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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벽돌집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박경희 (다른,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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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청소년 책을 읽으면 거북하고 불편할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부모가 내 아이는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청소년이 나오기 때문이겠고 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일 게다. 아무리 이건 단순히 이야기 속에 나오는 허구일 뿐이라고 자기최면을 걸어도 현실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은 부모들이 내 아이는 제발 이러지 말았으면 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그것도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펼쳐진다. 사실 준이 일진에 속하긴 하지만 본성이 나쁜 아이는 아니다. 전지적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작가는 준에게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아무리 일진에 문제아라도 본성은 착하며 오히려 인간성이 나쁜 선생님이 등장하는 것은 아닐런지. 물론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그러한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무리 그렇다쳐도 여기에 나오는 '어른'들은 털보 선생을 빼고 모두 파렴치하고 인간이 덜 됐다. 상담사라는 사람이 원조교제를 하다 잡혀온 아이에게 거래를 요청한다는 설정이나 교사라는 사람이 무자비하게 학생을 패(이것은 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나 창피하다며 딸 면회도 오지 않는 부모 등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준과 수경이가 그런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러면서도 이것이 전혀 현실성이 없는 허구라고 단정짓지 못하는 게 더 슬프다. 

그래도 준은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하긴 엄마가 준이 어렸을 때부터 믿어주고 보듬어줬기 때문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선이 자리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노숙자를 때리면서도 마음 속으로 갈등하고 일진회에 들어가서 그들과 어울리면서도 마음은 집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만 보아도 아이들은 본디부터 나쁜 마음이 있어서 못된 일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휘말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제도권에서 바라보는 그들은 이미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아이들일 뿐이다. 솔직히 나도 겉으로는 이해하는 것처럼 말할지 몰라도 속으로까지 그들을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이처럼 그들을 더 벼랑으로 내모는 것은 사회며 어른들이다. 적어도 준이 엄마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현재 여기에 있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말을 많이 써서 당췌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거기서 벌써 나는 그들과 세대차이를 느낀다. 물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서 별 무리없이 읽긴 했다. 아마 아이들은 이러한 은어 때문에 더 공감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몰랐던 은어를 배울까봐 약간 걱정되기도 한다. 하긴 그건 나만의 착각일 것이다. 딸은 이미 전부 알고 있을 테니까. 

작가가 제3자의 입장에서 수경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우리'라는 표현을 써서 순간 시점이 혼동되기도 하고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한참이 지난 뒤에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오늘'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헷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처럼 문학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한창 미래를 꿈꾸며 삶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야 할 시기에 회색 벽돌집이나 분홍 벽돌집(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격리된 것은 마찬가지다.)에서 생활하도록 만든 것이 비단 개인의 책임만은 아닐 것이다. 

준의 행동을 따라가며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나 소년원에서 일어나는 일 등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어 취재글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 소설이란다. 하지만 또 다시 이야기하지만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 마음 아프다. 이 책을 읽은 청소년들이 제발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번 나아간 길은 절대 되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written by 봄햇살(yes24)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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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식량으로 이용돼 오던 8만 종의 식용작물 중에서 오늘날에는 단지 150종만이 경작되고 있고, 실제로 세계적인 교역이 이루어지는 작물은 겨우 8종에 불과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63억명이 실고 있는 지구에는 120억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생산됨에도 불구하고, 8억명이 영양실조와 기아로 고통 받고, 17억 명이 과식으로 인한 비만으로 고생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대지의 어머니’란 뜻의 '테라 마드레(Terra Madre)'는 건강한 땅에서 건강한 정신으로 기른 음식을 먹어야 인간이 살 수 있다는 ‘슬로우 푸드 지구촌 식품 공동체’ 운동을 일컫는다. 전 세계 농민들의 슬로푸드 지구촌 식량 공동체 운동인 테라 마드레는 지난 2004년 10월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인 튜린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2년에 한 번씩 세계 전통음식 축제를 열어 친환경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의 소규모 농업 활성화와 미각의 즐거움 되찾기, 전통음식을 보존하기 등의 대안을 제시하는 등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슬로푸드 국제본부에서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새로운 지표를 제시하기 위해 이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책은 세계화와 대규모 기업적 농업의 위해를 논하는 테라 마드레 포럼과 소규모 식량생산자들을 주목한다. 이들은 대지를 사랑하고 신뢰하며 언어, 사상, 종교, 정치적 장벽을 넘어 오직 자신과 대지의 관계만을 정립하고 세계화에 맞선다. 대지는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재확인하는 이 작품은 메마른 도시인들에게 보내는 대지의 경고장이자 초대장이다.    

테라 마드리드가 독창적이면서도 진정 혁명적인 이유는 바로 산업 공정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식량 공동체를 선정함으로써 생산품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품질을 차별화 함으로써 소규모로 생산하는 이들을 그 중심에 놓았다는 점입니다.(p.10)  

그만큼 우리의 식탁은 위협받고 있고 건강은 장담할 수 없다. 독점화된 농업기업의 잘못된 결정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이제 한국에서도 유전자조작 옥수수가 수입된다고 한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물질을 소비해야할 위험에 처한 것이다. 광우병으로 나라가 어수선한 정국에 또 하나의 공포가 밀려온다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즐거움과 기쁨을 줘야할 음식과 전쟁을 치뤄야 한다는 현실이 씁쓸하다. 위험한 실험을 계속하는 기업과 이것을 후원하는 정부와 이것을 팔아주는 소비자가 있는한 유전자조작 농산물은 번창할 것이다.

이 책의 기고자중 한사람인 마이클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머'란 책에서 느꼈던 부분이 생각난다. 그 책에서 폴란은 단순히 음식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인문학적 통찰력으로 음식이나 식문화와 관련된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생태학적 인류학적인 제반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음식을 통해 인류의 문화와 역사를 되짚어보고, 식품산업이 대변하는 사회 전반의 정치적 경제적 생태적 문제점을 통찰하면서 인간으로서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은  햄, 라면, 베이컨, 소시지, 장조림까지 인스턴트 음식이 나오지 않는 것은 거의 없을 정도로 인스턴트 음식이 대중화되었다. 먹 거리를 선택하는 것과 조리, 그리고 먹는 방법의 올바른 기준은 몸이 지금 진정 필요로 한 것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판단해야한다. 또한 먹 거리가 내 뱃속으로 들어올 때까지 어떠한 환경에서 또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가를 생각해보면 먹어서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 쉽게 판가름이 날것이다라는 내용이 기억에 남았었다. 

이 책을 읽고 느낀점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는 현재 및 미래의 삶에 대한 두려움과 나라 간, 계층 간, 민족 간이 분열, 그리고 엄청난 소비의 한켠에서 철저히 소외된 계층들의 절망이 만연해 있다는 부분을 알게 되었고 현재 진행 중인 식량공포를 알게 된다면 음식에 대한 생각을 다시 고려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것이다. (written by soon-rg)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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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어머니께서 추천하셔서 읽게 된 '분홍 벽돌집'. 아주머니께서는 나에게 이 책을 건네실 때 '무서운 책'이라 하셨는데, 겉표지를 보니 정말로 묘한 무서움이 느껴졌다. 난 그렇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준과 수경이는 나와 같은 나이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행동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수경이의 행동에 공감을 느낀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우리 나이때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없다. 서빙 알바를 하고 싶어도 18살이 넘어야 하고, 게다가 술집이라하면 미성년자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할 뿐더러 햄버거집 알바도 거의 19살정도가 되어야 할 수 있다.  

우리 나이때에 돈이 뭐가 필요있겠냐고 묻는 어른들 정말 많다. 지금은 혈기왕성한 10대이다. 더 예뻐보이고 싶고, 더 날씬해보이고 싶고, 더 꾸미고 싶은 욕구가 차오른다. 어른들은 다들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때는 안꾸며도 예뻐." 하지만 우리들 입장에서는 눈에 뭔가 좀 더 바르면 눈이 커보이고, 입에 좀 바르면 입이 생기있어 보이는 걸 느끼면서 자기만족을 한다. 그리곤 예쁘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뭐라하든지간에. 우리 때에는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없다. 단지 부모님의 용돈에만 의존할 뿐이다.  

그런데 수경이는 내가 생각하기에 용돈을 안 받는 것 같다. (수경이 말대로라면) 그렇다고 해서 몸을 파는 것은 해서는 안될 짓이다. 자기의 몸은 그 누구의 몸도 아니다. 나 자신의 몸이기 때문이다. 먼 사람 얘기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가까이 느껴진다. 그이유는 이것이다. 가끔 심심할 때 채팅을 할 때가 있다. 모르는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기쁘고,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그 채팅을 했을 때마다 쪽지나 대화가 한두 통씩 꼭 온다. 돈 많으니까 오라고 말이다. 또는 성적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어디가 크니 작니 하며 말이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 모두 남자였다. 그래서 난 살짝 남자란 존재가 두렵게도 느껴졌다. 그런데 성적인 만족을 느끼기 위해 만들어진 방들 중 정원이 꽉 찬 방이 있었다. 그렇다, 여자도 동의를 한다는 것이다. 경악했다. 과연 그 여자들은 그 남자가 좋아서 만나는가 그건 절대 아닐 것이다. 단지 돈!이라는 전제하에 만나는 것이다.  

다시 수경이로 돌아가자, 가시엉겅퀴 그녀, 아름답지만 찔릴까 두려운 존재. 그녀는 굉장히 아름답다. 하지만 내부는 그렇지 않다. 수경이도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다. 가시, 뾰족한 것, 찔리면 아픈것. 자신의 아름다움이 가시라는 것에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노숙자를 때린 혐의를 가진 준. 그의 삶은 웅이를 만난 후 급속도로 아래로 치닫았다. 준을 보니 꼭 우리 학교 남자애들이 떠올랐다. 남자애들은 무엇이 멋있다라고 생각을 할까. 놀아보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을 보니 불쌍하다라는 생각이 났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으면 굽실거리고 자신보다 레벨이 낮다 싶으면 떵떵거리니 어이가 없었다. 담배피고 술마시면 노는 줄 아는 그들. 정말 꼴불견이다. 나도 하라면 할 수 있다. 그것쯤이야, 하지만 난 더러워서 안 할 뿐이다. 겉에서 봤을 땐 멋있을 지 몰라도 폐를 보면 너무나도 더러울 테니까. 웅도 아마 그중 한명일 것이다. 아니다 그들보다 더한 존재이다. 친구를 개떡으로 보니까 말이다. 말도 안되는 '우리들의 수칙'을 주장하며 한 아이의 삶을 벼랑끝으로 내던지게 했으니까 말이다. 진정한 우정이란 서로를 감싸는 건데 '우리들의 수칙'에서는 웅을 위한 수칙일 뿐이다. 하지만 나였어도 '우리들의 수칙'에 따랐을 것이다. 맞는 것이 두려워서... 그렇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다. 맞는다는 것은 육체적고통이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족보에 빨간줄이 그어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육체적 고통보다 더 할지 모른다. 취직할 때도 결혼 할 때도 모든 것의 걸림돌이 될 것이니까. 하지만 다행인것은 준이가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는 것이다. 한남자, 털보아저씨로 하여금 자아를 되찾은 것이다. 

이 두명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사회가 이 둘을 내친 것. 누군가가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져주었다면 안 일어났을 일들이었다. 우리 나이 때에는 부모라는 것이 굉장히 소중하다. 하지만 우리 나이 또래들은 그런 것을 잘 못 느낀다. 나 또한 그렇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부모님과 대화하는 일은 거의 없고,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나의 얘기를 말한다. 내 친구들과 얘기를 하면 서로 공감하면서 친해질 수 있고, 편하고, 내 이야기에 맞장구도 잘 쳐주니까 말이다.  

몇몇 이렇게 느끼는 부모님들이 계신다. 우리 자녀는 아마 저와 제일 친할 거예요. 그건 어른들만의 생각이다. 어른들은 거의 어른의 틀에 맞추어서 생각을 한다. 말이 통할 리 있겠는가. 예를 들자면 우리 어머니와 나의 대화는 이렇다. "나 내일 친구들이랑 놀러가","공부는 하고 노는 거니? 시험 성적 이렇게 맞고선 놀 생각이 생기니?" 우리 두 모녀의 대화의 끝은 서로 화내고 끝이 난다. 어느 집안이나 똑같을 것이다. 애들과 대화해 보니 다들 나와 같았다. 절대 어른들은 이런 것을 묻지 않는다. 그애는 어떻게 생겼니, 그애는 무엇을 좋아하니, 너랑 얼마나 친하니, 그애랑 어떻게 친해졌니 같은 질문 말이다. 그러니 부모간의 대화는 거의 하질 않을 수 밖에. 누가 짜증내면서 말을 하고 싶을까 말이다. 내일이 되면 이런다. 공부는 하고 가니, 몇시에 오니, 빨리 놀다가 와서 책 좀 봐라. 기분 좋게 놀러갈 마음이 생기겠다 말이다.  소통이 안되니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를 찾는 것이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이다. '분홍 벽돌집'에서 나오는 체육선생님 정도는 아니지만 그들은 전혀 우리에게 다가올 생각조차 안한다. 우리가 말을 걸어도 대화가 잘 통하지가 않는다. 대화가 안된다는 것은 선생님은 물론이거니와 대화를 나누는 자신도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마음을 좀 더 열어준다면 우리는 그들(우리를 이해 안 해주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만큼 꼴통이지도, 삶의 걸림돌도, 아무것도 아니다. 희망으로 가득 찬 우리이다. 

written by 중3 김민영(예스24파란흙)

 


 

윗 글은 『분홍 벽돌집』에 나오는 주인공과 또래의 아이가 쓴 글입니다.
이 책을 읽은 어른들은 다들 '어른'으로서 '이해'를 한다고 하지만
또래의 아이가 이 책을 보고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거겠죠.
전 아직 미혼이어서 아이가 없지만 중학생 조카가 있어서 아무 일 없이 잘 자랄지
살짝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마도 저 역시 파란흙님처럼 이 책을 읽어보라고 준다면 '무섭다'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죠.
(제 조카는 중1이어서 아직 건네지 못했습니다.-.-;;) 

민영이의 글을 읽고 저의 학창시절을 생각해니
저도 민영이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는 것이 기억나더군요.
그랬으면서도 어른이 되면 치매에 걸린 사람마냥 왜 그 시절을 다 잊어버리는 걸까요?
그게 어른인가? 

암튼, 저는 민영이와 같은 아이들이 이 세상에 거의 대부분이라는 걸 믿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아무리 걱정하고, 선생님들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자기는 자기가 지킬 줄 아는, 그런 똑똑한 아이들이 많다는 걸 말이죠. 

우리 아이들!! 홧팅 입니다.^^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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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서평

1212hena  written by

주인공 준에게,

 
『분홍벽돌집』을 읽고는
특히, 준이 네가 방황 하는 부분을 읽고는
많은 반성을 했다.
 
물론, 노숙자를 때리는 것은 나쁘다.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것도 나쁘다.
그리고 부모님의 총고를 잘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 것도 나쁘다.
그래서 책속에 서 보여진 네 행동을 두둔하거나
네 편에서 이해하진 않겠다.
 
하지만
나의 반성은
그동안 내가 어른들 입장에서만
그리고 모범적으로 사춘기를 보냈던 나의 과거 잣대로만
네 행동을 무조건 나빠! 라고 단정하진 않겠다는 뚯이다.
 
내 아들을 포함해여 준이와 같은 청소년을 ..
그들의 내면에 상처는 무엇이고,
그리고 어떻게 달래주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정말이지 진지한 고민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다. 나는 고민은  했건만
소설속 털보 아저씨 처럼 달래줘야 한다는,
그 실행까지는 옮기지 못했던 것 같다.
 
준이가 만든 영화가
이 세상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봇한 청소년들이
털보아저씨와 같은 좋은 어른을 만나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꿈을 이뤄 나가는 건가를
네가 만든 영화를 통해서 
이 세상에 확인시켜 주면 좋겠다.
 
그리고
수경이가 네 영화를 통해서
다시 부활되었으면 좋겠다.
가족에게까지 손가락질을 받고,
마음을 나누지 못한채
결국 소설속에서는 가시 영컹퀴꽃은 실들어 버렸지만..
네 영화를 통해서 새롭고 당당하고
그리고 이 사회를 이끄는 여성의 리더가 되는 
수경의 모습으로 꽃피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멋질까..싶다.. . 
...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는
청소년기를  아주 모범적으로 살았던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의 사람도 있다. 아니, 많다.
 
성공한 사람들!. 이 사회에 공헌한 사람들!
그들의 청소년기를 살펴보면
모두 다 모범생였던 것은 아니다.
 
나이들수록 느끼는 건
되려 삶의 여러 질곡길을 걸어 본 후에
그 경험을 경험으로만 끝내지 않고,
자양분으로 삼은 사람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진정한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준이  너는 분명, 
너의 바램처럼,
털보 아저씨의 바램처럼,
가시 엉컹퀴인 수경이의 바램처럼,
이 사회에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그러리라  믿어..
 
참,
소설속에서 너는 아직 영화를 만드는 중이지만..
언제쯤 네가 만든 영화를 볼 수 있겠니?
영화 이름이 <가시 엉컹퀴 꽃>일려나?
어떻게 , 어떤 모습으로 그 꽃이 피어나는지
독자로, 관중으로  너의 작품을 지켜 보겠어..
 
그럼 안녕~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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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이 산적해 있지만 한정된 시간 때문에 한 숨 여유가 아쉬울 때일수록 잠시라도 일상을 탈출하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다. 이런 중에 <하늘을 달리는 아이>를 재독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보편성’과 무거운 현실을 자유롭게 뛰어넘는 ‘초월성’이라는 매력에 붙잡혀서이지 싶다. 큰 변화를 쾌하지 않더라도 잠시 책에 몰입하는 동안은 일상을 초월(?)하는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으니까.


달리는 아이 메니악. 다재다능한 아이 메니악. 동물우리에서 숙식을 해야만 하는 끈덕끈덕한 조건들 속에서도 자유로운 존재로만 여겨지는 것은 메니악이 가진 전설적인 능력들 덕분이다. 우울함, 답답함, 부당함이라는 무거움을 떨치고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다.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고아라거나, 피부색이 어떻다거나, 부류적 사고가 어떻다거나 하는 외적인 조건들보다는 본인의 신념에 달린 일이란 걸 이 책은 잘 보여준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단순한 차이가 한 줌의 바람도 통하지 않는 견고한 편견의 벽을 이루고 있는 갇힌 현실. ‘다름’의 차이가 적대감으로 변한 곳이라면 초월적인 힘만이 소용될 정도로 골이 깊겠지. 그러나 편견의 이쪽과 저쪽을 가르며 흐르는 개울에 징검다리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고정관념에 따르지 않는 대가로 무리에서 배척될지라도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아만다 가족’ 은 언제나 존재한다.


아이들의 특징 중 대표적인 것 하나를 꼽으라면 ‘자유로움’이 아닐까싶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불가능 앞에서도 과감한 용기가 되기도 한다. 망설임 없는 결단력으로 통쾌한 변화를 즐기는 존재. 편견이 고착된 성인에 비해 유연한 사고를 한다는 것은 열린 시각으로 보다 많은 것을 꿈꾸게 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이해타산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회피하는 쪽이 어른이라면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쪽은 아이들이다. 때로 무모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용기 있는 행동들이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동력이다.

 

편견이 야기하는 갈등은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상존할 것이다.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들이고 같은 남자이거나 여자라는 공통점은 간과한 채 피부색이 다르다는 작은 차이에만 집중하고 울타리를 친다. 미래의 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불합리한 편견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울타리를 뛰어넘는 용기와 결단력이다.


문학이 최종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보편성이라면 그것에 충실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언제 누가 읽더라도 공감지대에 오래 머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단절시키는 고정관념들을 바람처럼 자유롭게 통과하는 성긴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written by 오래가는향기-yes24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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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면서 머리 속에서 쉴새없이 떠오른건 가네시로 카즈키당..
그의 소설 GO의 느낌과 이 책은 쉴새없이 오버랩됐다.

GO는 재일 일본인의 고등학교 삶을 그린 책이라면..
이 책은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인디언의 생활을 그린 책이다.  

자.. 어느 쪽이 더 처연할까? 

남북으로 나눠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1세대가 아니라.. 나고 자란 일본에서 쉴새없이 이방인 취급을 받는 3세대의 재일 일본인. -_-+ 말하고 쓰는 것도 일본어가 더 편하고 듣는 음악도 일본노래, 보는 책도 일본 만화 인데도, 나보고 자꾸 한국인이란다. 그렇다고 한국에 가면... 동질감을 느끼냐... 하면 절대 아니다. 그곳에선 어색한 한국말을 하는 일본인일 뿐이다. 젠장. 10대란게 처음으로 눈뜬 사랑만으로.. 인생에 대한 계획만으로 짜증나 죽겠는데 정.체.성까지 찾으란다. 에라 모르겠당... 몸으로 부딪치자.

남성 작가라.. 몸으로 부딪인다. 말이 아니라...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 그러나 아놀드에게 세상이란 '인디언보호구역' 일 뿐이었다. 열에 일곱은 알콜중독자인, 세상으로 격리된 인디언 보호구역. 그들의 언어, 그들의 춤, 그들의 문화는 모두 세월 속에서 흩어져버렸고 백인들에게 구경거리고 전락해버렸다. 모든 것을 잃은 인디언들은 그들끼리 똘똘 뭉쳐 백인 사회를 저주했으며.. 그 저주의 방법은 알콜을 들이키거나 마약을 주입하는 것 뿐이다. 가난하고 추하고 헐벗은 인디언... 그리고 그걸 벗어날 희망도 사라진 스포캔 지역의 인디언 약골소년 '아놀드'는 스포캔을 떠나, 백인 사회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여성작가라, 말로 다 때운다. -_-+ 

난 짝퉁 인디언이 더 처연한거 같다. 물론 10대들이란 질풍 노도의 시기를 겪는 불쌍한 중생들이라.. 모두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지만... 사라진 문명의 끝을 잡고 지켜야 하는 미국인 인디언이 보다 힘겨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들의 주인공들은 처연한만큼 냉소적이다. 위트와 유머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하긴 위트와 유머없이 어떻게 자신에게 닥친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있으리요!!)  이 책들의 좋은 점은 동정심을 바라는 주인공들 내세워.. 내용의 동정심과 감상을 모두 짜냈다는 거다.  

아프면 아푸다고 울고.. 힘들면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어려울때 누군가 도와주길 바란다. 주인공의 '가오' 따위는 필요없다. 사는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탄생과 함께 깨달았기 때문에 겉멋따위 부릴 여유가  없다. ㅠㅠ 

주인공들의 진상(?)을 보고 있자니.. 동정심과 감상에 젖어 들 시간이 없다.
냉소적인 그들의 말투를 따라서 끼득거리고 낄낄 거리게 된다.
그러나 보면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되고 눈물이 기어나온다.
울려고 하는게 아닌데.. 이 고등학생들이 분투에 감동감화되서 말이다.
그들도 사는데.. -_-= 18, 내 인생은 식은 죽 먹기야... 라며 주먹을 불끈 쥐게 되는데도.. 눈물이 기어나온다.  

아.. 놔... 어쩌라구...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일단 불면증 환자들.. 이 책 보고 나면 따뜻한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고..
학교 가기 싫고 셤보기 싫다는 10대의 청소년들...
그리고 삶에 지친 우리 모두에게...
인디언들의 삶의 지혜를 들려주고 싶당.

 

written by 다이어트의 여신(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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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던 아이들, 그들은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기 쉬운 계층이다. ‘있는 집’의 자식들이 등 떠밀려 공부하러 학원을 전전하는 동안, ‘없는 집’의 자식들은 관심을 받지 못해 거리로 떠돈다. 거리를 통해서 습득하는 것은 두려움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가족의 관심을 받지 못한 예민한 시절은 고스란히 아픔과 이를 해소할 해방구를 찾게 되는데 같은 ‘동지’들이 모이면 ‘사회의 문제아’로 낙인찍히게 된다.


또래의 어울림이 가지는 위험성은 그들 사회에서의 미성숙한 ‘규율’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폭력적이며 가학적인 규칙은 선배와 후배를 통해 대물림 되며 이를 끊고 나오기엔 여린 어린 가슴이 가진 두려움이 너무 크다. 이들은 그렇게 사회의 최하층으로 전락하고 영영 빠져 나올 수 없는 늪에서 허우적대며 그들과 그들의 자식대로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건강한 사회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 소회계층에 대한 배려와 그들이 스스로 능력을 깨닫고 자신의 힘으로 우뚝 사회에 설 수 있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시스템)가 잘 되어 있는 곳이다. 범죄율도 낮아지고 거리 부랑자와 걸인, 사회 부적응 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도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진국이라 해도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보호까지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곳은 지구상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노력을 하고 그 성과가 있는 사례들은 충분히 있다. 이를 이용하고 점점 심해지는 사회 양극화 속에서 소외받는 아이들을 안아주는 곳.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은 상식만 있더라도 충분히 동의할 일이다.

 


아프리카 케냐 고로고초 마을에서 쓰레기를 주워 생활하던 아이들을 모아 합창단을 설립한지 1년 여, 처음에는 괴성을 내던 아이들이 이제는 경이로운 소리로 세계를 향해 희망을 노래한다. 그들은 이제 세계각국에 초대받아 그들의 목소리로 감동을 전파한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는 국가 지원을 받는 베네수엘라의 음악 교육 재단이다. 오후 1시 30분 학교 수업이 끝나도 폭력과 마약, 매춘이 우글거리는 거리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그들에게는 연주할 악기가 있고 악기를 통해서 하나가 된 아이들이 내는 하모니는 자신들 뿐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감동을 주고 있다. 이는 더 이상 기적의 사례가 아니다 이를 벤치마킹한 여러 나라에서 청소년기에 나쁜 길로 빠지기 쉬운 아이들을 모아 자신의 자존감을 키우고 사회구성원으로서 가치를 가지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우리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우리나라의 교도행정을 비판하면서 회색 담장이 아닌 분홍 벽돌집으로 지어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털보선생님’으로 대변되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어른이 그들 곁에 필요함을 이야기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1등과 서울대를 위한 1%를 위한 교육현장의 ‘들러리’가 되고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을 책임져 줄 곳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길거리에서 교복입고 담배 피는 학생들을 보면 대부분 ‘저 머리에 피도 안마른 XX'라고 하는 어른이라면, 그들을 과연 올바로 봐주고, 인격을 존중해주며, 사랑으로 감쌀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누구나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행동을 했더라도 무엇을 손에 쥐고 있더라도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본인이 가질 수 있도록 주변에서 격려해주는 일은 먼저 어려운 시기를 겪어본 ’어른‘의 일일 것이다.

 


아이들,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은 비단 내 자식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아주 특별한 곳이거나 영화 속에만 나오는 훌륭한 인성의 인생 안내자가 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그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고통, 슬픔이 있기 때문에 어찌 해야 할지 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몰라서 행하는 행동이 철없어 보이고 폭력으로 분출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영영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 아니라 바로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선생님. 그들의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는 선생님만 바뀔 수 없다. 우리가 바뀌어야 선생님도 바뀔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다. 주인공인 ‘준’이 가장 크게 상처받은 대상은 자신에게 자퇴를 강요한 담임선생이었다. 

 

그는 이미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었다. 자기 화를 주체 못하는 거친 짐승일 뿐이었다. 문득 준의 머릿속에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존 키팅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언제나 학생들의 멘토가 되어주던 존 키팅 선생님.

‘내게도 키팅 선생님처럼 이해해 주는 선생님이 있었으면, 키팅 같은 선생님이……’

 

감정으로 학생을 대하고, 학생의 내면을 무시한 채 폭력을 일삼는 선생. 우리가 겪어온 과거의 교육현장에서 아주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랑의 매’로 위장한 폭력은 교육현장에서 더 이상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책을 읽은 많은 어린 학생들이 주인공인 준과 수경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변화에 힘을 낼 것을 응원했다면, 내가 생각한 것은 이런 상황 속에 있는 아이들의 마음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노력일 것이다.


저자가 취재한 불량스런 청소년의 세계는 분명 어려움이 많고 힘이 들었을 것이다. 소설의 내용 중 모든 대화가 그 아이들이 상용하는 속어와 은어로 구성되어 있어 현실감을 더한다. 물론 또래의 아이들이 읽는다면 더 실감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과 친하지 않으면, 도는 들여다보려고 가까이 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디테일이 작가의 진정성을 말해 주는 듯하다.


하이타니 겐지로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동화작가이며 아이들의 교육과 그 또래의 감성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어른과의 소통을 그린 작품들을 써왔다. ‘분홍벽돌집’을 보면서 그 작가의 <태양의 아이>, <모래밭 아이들> 과 같은 작품이 떠올랐다. 작가의 감성과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는 점에서 이었을까.


아이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과연 어떤 배경에 기인한 것인가 연구하고 그들에 한 걸음 다가가 껴안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교육자가 지금 병들어 가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살 수가 있나.” 이 말이 공용어처럼 쓰이는 우리 집 풍경.

공부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언니.

시장에서 반찬 장사를 하는 엄마.

칠공주파와 모여 있는 꼴만 보아도 깻잎머리, 노랑머리, 재수 없는 문제아라고 손가락질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모델을 꿈꾸는 다리가 예쁜 나.

 

 

‘가시엉겅퀴’로 자신을 표현하는 글의 주인공 수경이 떠올리는 자신의 이야기는 어쩌면 자의가 아닌 주변의 ‘손가락질’로 비롯된 아픔과 방황의 길로 유도하는 우리의 의도였을지 모른다.

 (written by 소일-알라딘)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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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홍'이라는 어감에, 그 어감에 담겨있는 색채에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홍벽돌집'이라는 책 제목에 괜한 거리감을 두었다는 것이 떠올라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만 같다.


분홍벽돌집이라고 하니 왠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환상적이고 아기자기한, 흔히 말하는 '핑크빛무드'가 떠올라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닥 당기지 않는 기분으로 누군가 툭 내밀어준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없이 '분홍벽돌집'이 뭐야? 라는 심정으로. 그런데 내가 얼마나 막혀있었던가...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당황스럽게도 아이들이 쓰는 은어와 속어가 마구 뒤섞여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튀어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내 친구들도 많이 썼던 말이고,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아이들 역시 욕이 아니라 일상용어처럼 쓰이고 있는 언어들인데도 '문학작품'이라는 선입견에 막혀 이런 어색함을 느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책장을 넘겨갈수록 아이들의 대화는 내게 척척 달라붙듯이 익숙해졌고, 이야기는 내가 접해보지 못한 환경이지만 왠지 저자의 치밀한 사전조사를 통한 현실적인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 감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청소년 소설에 흔히 가정형편과 그러한 환경으로 인한 부모의 무관심과 학교에서의 차별이라는 성장배경이 있다면 분홍 벽돌집은 그런 성장배경에서도 착실히 자라나는 모범생을 하나정도 끼워넣어주는 희망도 주지 않고 있다.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게 아이들을 끝까지 내몰고 마는 부모와 교사와 수많은 어른들이 있을뿐이다. 아니, 아니다. 그런 수많은 어른들 사이에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부모다운 부모, 스승다운 스승이 있기는 하다. 그것이 어른의 관점에서 바라본 나의 희망이다.

경계선에 선 아이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천성이 나쁜것은 아니지만 그저 환경에 몰려 벼랑끝에 서게 되어버린 아이들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어쩌면 착한아이와 나쁜아이의 구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존감을 갖고 확실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아이와 자기 자신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해 온전히 서있기 힘든 아이의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의 이야기 줄기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겉돌기만 하게 된 준과 반찬장사를 하는 엄마의 경제력에만 의존해야하는 가정에서 언니와도 비교되어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는 수경의 이야기가 엮이며 경계선에서 흔들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감싸주는 어른들의 모습이 아니라 철저히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이 이야기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아웃사이더로 겉도는 준은 그를 철저히 경멸하는 담임에 의해 학교를 관두게 되고, 친구에게 끌려다니며 원하지 않는 폭력과 비행을 일삼게 되고, 자신의 꿈인 모델이 되기 위해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던 수경은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성매매를 일삼게 되어버리는 일들이 오로지 아이들만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기에 내 마음은 더 불편했다.


끝내 선처되지 않고 결국은 소년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나에게 퍽퍽한 현실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기도 했고, 괜히 어줍잖은 이야기로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라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다는 것에 알수없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절망으로 이야기를 끝내버리기엔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경계선의 아이들을 벽 속에 갇혀버리게 하는 것이될지도 모른다. 물론 준의 앞날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경계선에 높이 세워진 벽을 허물고 있는 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한없이 가벼울수만은 없지만 아이들을 이해하고 손을 내밀어준다는 것은 나의 입장과 나의 가치관과 나의 선입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곳에 있는 아이들이 잡을 수 있도록 내 손을 내밀기만 하는 것뿐임을... 생각하게 된다.

 

written by chika(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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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늦게까지 술마시며 공원을 떠돌던 준. 그는 술취한 늙은 노숙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냥 지나치고 싶은 자신의 맘과 달리 준의 친구 웅은 노숙자를 구타하기 시작한다. 잔인한 구타가 이어지고 준은 처음 맘과 달리 노숙자를 구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폭력은 경찰에 의해 멈추게 되고 준은 결국 수갑을 찬 채 경찰서로 끌려가게 된다.

구질구질한 집이 너무나 싫어서 탈출을 꿈꾸는 수경.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운 몸만이 찬란한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 믿는다. 모델이 되고 싶어 모델학원에 다니고 싶어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그녀를 비웃을 뿐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꿈을 위해 위험한 원조교제를 시작하고, 그런 원조교제는 그녀를 경찰서로 몰아넣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준과 수경은 소위 말하는 문제아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자란 준은 허전한 마음에 늘 방황하고, 학교에서도 자리잡지 못하고 책만 보는 생활을 이어간다. 그런 준을 제대로 잡아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교 선생님은 그런 준을 삐딱한 시선으로만 바라보며 결국 자퇴시키고 만다. 수경 역시 부모님에게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존재다. 언젠가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미래를 개척하리라 다짐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원조교제로 돈을 버는 것뿐이다.

이 책은 너무나 사실적이다. 문제 청소년들이 누군가로 인해 감화되고, 새로운 삶을 찾았다...는 판에 박힌 이야기가 아니라, 그네들의 문제로 인한 탈선행위와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여과지 없이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어리고,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이다. 사회의 어른들이 그들은 감싸 안아주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평범하고 모범적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까 두려워하며 선을 긋는건, 어른들이다. 사회의 바깥에 내쳐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버려지는 그 아이들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분홍벽돌집'이라 칭하는 안양소년예술학교에 수감된 준과 수경은 비로소 자신의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갖는다. 그곳은 회색 벽돌집처럼 답답한 학교가 아닌 자유로운 곳이였다. 자신을 표현할 닉네임을 정하고, 영화에 대해 공부하면서 준과 수경은 점차 자신을 찾아간다. 

수경의 안타까운 죽음 뒤, 준은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준은 영화를 만들며 한 뼘 더 성장할 것이다. 그 성장은 삐뚤어져 자라던 그의 모든 것을 쳐낸 뒤, 올곧이 자란 곧은 한줄기가 되어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 역시도 문제아들을 얼마나 삐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봤는지 반성하게 됐다. 무언가를 섣불리 판단하기 보다는, 그 안의 본질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문제 역시 가벼이 넘어가기 보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바라봐줘야 비로소 그들의 '분홍 벽돌집'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리라. (written by po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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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에 의해 씌어진, 가장 솔직하고 진실에 근접한 책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마땅한 책인 하워드 진 교수의 『미국민중사』에 담긴 놀라운 식견을 다른 예술적인 형태로 보여주고자'("서문"에서)  지은이(폴 불)의 각색에 의하여 하워드 진 교수의 강연형식으로 탄생된 이 만화책은 미국인에게는 많이 부끄럽고 아픈 책이 될 것이다. 특히 만화책이라고 흘피 보았다가는 큰 일날 '중요한' 책이 될 것이다. 


특히 만화라는 형식을 통하여 가독성과 접근성을  높이고 그 속에 역사적 자료와 문서 사진, 현장 사진들을 충분히 담아내어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다큐멘터리 + 강의처럼 편집된 이 책은 내용의 옳고그름과 상관없이 우선, 100점짜리 만화책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테러리스트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13) 

 "들어가는 말"에서 만날 수 있는 위의 말이 미 제국주의의 성격을 간결하게,핵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테러를 핑계로. 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숨겨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이 책에는 모두 발가벗겨져 드러난다. 

책에서 "1. 국내의 제국"부터 시작되어 "12. 은밀한 행동과 그 저항"에 이르기까지 보여지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행한 악덕과 만행의 증거물과 그 참담한 결과물들이다. 1890년 운디드니 인디언 학살(19~)로 부터 시작된 이 제국의 만행은 1898년 쿠바 식민지를 확보하려는 "2. 스페인·미국 전쟁" (42~)을 거쳐 "3.필리핀 침공" (64~)까지 이어진다. 

이 전쟁(=필리핀 침공)에서 필리핀 사람 20만명이 죽었는데 상당수는 굶주려 죽었으며 미군은 4천 명이 전사했습니다. 필리핀 점령은 계속 이어질 미국 식민지 사업의 한 모델이 되었습니다. (85) 

그리고 이어지는 1,2차 세계대전과 냉전 속에서도 미국의 역할은 역시 자국의 이익만을 챙기는 제국의 모습이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의 의식은 자라남을 놓치지않고 다루고 있는데 이는 "5. 계급의식의 성장"(116~)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가난하지만 결코 가난하다고 여기지 않고 자라났던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하워드 진은 이와 같은 확신을 보여준다. 그는 결국 미국이라는 '이 나라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믿는 급진주의자가 되었다.'(126)고 고백한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 폭격기 조종사로서 프랑스 민간인들가지 죽게 만든 '네이팜 폭탄'을 투하한 경험도 고백하고 있다.그리고 이어진 핵폰탄과 함께 2차대전은 종전이 되었고 그는 '결코 다시는'(148) 전쟁의 앞길에 서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그는 섬세한 시각으로 이 당시에도 횡행하던 인종차별에 대한 지적도 해두고 있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에 더하여 1960,70년대에는 민권의식의 성장도 가속도를 붙여 공식적인 인종차별 철폐에까지 이르게 된다. 물론 그도 한 몫을 한다. 하지만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세계에서는 민중 자주 혁명이 일어나고 미국은 이를 저지하면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여 애쓴다. 하워드는 지속적으로 평화와 진실을 추구하는 편에 써서 전쟁을 옹호하고 발발하는 이들에 맞서 나간다. 그러나 그 사이 중동에서의 세력다툼은 치열해지고 그 결과물은 최종적으로 9.11로 나타난다. 이제 어디에도 희망을 물을 수 없는 테러 대 테러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기나긴 강연, 광포한 제국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의 끝에서도 끝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여기 조금 길어도 그의 말을 옮겨둔다. 나도 그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우리는 보통 지금 이 순간의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 되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제도의 갑작스런 붕괴에 놀랐던 기억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독재자에 대해 예상치 못했던 큰 저항이 일어나고 무적의 권력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이 사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283)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빛나던 우리, 승리의 기억도…. 그리고 이 길에 당신도 우리도 함께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머나먼 남의 나라, 식민지 종주국, 미국에 당신같은 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단된 이 땅의 사람으로서 고마워합니다. 함께 갑시다. 사람사는 길로 ~

 어려울 때에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잔인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열정과 희생,용기와 관용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놀라운 승리인 것입니다. (284) 

2008.12.1. 그리고 이 책에서 배운 잊지못할 말씀, 

사랑을 받는 아이는 결코 자신이 가난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123)


- written by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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