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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읽은 청소년 소설이다. 『분홍벽돌집』이라는 청소년 소설 역시 주인공들의 성장과정과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준과 수경이 보다는 똥통과 털보가 더 진하게 내 가슴을 울렸다. 상담사와 형사 그리고 의사를 포함한 어른들이 말이다.

똥통
이라 불리는 이는 학교 선생이다. 님 자를 붙일 수 없는 인간이다. 경쟁에 도태된 아이들과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아이들을 쓰레기 취급하는 똥통은 준을 자퇴로 몰고 가는 어른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 차라리 회색벽돌집 관리인이라는 말이 훨씬 더 어울린다. 의외로 주변에 이런 선생들의 이야기들이 빈번하게 들려온다. 회색 벽돌집에서는 꽤나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다는 것이 더 큰 문제지만.
  

털보
는 영화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아니 멘토다. 분홍벽돌집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진지하게 인생과 삶의 길에 대한 좌표를 일러주는 키딩 선장이다. 그는 분명 선생님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길과 목표가 있고,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는 참 쉬운 진리를 잘 아는 사람이다. 우리 시대 분홍벽돌집을 지어 낼 괜찮은 어른 중 한 명이다. 이런 사람을 발견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 큰 문제지만. 
 

수경을 성추행 한 상담사, 수경을 치료했던 의사, 그리고 경찰서에서 수경을 조사했던 형사들. 이들은 현재 우리 어른들의 자화상이다. 아이들은 귀찮은 존재이고, 일탈을 경험한 아이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며, 본질적인 문제의 해답을 찾기보다는 방관해 버리는 시대의 죄인들이다. 그렇게 지금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많은 죄를 짓고 살고 있다.
  

경쟁보다는 함께 숨 쉬고 살아가며 어우러짐을 가르쳐야 한다. 성적보다는 개성으로 아이들을 판단하고 이해해야 한다. 하나의 고귀한 인격체로 청소년을 대해야 한다. 못한다는 채찍질 대신 잘 할 수 있음을 격려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어른들이 먼저 가져야 한다. 그래서 이 사회엔 똥통보다 털보가 필요한 것이다.     

분홍벽돌집에서 영화를 통해 삶의 목표와 의미를 깨닫게 된 준이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이 땅의 수많은 청소년들을 생각한다. 어른들의 틀에 맞춰진 회색벽돌집에서 공부기계로 전락한 이 시대 아이들을 말이다. 그 아이들에게 준이와 같은 기회가 주어질까? 주어진다면 우리 아이들도 준이와 같은 고통을 거쳐야만 하는 걸까? 비행, 탈선, 폭력과 같은 단어들이 청소년들과 병치되는 건 무엇보다 아이들을 그런 상황에 내몰 수밖에 없는 사회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지금의 어른들이 그 책임의 중심에 있음은 물론이다. 시험과 공부로만 평가되는 극악한 경쟁 속에서 아이들이 잃어버린 개성과 창의력, 그리고 인권을 되돌려 주기 위한분홍벽돌집을 지금부터라도 우리 어른들이 지어야 하지는 않을까?             (글쓴이 : jjolpcc-rg)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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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직도 여자들이 교육을 받기 힘들다. 극심한 가부장제에서 성장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은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쓰고 학교에 등교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학교에 간다는 사실이 가족들, 특히 아버지 등 가부장에게 알려지면 학교에 못 갈수도 있다. 아프가니스탄 여학교에서는 폭탄이 터지거나 여교사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아프가니스탄 소녀들에게 있어 배운다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기도 하다. 탈레반은 퇴각했지만 아직도 카불 이남 지역에서는 그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여자들의 삶은 대테러 전쟁 이전과 비교할 때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6120029

 지난 주말에 예멘에 사는 열 살 이혼녀 누주드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이슬람 국가에서 여자로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그 책을 읽으며 화가 났습니다. 누주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이 학교에 가는 일이라고 했는데도 그 행복한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한참 배우고 자라야 할 아이가 공부는커녕 자라기도 전에 어른(!)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죠.  오늘 검색을 하다가 위의 글을 읽고 나니 또 한 번 한숨이 나옵니다. 배운다는 것이 목숨을 건 일이라니요?  

 

문득 『세 잔의 차』가 생각나더군요. 그레그가 만난 아프카니스탄 두르카니 고등학교의 우즈라 파이자드 교장은 전쟁 후에 탈레반이 물러가고 여자아이들이 교육을 받으러 올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어프카니스탄의 문제들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 교육이라는 것을 깨닫고 무너진 학교를 복원하려 애쓰고 있었죠. 그걸 본 그레그는 그녀를 도와줍니다. 

이렇듯 세상엔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찾을 때까지 투쟁하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그러려니 오래된 풍습이니 해보나마나야 하고 포기하며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서라도 공부를 하겠다는 아프카니스탄의 여자아이들이나 그 아이들을 위해 무너진 학교를 복원하려고 노력하는 우즈라가 있고, 기가 막힌 풍습의 희생양이지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누주드가 있는 한, 언젠가는 아프카니스탄이나 예멘이나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받는 여자들에게도 '자유'를 만끽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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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
카테고리 아동
지은이 그레그 모텐슨 (다른,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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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오면서 본 가장 믿어지지 않는 일 가운데 하나였어요. 그 십대 소녀가 매우 보수적인 무슬림 마을의 남자들이 모여 있는 한가운데로 춤을 추듯 와서는 단번에 켜켜이 쌓인 전통을 무너뜨렸어요. 그녀는 학교를 졸업했고, 600명 가량이 살고 있는 계곡 마을에서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교육을 받았어요. 그녀는 자신을 남의 의견에 맡기기 않고, 그레그 바로 앞에 앉아 자신과 마을 사람들의 보다 나은 삶에 대해 영어로 쓴 제안서를 내밀었어요. 그래서 내가 그레그에게 말했어요. '당신이 여기서 하는 일들은 내가 취재하려 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이야기예요. 이것에 대해 이야기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p209
 

 

 

  

위의 글은 뉴욕 『퍼레이드』잡지의 기자 케빈 페다코가 그레그와 함께 브랄두 계곡에서 만난 그레그의 학교에서  '처음으로 교육받은 소녀'가 된 자한을 보고 말한 내용입니다. 

자한은 그레그가 처음으로 세 잔의 차를 마시며 그 의미를 들려주었던 하지 알리의 손녀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자한은 겨우 아홉 살의 소녀였고, 그레그는 자한뿐만 아니라 학교에 다니며 열심히 공부한다면 어떤 장래희망을 갖든 아이들이 목표에 도달할수록 자신이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을 했었답니다. 

그리하여, 자한은 자신의 목표였던 의료 훈련을 위해 그레그에게 당당히(이슬람의 세계에서 어찌 여성이 그리도 당당하게!!!) 제안서를 내고 지원을 받게 되죠. 

저도 여자이고 우리나라도 아직은 여성들에게 보수적인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이슬람 나라의 여성들을 접할 때마다 저는 마음이 너무 아프답니다. 문화가 다르다고 하지만 여성들도 인간인데ㅠㅠ 

부디 자한이 의료 훈련 열심히 받아 자한이 원하는대로 '위대한 여성'이 되길 바랍니다. 

자한 화이팅!!!^^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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