 포함한 양민들이었다. 이것이 사브라 샤틸라 난민학살의 전모이다.


▲ 학살 피해자의 유족이 오열하는 모습. 이날 희생된 사람들은 공식 기록만 3,000명이 넘는다.


이 사실(무장세력이 이미 난민촌을 떠난 뒤라는)을 팔랑헤 당원들도 이스라엘 군수뇌부도 이미 인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이 책 화자들의 비극이자 망각의 단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아리 폴먼은 친구 보아즈가 스물여섯마리의“비열한”개가 자신을 물어뜯어 죽이기 위해 쫓아오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고백과 만난다. 스물여섯 마리라는 숫자는 20년 전 레바논에서의 일과 직결되어 있고, 이로 인해 아리는 자신이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살아온 과거 20년 전의 기억이 파헤쳐 진 지점과 꼭지점을 그으며 직선으로 맞부딪히게 된다.




보아즈를 만나고 부옇게 이는 먼지처럼 하나의 이미지가 그의 기억속에서 되살아나고 그 이미지의 주인공인 또 다른 친구 카미를 찾아 네덜란드로 간다. 카미는 누구나가 핵물리학자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전도가 촉망되는 천재소년이었으나, 그는 팔라펠을 팔아 상당한 부를 축적한 사업가가 되어있었다. 핵물리학자를 포기한 이유를 묻는 아리에게 카미는 “하지만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난 모든 게 끝나버렸어, 그 후로 난 어떤 것도 될 수가 없었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학살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 (......) 그 학살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어.”


영화 박하사탕에서 영호는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며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삶 밖으로 자신을 몰아세운 세상을 버렸다. 그는 목숨을 버림으로써 망각하지 못한 과거가 아직까지 독기를 품어내는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가래로 콱 막힌 답답한 목을 쏴한 맛으로 뻥 뚫어주는 박하사탕의 단맛처럼.


 


80년 광주에서 소녀를 죽인 군인 영호는 작전수행과정상 불가피!!!하게 민간인을 죽였고, 그 독한 기억은 여전히 20년이 지난 중년사내의 핏줄 깊숙이 퍼지는 현재진형행의 독극물이었다. 그는 가해자일까? 그는 피해자일까? 기억을 놓아버리지 못해 영호는 철교위에 서 절규해야 했고, 보아즈는 20년이 흐른 뒤 매일 개에 쫓기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카미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기억하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아리는 악몽과 도피 대신 망각이라는 방어기제 뒤로 숨어 자신의 트라우마를 씻어내고 있었다.


영호가 소녀를 죽이던 그때 나는 10살 소녀였다. 내일부터 당분간 학교에 오지 말라는 선생님 말에 수지맞았다고 학교에서 돌아와 흙바닥에서 땅따먹기를 하던 머리위로 분주히 비행기가 날았다. 벌써 며칠 전부터 어른들의 입에서는 유언비어, 데모, 전두환이라는 말이 숨죽인 듯 나왔고 평소답지 않은 잦은 비행기 출몰에 겁먹은 우리는 유언비어가 데모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다 풀지 못한 조금은 공포스러운 수수께끼 인양 서둘러 귀가했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그날이 5월 17일 이었을 테다.


 


광주사태와 폭도가 광주민주화운동과 민주열사라는 이름으로 개벽하던 때 아버지는 그날을 회상했다. 도청 지근거리에 살았던 당신은 중고등학생이던 아들딸이 행여나 의분에 뛰쳐나가 총에 칼에 찔려 주검이 되어, 트럭에 실려 어디로 갔는지조차 모를 횡사가 겁나 밤이면 빨래줄로 장성한 아들과 딸 손발을 묶어 당신 손과 발에 칭칭 동여맸던 이야기며, 밤이면 두두다다 콩볶아대는 소리에 귀를 막으며 옷에 오줌까지 절이던 나와 남동생을 부부 가운데로 놓고 솜이불을 이중삼중으로 덮어 밤을 나던 이야기, 그리고 -아마도 5월26일 이었을 터-

알데브론의 호소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고병권 저/ 그린비 펴냄 ---에서 발췌 )




사람들은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군복을 입은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나, 총을 들고 있는 검은 콧수염을 기른 군인들이나, 알라시드 호텔 바닥에 ‘범죄자’라는 글씨와 함께 새겨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걸 아세요? 이라크에 살고 있는 2천4백만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라는 걸. 바로 저와 같은 아이들이요. (중략) 그 아이들은 바로 저와 너무나 비슷한 모습의 아이들입니다.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릿속에는 바로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제가 운이 좋다면, 1991년 2월16일 바그다드 공습 대피소에 숨어 있다가 여러분이 떨어뜨린‘스마트’폭탄에 살해당한 300명 아이들처럼 그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중략)   


하지만 제가 운이 없다면, 바로 이순간 바그다드 어린이병원‘죽음의병실’에 있는 14살 알리 파이잘처럼 천천히 죽게 될겁니다. 알리는 91년 여러분이 터뜨린 열화 우라늄탄 때문에 악성 림프종이라는 암에 걸렸습니다. 어쩌면 저는 18개월 된 무스타파처럼 모래파리 기생충이 장기를 갉아 먹는 병에 걸려서 손을 써볼 수도 없이 그저 고통스럽게 죽어갈 겁니다.(중략) 아니면 저는 죽는 대신, 살만 모하메드처럼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외상을 안고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살만은 여동생과 함께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중략)   


3살 때 아버지를 잃은 알리처럼 고아가 될 겁니다. 알리는 3년간 아버지 무덤에 덮인 먼지를 쓸어내리며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아빠 이제 괜찮아요. 이제 여기서 나오세요. 아빠를 여기에 가둔 사람들은 다 가버렸어요”라고. 하지만 알리는 틀렸어요. 아빠를 가둔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것처럼 보이니까요.(중략)    




이건 액션영화도 아니고, 공상영화도 아니고, 비디오게임도 아닙니다. 바로 아라크 아이들이 처한 현실입니다.(후략)


확성기로 목놓아 “광주애국시민 여러분 마지막 항전입니다”라고 절규하던 여자의 목소리(어쩌면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박흥수의 딸로 분한 이요원이 역을 맡은 그녀일지도 모르겠다)를 들으며 양심의 가책과 절망의 눈물로 지새운 밤까지 소상히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남은 소주잔을 털어 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역사의 죄인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라도 너희들을 지켜야 했다”고.


나의 충격은 사진속 살육당한 처참한 몰골이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그들이 폭도나 간첩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그 열흘 동안의 그 밤을 그 낮을 그 총소리를 그 피비린내를 그 울부짖는 여자의 목소리를 조금도 하나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평소보다 빨리 학교에서 끝나 돌아왔고, 땅따먹기를 하던 내 머리위로 비행기가 분주히 날았고, 유언비어라는 뜻을 묻다가 간첩삐라를 만진 기분으로 우리들은 엄마들이 저녁 먹으라고 악을 쓰기도 전에 뿔뿔이 집으로 돌아간 사실뿐이다. 열흘간의 철저한 기억의 상실 기억의 부존재, 이것은 내가 입은 또 다른 상처일까?




아리는 프렌켈을 만난다. 파출리향수 애호가이자 주짓수 전국 챔피온 인 그는.


사브라 샤틸라 학살 직전 이스라엘 군대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간의 교전시 마치 무아지경에 빠져 건물외벽에 커다랗게 내걸린 바시르의 얼굴 앞에서 마치 왈츠를 추듯 팔레스타인에 기관총을 난사하던 군인이었다. 그가 망각의 늪으로부터 아리를 핀셋으로 꼬집어 내었고, 그 자리에 아리가 있었음을 그리고 아리가 사브라 샤틸라 학살과 난도질당한 사체무더기와 가족을 잃은 양민들의 절규를 목도하였노라고 아리의 기억에 향불을 피워 그를 제단 앞에 앉혀놓았다.




지난 해 세밑, 팔레스타인에 또 다시 포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이스라엘은 자위권을 명분으로 가자지구에 밤낮으로 신무기를 퍼부었고 이스라엘 민간인들이 점심을 싸들고 팔레스타인의 전쟁쇼를 망원경으로 구경하며 이를 드러내 웃는 동안, 이스라엘의 포탄이 난민촌에 유엔학교에 부상자치료 병원에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져 노인을 죽어나자빠지게 하였고, 청소년의 팔다리를 떨어뜨렸으며, 죽은 어미 곁에 목이 쉬고 배가 고파 더 울 수조차 없는 젖먹이들을 쇳소리 나는 목으로 울부짖게 하였다.




유엔학교에 폭격을 가하고 각국의 비난이 쏟아지자 이스라엘 군대변인은 아무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며 그들(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은 때로 민간인을 이용하여 테러한다고 말했다. 또 마을 주민을 한 집에 가두고 무차별 사격을 가하자 유엔에서 진상조사차 마을로 들어왔다. 유엔 조사자들은 죽은 어미 곁에서 며칠동안 먹지도 치료받지도 못한 젖먹이들의 비극과 시체무더기속 사람들은 여자와 노인과 어린아이였다고 밝혔다. 20년도 지난 지금까지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저주의 광시곡처럼 무한 반복되고 있으며 그 반복의 왈츠 가운데 무수한 기억들이 망각되고 상실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해자일 수밖에 없었던 아리 보아즈 카미는 가해자이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박하사탕 그 단맛과 같은 첫사랑의 아릿한 순수함으로 이제는 되돌아갈수 없다는 것을 알고 철교위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었던 영호처럼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나는 유대인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그들을 깊이 연민한다. 그렇지만 샬롯 알데브론의 호소는 너무나 눈물겹다. 9.11사태로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간에 이어 이라크공격을 감행하려 하자 13살 미국소년 알데브론은 찬찬히 오랫동안 저를 한번 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가해자의 망각이 다소간 불편하다. 팔랑헤당 민병대가 바시르 살해와 무관한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할 때 조명탄을 쏘며 왈츠를 추듯 기관총을 난사하며 팔랑헤당을 호위했던 이스라엘은 마치 용산참사때 불타는 망루에 물대포를 쏜 용역들은 혐의가 있고 그들을 방패로 막아 호위했던 경찰들은 무혐의라고 판단한 2009년 대한민국 검찰의 변론처럼 무참하다.


 


나는 전쟁에 그래서 반대한다.


전쟁에는 어떤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 사람을 살육하고, 살아남은 자들을 가해자로 피해자로 그들의 삶 밖으로 밀어내는 부도덕하고 잔인한 전쟁을 나는 반대한다. 결코 끝나지 않는 오토리버스 오디오처럼 기억의 상실과 기억의 존재없음을 되풀이 하게 하는 망령난 그 전쟁을 깊이 혐오한다.


                                                                      posted by 여우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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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diothing 2009.03.09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의 내용도 굉장하지만 마지막 장의 실제 사진은 정말 강렬했습니다.
    모두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에요.


 

인문 만화의 역사가 변화한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만화를 보면 혼냈던 시절이 있다. 요즘도 그런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다만, 아이들이 보고 싶은 만화라는 장르와 부모들이 원하는 학습이라는 목적이 만나는 학습만화는 일단 자리만 잡기만 하면 수백만부가 나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인들은 어떨까? 성인 만화 시장은 적지 않다고 한다. 작가의 이름을 줄줄 꾀는 것뿐만 아니라 만화에 나온 캐릭터의 이야기를 '감동'을 넣어 전달하기도 한다. 손을 잡고 펴보는 만화뿐만 아니라 마우스를 딸각딸각하며 보는 만화도 인기가 높다. 포털에서 만화는 뉴스라는 장르를 제외하고는 메인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왜 만화가 좋을까?

"허어~ 산이 있어 오르는 것을 왜 좋으냐고 묻느냐? 그냥 산이 저~기 있으니 오르지~"라고 할 만화광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만화는 재미와 흥미, 그리고 나름대로의 유익함을 던져준다.


성인만화의 짜릿함을 뒤로 하고, 아동만화의 현란한 색깔을 뒤로하고, 일본 청소년 만화의 일탈을 에돌아서 도착하는 곳에 인문만화가 있다. '만화가 인문이지 인문만화가 따로 어딨어?' 하면 할 말은 없다. '일본의 동성 만화를 읽고도 인문적인 사고력이 늘어가는 것을 어찌 모르느냐?' 역시 할 말은 없다. 다만, 인문만화라 하면 '누구나 읽어도 이 만화는 인정해줄만한 삶과 문화가 들어있는 만화'가 아닐까.


한겨레에 연재되며 수백만부 팔린 홍성우의 비빔툰은 읽는 독자에게 '깔깔거릴' 수 있는 즐거움과 삶의 단면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카툰하나가 '한쪽의 명문에 모자랄 쏘냐~!' <무대리>는 또 어떠랴? 셀러리맨에게 <무대리>가 없었다면 이직율이 지금보다 높았을 지도 모른다.




 사회적인 큰 논란을 일으켰던 <천국의 신화>은 상고사에 대한 상상력을 한껏 높였다. 허영만의 <식객>, <타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만화를 창조해내며 영화화되기도 했다.




인문 만화는 요즈음의 현상이 아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읽는 사람들은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멋진 멜로와 함께 맛볼 수 있었다.

'피가 끓던 1980년대 젊은이들이 선배에게 자랑하며 볼 수 있는 만화라나 뭐래나~!'




     그런가 하면 잔악한 인간의 본성을 폭로한 <쥐>나 원폭의 피해를 절절히 보여주는 <맨발의 겐> 같은 만화도 빼놓을 수 없는 수작들이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인문 만화가 현재의 정치적인 이슈에서 벗어나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생활 문화를 다룬다면, 최근에 나오는 인문 만화들은 지금의 역사를 다루려고 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도서출판 '다른'에서 나온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바시르와 왈츠를>는 지금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미국의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제국주의의 속성을 상세히 밝히는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이 책은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의 함축본이면서 원전에서 다 이야기 못한 역사의 실상을 형상화한다. 또, <바시르와 왈츠를>은 골든 글로브 상을 수상한 애니메이션이 원작으로 한 이스라엘 병사가 자신이 저지른 학살을, 이유도 없는 죽음에 방관하는 자신을 망각한 채 사라가다가, 어느 순간 다시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하워드 진 (다른, 2008년)
상세보기

바시르와 왈츠를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아리 폴먼 (다른, 2009년)
상세보기

분쟁지역에 있는 나라가 학살에 대해 방조하고 공조하는 모습과, 자신도 동일한 살인자라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망각하고 싶은 한 병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끔찍한 지구촌에서 어느 누구도 방관자이거나 관찰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되묻고 있다. 


'내 삶을 바꾼 한권의 책'이 있다면 '내 삶을 바꾼 한권의 만화책'이라고 나오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남녀노소 모두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는 인문 만화가 대화를 이어가는 촉매제로서 더 바람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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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문을 보는데 수단 탈영병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 주었다.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것들이었다.
오죽했으면 그는 비인간적 범죄를 더 이상 참아낼 수 없어서 탈영했다고 하니 말은 다 한 것 같다.

예전에 서당에서 훈장님께 맹자를 배우던 시절에 '측은지심'이라는 말을 배웠다.
맹자는 측은지심의 예로 유명한 '우물 이야기'를 든다.

아이가 우물을 향해 기어가는 모습을 보면 당장 달려가 아이를 구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것은 친구들에게 아이를 구한 것을 자랑하려고도 아니고,
아이의 부모님께 칭찬을 받고 싶어서도 아니다.
마음에서 불쌍다하는 생각이 올라오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이 이타적이고 선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른바 '성선설'의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 수천 년 동안...

훈장님은 막가파를 예로 들며
그들은 잘 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여지 없이 잔인하게 살해했지만,
가난한 여성은 풀어준 일을 지적하셨다.


다루푸르 잔자위드 민명대, 레바논의 팔랑헤당 민병대가 이토록 잔인하게 사람들을 학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마치 마우스 클릭하듯이 방아쇠를 클릭하고 칼로 그들은 잔인하게 살해하거나 신체부위를 절단하고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어린아이들을 가차없이 죽인다.

이것을 당해보지 않고서는 그 슬픔과 고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까. 사람은 왜 꼭 당해 봐야 그 고통을 체감하게 될까.

좀 사소하지만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이 일이 2003년부터 올해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년간 30만명이 사망했고 250만명이 난민이 되었다니... 아 21세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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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푸르 탈영병의 충격적인 고백

"여자들은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집을 불태우고 우물에는 독을 풀었다."
"상관들이 총을 든 채 우리를 감시하면서 아이들까지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숨어 있던 아이들을 찾아내 죽였다. 우물에는 독을 타 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
"여자들을 성폭행하지 않으면 상관들이 우리를 때리고 고문했다."

2002년 말부터 1년여 동안 다르푸르의 코르마 마을에서 민간인들을 살해하는 '작전'을 벌이다 탈영한 할리드(가명)라는 남성이 밝힌 충격적인 학살 경험이다.

그는 "비인간적 범죄를 더 이상 참아낼 수 없어 2003년 탈영했다"고 고백했다.

▲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결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4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앞에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다르푸르의 학살은 전 세계인이 다 아는 현대의 대표적인 학살 사건이다.
1980년대 초반 사막이 확장되면서 물이 모자라게 된 아랍계 유목부족들이 남쪽으로 밀려 내려와 아프리카계(흑인) 농민들과 충돌하기 시작했고, 이웃한 리비아와 차드 등지에서 무기가 밀반입되면서 두 집단의 충돌은 유혈사태로 번졌다.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는 정부의 비호 아래 학살, 고문, 성폭행, 방화, 약탈 등을 저질렀다. 2003년 2월 잔자위드에 맞서는 반군이 조직되자 정부군은 잔자위드와 함께 소탕을 명분으로 한 조직적인 학살 행위를 벌이게 된다.

6년 동안 다르푸르에서는 30만명이 숨졌으며 250만명이 난민이 됐다. 희생자가 대부분 아프리카 주민들이었으므로 ICC는 이 사태를 '인종청소'로 규정하고 있다.


바시르와 민병대의 추억

이번에도 바시르라는 이름이다. 바시르는 1982년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팔레스타인)의 계기를 마련한 레바논 민병대의 수장 이름이다.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기독교 민병대인 '팔랑헤당'이었는데 잔자위드와 팔랑헤당은 쌍둥이 형제처럼 흡사하다.

▲ 위의 그림은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3월 4일 수단 수도 하르툼의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뒤 카퍼레이드에서 손을 흔들며 군중들의 환영을 받는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이다. 아래 그림은 팔랑헤당 민병대들의 시계나 목걸이, 총, 반지 등 어디서나 발견되는 팔랑헤당의 우상 바시르 제마엘. 1982년 9월 14일 대통령 취임식을 9일 앞둔 시점에 폭탄테러로 사망했고 이 일을 계기로 피의 학살이 자행됐다.

다루프르 탈영병의 고백과 같이 수단 민병대 잔자위드의 잔인성을 상상을 초워한다. 그것은 레바논 민병대 팔랑헤당도 마찬가지다. 팔랑헤당은 무슬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수치감을 주기 위해 가슴에 십자가 모양을 칼로 세기고 학살터로 끌려가는가 하면 노인과 아이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렸다.

▲ 팔랑헤당 민병대원 한 명이 자신이 노인을 어떻게 학살했는지 이스라엘 군에게 몸동작으로 자랑하고 있는 장면

학살장면을 읽는 것, 학살장면을 모아놓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인간의 잔인성을 매일같이 상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단 한 하지, 우리가 이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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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을 인정하는 데 60년이 걸려..


▲ 1950년 9월1일 부산형무소 재소자들이 희생 현장으로 끌려가기 직전 트럭에 타고 있는 모습. 영국 보도사진작가 버트 하디가 촬영해 잡지에 게재했다. |진실화해위 제공



국가기관이 60년 만에 학살행위를 공식 시인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일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부산·마산·진주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민간인 중 최소 3400여명이 육군본부 정보국 CIC(방첩부대), 헌병대, 지역경찰, 형무관(교도관)에 의해 불법 희생됐으며 그 가운데 576명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전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은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등으로 전국 형무소 20여곳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들과 예비검속으로 구금된 국민보도연맹원 2만여명이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건이다.

이번에 진실화해위원회가 밝힌 구체적인 내역은 다음과 같다.

부산형무소 :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1500여명(희생자 대부분은 총살 당했으며 일부는 부산 오륙도 인근 바다에 산 채로 수장)
마산형무소 : 최소 717명
진주형무소 : 1200여명


이번에 밝혀진 희생자들은 대부분 육군형사법·국방경비법 등을 위반한 징역 3년 이하의 단기수들이었다.

정부가 낸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국회에서 2003년 통과된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서는 제주4.3 당시 제주 인구 30만 명의 1/10인 약 3만 명이 죽은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대부분은 학살된 것이다. 이 사건은 6.25 직전에 제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1980년대, 2000년대에도 학살은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 어린이를 포함한 청중들은 해맑게 웃고 있고, 시민들에게 맞아 죽은 좌파 여대생은 나무에 목이 졸려 반쯤 떠 있고, 그 사체를 의자로 무섭게 내리찍는 한 남자가 있다. 장면 하나하나가 충격적이다.

1976년 10월 6일 태국의 수도 방콕의 타마사트 대학에 결집한 좌파 학생과 주변에 모인 우파 세력이 충돌했을 당시 우파 세력은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학생들을 참혹하게 학살했다. 그 때 사망자가 수십 명에 달했고 수 천 명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학생들을 학살한 사람들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것이 학살의 무서운 특징이다.


▲ 1982년 9월 16일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3000명 이상 대규모 학살이 있었다. 이슬람교도인 팔레스타인 시민들에게 가장 모욕적인 방식으로 학대하기 위해 가슴에 십자가를 칼로 새기고 나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끌고 갔다. 이들은 단 한 명도 되돌아오지 못했다.


1982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당한 학살은 현대에 벌어진 가장 잔인하면서도 규모가 큰 학살행위다. 특히 제3국이나 후진국에서 의해서 이루어진 학살이 아니라 최선진국이 주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제3세계, 후진국의 학살에는 미국이나 제국주의 국가가 관여돼 있지만 적어도 제국주의 국가들은 배후 조종하는 식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사브라ㆍ샤틸라 학살사건에는 이스라엘이 사실상 주도한 것이 정설이다.
먼저 사브라ㆍ샤틸라 지역을 포위하고 밤에 조명탄을 쏘는 등 후방을 튼튼히 받쳐 준 것은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소행이다. 그리고 학살사건을 방조했다. 극우파 기독교 정파인 레바논의 팔랑헤당은 이스라엘이 깔아준 밥상 위에서 마음껏 학살 행위를 저질렀다. 이 사건은 현대 학살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유형을 총망라해주고 있다.

전쟁상황이 되면 적군에 의한 희생이 부각되는데 그보다 다 참담한 것은 바로 '말의 죽음'이다. 일본의 극우세력이나 미국의 네오콘은 전쟁 상황을 몹시 반긴다. 모든 논리를 뒤엎고 강경논리로 권력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극우파의 공통공식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에 못지 않은 극우파들이 많다. 전쟁은 정적을 처단하는 '처리장'으로 되며, 국가주의를 한껏 퍼뜨리는 '마이크'로 이용되며, 전쟁물자를 잔뜩 만들어 팔아넘길 수 있는 '대목 장'이 된다. 이것이 현재에도 전쟁이 '상품성'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위와 같은 학살사건이 다시 벌어질 수 있을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언론이 죽고 일방통행이 시작되면 국가주의와 충성이 강요되고 상대국과의 전쟁상황은 순식간에 만들어질 수 있다.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기 전에 프랑스가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은 독일의 공격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를 목격한 사람들과 역사가들에 의하면 '순식간'에 전쟁상황이 펼쳐졌다고 한다. 그래서 촉수가 예민한 사람들은 전쟁상황을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다.

학살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의미로 정부에서 학살 사건을 처음으로 시인했다는 것은 천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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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9월 14일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될 팔랑헤당 민명대의 지도자인 바시르 제마엘이 폭탄 테러로 살해 당한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팔랑헤당 민병대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무장 세력을 제거 한다는 명목으로 사브라와 샤틸라라는 지역으로 들어가 사흘(16~18)동안 노인, 여자, 아이들 3000여명을 학살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바로 ’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이다. 그런데 이 대량학살에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연관이 있는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 사건 당시 이스라엘 군대는 이 난민촌을 둘러 싸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 왜 이스라엘은 막을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을 묵인했을까? 살해 당한 바시르 제마엘은 친이스라엘 세력이었고, 이스라엘 정부의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라는것이 그 답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이 당시 난민촌을 둘러싸고 있던 이스라엘 군대에 복무한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지면으로 옮겨 놓은 작품이다.

▲ 이스라엘의 괴뢰정부 수장 바시르 제마엘의 현수막 아래서 이스라엘 병사가 기관총을 휘두르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전쟁에 있어서 전쟁을 직접 일으키는 사람들은 전쟁과 관련해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는 반면, 정작 전쟁이 일어나는데 있어서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 피해를 온 몸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은 살해 당함으로써 피해자고 되고,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살아남음과 동시에 그 당시 기억으로 고통받음으로써 또 다른 피해자가 된다. 정작 전쟁을 일으킨 정부나 정치인, 고위 관료는 전쟁에 직접 참여한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이 전쟁의 가해자가 아닐까 싶다. 진주만이라는 영화에서 ’전쟁에서 진 놈은 죽고, 전쟁에서 이긴 놈은 병신이 된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 대사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하마스가 전쟁중에 있다. 그런데 그 피해액과 사상자수가 PLO측이 이스라엘보다 100배정도 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정도면 이는 양국간의 전쟁이라기 보다는 한쪽의 일방적인 공격이라고 밖에 볼수 없다. PLO측의 사상자수만도 6000~7000명에 달한다는데, 이는 30년전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과 다를바 없는 제2의 대량학살 사건이다. 그런데 더 기가 찬 것은 이 전쟁이 일어난 계기이다. 30년전과 같이 표면적인 이유는 무장단체의 제거이다. 그러나 실질적은 요인은 정치이다.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나는 정치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올해 2월 10일이 총선 예정일이였다. 그런데 전쟁전 야당의 지지율이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PLO측과의 전쟁으로 집권 여당의 지지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이는 집권 여당이 총선의 승리를 위해 전쟁을 활용하고 있다고 밖에 볼수 없다. 미국측 역시 이스라엘에 반미적인 정권보다는 친미적인 정권이 계속 집권하는 것이 자국에 이익이기 때문에 현재의 학살을 묵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30년전과 똑같다. 전쟁을 일으키는 놈은 따로 있고, 전쟁에 참가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국민이 따로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살아가려는 국민만 희생당하는 현실이 암울하다.

이 책은 애니메이션을 지면으로 옮겨 놓은 작품이다. 영화와 이 책을 비교해 본다면 영화는 조금 지루한 반면 전쟁의 암울한 상황과 주인공의 심적 상황을 잘 알수 있고, 책은 영화에서 다루지 못한 사건의 배경이라든지 작품 해설이 있어 ’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을 보신분이라면 영화도 한번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고, 영화를 보신분이라면 이 책으로 좀더 깊게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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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르는 전세계에 걸쳐 있는 희생 제의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진실을 찾는다. 희생은 인간의 원초적인 폭력의 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집단 내부의 원초적 폭력을 소위〈희생할 만한〉어느 한 개인이나 한 집단에게로 방향을 돌려버림으로써 인간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인간 집단 특유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지라르는 말한다. 소위 집단의 지도자들끼리는 서로 〈합의 안하기로 합의〉하며, 성(聖)스로움도 하나의 폭력으로서, 단지 그 폭력성이 감추어져 있을 뿐이라고.      -----------『폭력과 성스러움』르네 지라르

 

1982년 9월 레바논 서부 팔레스타인 난민촌

 

 그 곳에 피빛 광란의 밤이 찾아왔다. 이스라엘 군의 묵인아래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팔랑헤당)는 샤틸라와 사브라 난민촌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했다. 지도자를 잃은 그들에게 팔레스타인들의 학살은 성스러운 행동이었다. 폭력은 그 바탕에 종교적 제의를 바탕으로 둔다고 르네 지라르가 말했던가? 학살은 항상 또다른 보복을 부르고 다시 추악한 학살이 반복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추악하고 씁쓸한 역사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현재에도 진행일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해답은 망각에 있다. 따라서 학살과 폭력에 대한 역사의 망각은 인간의 죄악이다. 그 죄을 모두 씻어 낼 수 없지만 기억을 더듬어 과거의 더러운 역사를 추억하고 그 과정에서 우린 학살의 반복을 막아야 할 의무를 가진다. 인간이기에 말이다.『바시르와 왈츠를』은 바로 대향학살된 팔레스타인을 기억해내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주인공 아리와 함께 20년 전 학살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은 우리 또한 인간이기에 불편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린 망각의 늪에서 불편한 진실을 기억해 내야 한다.

 

 바시르와 왈츠를 읽으면서 학살의 역사를 추억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아리의 전우였던 프린켈이 바시르의 걸개 사진 앞에서 쏟아지는 총탄을 음악삼아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그린 장면에서 내 기억속에 잠들어 있던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고, 영화 장면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바시르와 이스라엘 군의 왈츠는 과연 어떤음악이었을까? 폭력과 학살을 다룬 영화들에서 기억해낸 음악에 기대에 『바시르와 왈츠를』의 음악을 상상하면서 동시에 끔찍했던 학살을 추억해 보자.

 

 

2차세계대전 중 유럽에서는

 

 독일에 의해 대량의 유대인 학살이 자행된다. 이른바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유대인 학살에 희생된 인원만 600만명이나 된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 과학과 합리성이라는 이름아래 수많은 유대인들을 가스실에서 효율적(?)으로 살해한 전무후무한 이 학살을 추억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단순한 반유대주의에서 출발한 최종해결책이라 불리는 유대인 학살은 같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역사상 가장 추악한 범죄임이 분명하다. 차이와 서로 다름의 상대성을 이해하지 않고 종교적 이유와 인종학적 근거로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음으로 내 몰았던 학살의 추억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가능하다. 영화 중반부 유대인 게토를 청소(?)하던 친위대 장교는 밤하늘을 찢는 총소리를 배경으로 피아노곡을 연주한다.

  

 바흐 "영국 모음곡"

 

 

 영화는 흑백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더욱 학살의 기억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친위대 장교의  피아노곡이 울리는 그 날 밤 게토에서는 총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영화후반 대규모 학살이 시작되면서 유대인들은 벌레 죽듯이 죽어나간다. 더이상 유대인은 같은 인간이 아닌것이었다. 학살된 유대인 시체를 소각하는 장면과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의 모습등은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특히 게토에서의 피아노 곡은 총소리, 비명소리와 함께 기억의 깊은 곳에 고스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1942년 3월 27일, 괴벨스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루블린에서 시작하여 전 통치 지역에서 유대인들이 지금 동부로 소개되고 있다. 절차는 매우 야만적이고 여기서 더 상세하게 묘사하지 않겠다. 유대인들은 별로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그들 중 약 60%가 청산되어야 할 것이고, 약 40%만이 강제 노동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데...... 그런 경우 감상은 어울리지 않는다."  -----------『폭격의 역사』, 스벤 린드크비스트

 

 

1965년, 베트남에서는 미국이 본격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강대국 미국과 도저히 대적이 불가능해 보인 북베트남과의 전쟁에서 북베트남은 미국을 꺾었다.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구호따위는 애당초 전쟁의 본질을 벗어난 것이었다. 아무런 정당성도 없는 전쟁, 군수업체를 위한전쟁일 뿐이었던 베트남 전쟁은 엄청난 민간인 사상자를 기록했다. 영문도 모르고 전쟁에 참가한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도 희생이지만 아무런 저항 수단도 없던 베트남의 민간인들은 미군의 막강한 군사력 앞에서 학살 아닌 학살을 당한 일이 비일비재했다. 말라이에서 벌어진 미군의 민간인 학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리라.

 

"미라이-4 지역에서의 학살은 천인공노할 짓이었다. 한 노인은 총검으로 난자당했으며, 어떤 노인은 우물 속으로 던져진 다음 수류탄 세례를 받았다. 마을 밖 사찰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던 아이들과 여자들은 등 뒤에서 병사들의 총을 맞고 죽었다. 가끔 병사들은 어린 여자아이들을 도랑 가로 끌고 가서 강간하기도 했다. 한 병사는 겁탈한 여자아이 대여섯 명을 한 오두막에 집어넣은 다음 수류탄을 던져 폭사시키기도 했다......."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마이클 매클리어

 

미군 병사에게 노랗고 작은 베트남인은 야만인 내지 미개인으로 비춰졌으리라. 같은 인간이 아닌 동물로 말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베트남 마을을 미군 헬기들이 공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그 장면에서 헬기들은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바그너의 음악을 방출한다. 순식간에 베트남의 작은 마을은 마치 묵시록에서 예언한 장면처럼 지옥으로 변해버린다. 웅장한 바그너의 음악과 묘한 대비를 이루는 아비규환의 지옥. 그곳에서 죽어 나가는 베트남 사람들이 미군에게는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쓸어버려야 할 쓰레기 일뿐이었다.

 

 

 

2009년 우리나라에서는

 

용산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우리 사회에 야만이 아직 존재하겠느냐는 감상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 임을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독재에 항거했던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하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임을 향한 행진곡"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귀에 익은 외국곡이 있는데 바로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Qui A Tue Grand-Maman?)"라는 노래다. 민중가요 "5월의 노래"가 바로 이 노래의 번안곡이란다.

  Michel Polnareff 의 "Qui A Tue Grand-Maman?"

 

할머니가 살던 시절 정원엔 꽃이 만발했습니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는 상념만 남았지요.
그리고 두 손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 시간인가요?
아니면 더 이상 여유로운 시간조차 보낼 수 없는 사람들인가요?

할머니가 살던 시절에는 고요함이 있었습니다.
나무가지들과, 가지에 매달린 잎새들과
새들의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요함이 있었지요.
불도저가 할머니를 죽였습니다. 굴착기는 꽃밭을 갈아엎었지요.
이제 새들이 노래할 곳은 공사장뿐이랍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건가요?   

                         --------자료출처: http://bopboy.tistory.com 

 

 역사적으로 학살은 종교적 제의 의식에서 출발한 폭력성을 기반으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차별화를 사회적으로 조장하는 분위기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는 르네 지라르의 의견에 동의한다.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오랜 방황끝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든 유대인은 분명 종교적 이유와 생존의 이유로, 그리고 팔레스타인 인들은 자신들과 완전히 다르다는 차별 의식을 배경으로 전쟁과 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 2차대전 독일은 반유대주의 정서와 편협한 인종주의 배경으로 당시 경제위기의 책임을 유대인에게 전가시키며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다. 미국은 민주주의 체제의 수호라는 미명아래 수많은 베트남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어떨까?

 

개발과 발전의 신화, 성장이라는 망령, 경쟁 우선의 엘리트주의 아래 도사리는 야만적인 폭력성이 봉인이 풀릴 기회를 엿보고 있다. 용산사건은 바로 개발의 성스러움 아래 자행된 폭력이었다. 타자의 이해보다는 차별이 우선시 되는 사회, 발전만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사회에서 폭력성을 수반한 직,간접적인 학살의 피해자는 다수의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학살을 추억하며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은 "망각"이라는 단어였다. 인간이기 때문에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폭격속에서 죽어간 "가자"의 아이들, 화염속에서 사라진 여섯 명의 목숨들......

 

다시는 학살을 추억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한다.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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