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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어머니께서 추천하셔서 읽게 된 '분홍 벽돌집'. 아주머니께서는 나에게 이 책을 건네실 때 '무서운 책'이라 하셨는데, 겉표지를 보니 정말로 묘한 무서움이 느껴졌다. 난 그렇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준과 수경이는 나와 같은 나이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행동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수경이의 행동에 공감을 느낀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우리 나이때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없다. 서빙 알바를 하고 싶어도 18살이 넘어야 하고, 게다가 술집이라하면 미성년자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할 뿐더러 햄버거집 알바도 거의 19살정도가 되어야 할 수 있다.  

우리 나이때에 돈이 뭐가 필요있겠냐고 묻는 어른들 정말 많다. 지금은 혈기왕성한 10대이다. 더 예뻐보이고 싶고, 더 날씬해보이고 싶고, 더 꾸미고 싶은 욕구가 차오른다. 어른들은 다들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때는 안꾸며도 예뻐." 하지만 우리들 입장에서는 눈에 뭔가 좀 더 바르면 눈이 커보이고, 입에 좀 바르면 입이 생기있어 보이는 걸 느끼면서 자기만족을 한다. 그리곤 예쁘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뭐라하든지간에. 우리 때에는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없다. 단지 부모님의 용돈에만 의존할 뿐이다.  

그런데 수경이는 내가 생각하기에 용돈을 안 받는 것 같다. (수경이 말대로라면) 그렇다고 해서 몸을 파는 것은 해서는 안될 짓이다. 자기의 몸은 그 누구의 몸도 아니다. 나 자신의 몸이기 때문이다. 먼 사람 얘기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가까이 느껴진다. 그이유는 이것이다. 가끔 심심할 때 채팅을 할 때가 있다. 모르는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기쁘고,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그 채팅을 했을 때마다 쪽지나 대화가 한두 통씩 꼭 온다. 돈 많으니까 오라고 말이다. 또는 성적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어디가 크니 작니 하며 말이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 모두 남자였다. 그래서 난 살짝 남자란 존재가 두렵게도 느껴졌다. 그런데 성적인 만족을 느끼기 위해 만들어진 방들 중 정원이 꽉 찬 방이 있었다. 그렇다, 여자도 동의를 한다는 것이다. 경악했다. 과연 그 여자들은 그 남자가 좋아서 만나는가 그건 절대 아닐 것이다. 단지 돈!이라는 전제하에 만나는 것이다.  

다시 수경이로 돌아가자, 가시엉겅퀴 그녀, 아름답지만 찔릴까 두려운 존재. 그녀는 굉장히 아름답다. 하지만 내부는 그렇지 않다. 수경이도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다. 가시, 뾰족한 것, 찔리면 아픈것. 자신의 아름다움이 가시라는 것에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노숙자를 때린 혐의를 가진 준. 그의 삶은 웅이를 만난 후 급속도로 아래로 치닫았다. 준을 보니 꼭 우리 학교 남자애들이 떠올랐다. 남자애들은 무엇이 멋있다라고 생각을 할까. 놀아보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을 보니 불쌍하다라는 생각이 났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으면 굽실거리고 자신보다 레벨이 낮다 싶으면 떵떵거리니 어이가 없었다. 담배피고 술마시면 노는 줄 아는 그들. 정말 꼴불견이다. 나도 하라면 할 수 있다. 그것쯤이야, 하지만 난 더러워서 안 할 뿐이다. 겉에서 봤을 땐 멋있을 지 몰라도 폐를 보면 너무나도 더러울 테니까. 웅도 아마 그중 한명일 것이다. 아니다 그들보다 더한 존재이다. 친구를 개떡으로 보니까 말이다. 말도 안되는 '우리들의 수칙'을 주장하며 한 아이의 삶을 벼랑끝으로 내던지게 했으니까 말이다. 진정한 우정이란 서로를 감싸는 건데 '우리들의 수칙'에서는 웅을 위한 수칙일 뿐이다. 하지만 나였어도 '우리들의 수칙'에 따랐을 것이다. 맞는 것이 두려워서... 그렇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다. 맞는다는 것은 육체적고통이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족보에 빨간줄이 그어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육체적 고통보다 더 할지 모른다. 취직할 때도 결혼 할 때도 모든 것의 걸림돌이 될 것이니까. 하지만 다행인것은 준이가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는 것이다. 한남자, 털보아저씨로 하여금 자아를 되찾은 것이다. 

이 두명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사회가 이 둘을 내친 것. 누군가가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져주었다면 안 일어났을 일들이었다. 우리 나이 때에는 부모라는 것이 굉장히 소중하다. 하지만 우리 나이 또래들은 그런 것을 잘 못 느낀다. 나 또한 그렇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부모님과 대화하는 일은 거의 없고,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나의 얘기를 말한다. 내 친구들과 얘기를 하면 서로 공감하면서 친해질 수 있고, 편하고, 내 이야기에 맞장구도 잘 쳐주니까 말이다.  

몇몇 이렇게 느끼는 부모님들이 계신다. 우리 자녀는 아마 저와 제일 친할 거예요. 그건 어른들만의 생각이다. 어른들은 거의 어른의 틀에 맞추어서 생각을 한다. 말이 통할 리 있겠는가. 예를 들자면 우리 어머니와 나의 대화는 이렇다. "나 내일 친구들이랑 놀러가","공부는 하고 노는 거니? 시험 성적 이렇게 맞고선 놀 생각이 생기니?" 우리 두 모녀의 대화의 끝은 서로 화내고 끝이 난다. 어느 집안이나 똑같을 것이다. 애들과 대화해 보니 다들 나와 같았다. 절대 어른들은 이런 것을 묻지 않는다. 그애는 어떻게 생겼니, 그애는 무엇을 좋아하니, 너랑 얼마나 친하니, 그애랑 어떻게 친해졌니 같은 질문 말이다. 그러니 부모간의 대화는 거의 하질 않을 수 밖에. 누가 짜증내면서 말을 하고 싶을까 말이다. 내일이 되면 이런다. 공부는 하고 가니, 몇시에 오니, 빨리 놀다가 와서 책 좀 봐라. 기분 좋게 놀러갈 마음이 생기겠다 말이다.  소통이 안되니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를 찾는 것이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이다. '분홍 벽돌집'에서 나오는 체육선생님 정도는 아니지만 그들은 전혀 우리에게 다가올 생각조차 안한다. 우리가 말을 걸어도 대화가 잘 통하지가 않는다. 대화가 안된다는 것은 선생님은 물론이거니와 대화를 나누는 자신도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마음을 좀 더 열어준다면 우리는 그들(우리를 이해 안 해주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만큼 꼴통이지도, 삶의 걸림돌도, 아무것도 아니다. 희망으로 가득 찬 우리이다. 

written by 중3 김민영(예스24파란흙)

 


 

윗 글은 『분홍 벽돌집』에 나오는 주인공과 또래의 아이가 쓴 글입니다.
이 책을 읽은 어른들은 다들 '어른'으로서 '이해'를 한다고 하지만
또래의 아이가 이 책을 보고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거겠죠.
전 아직 미혼이어서 아이가 없지만 중학생 조카가 있어서 아무 일 없이 잘 자랄지
살짝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마도 저 역시 파란흙님처럼 이 책을 읽어보라고 준다면 '무섭다'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죠.
(제 조카는 중1이어서 아직 건네지 못했습니다.-.-;;) 

민영이의 글을 읽고 저의 학창시절을 생각해니
저도 민영이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는 것이 기억나더군요.
그랬으면서도 어른이 되면 치매에 걸린 사람마냥 왜 그 시절을 다 잊어버리는 걸까요?
그게 어른인가? 

암튼, 저는 민영이와 같은 아이들이 이 세상에 거의 대부분이라는 걸 믿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아무리 걱정하고, 선생님들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자기는 자기가 지킬 줄 아는, 그런 똑똑한 아이들이 많다는 걸 말이죠. 

우리 아이들!! 홧팅 입니다.^^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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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들풀처럼(rg)

저물어가는 봄날 일요일 아침, 느즈막히 앉아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마시는 차 한잔에는 우리네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없어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행복한 순간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세 잔의 차』를 마시며 저는 그런 차 마시는 순간들을 생각하였다가 화끈 달아오르며 부끄러워지기 시작합니다.

 

 히말라야 등반시 길을 잃었다가 우연히 신세를 지게된 마을에 학교가 없음을 깨달은 주인공 그레그 모텐슨이 다시 돌아와 산간오지 마을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게 되고 그 일은 여러 사람들의 도움과 주인공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중앙아시아 협회'의 설립으로 이어져 수많은 학교들을 중앙아시아 지역에 설립하게 된다는 어쩌면 평범할 수도 있는 이야기가 이 책의 주요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만나게 되는, 만나야 하는 이야기는 학교의 설립과 그 고마움과 그 혜택에 대한 것들은 물론 거기에 더하여 이런 아름다운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그 일이 어떻게 여러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며 인정받았는지를 깨닫는 일입니다. 그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따듯한 눈길과 우리의 부족한 점을 한번 더 되돌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회르니는 국제전화를 걸었다. 그는 스위스에 있는 어릴 적 친구에게 전화했다.

 "나야, 장." 그가 프랑스어로 말했다.

 "나는 카라코람에 학교를 지었네. 자네는 지난 오십 년 동안 무얼 했나?" 그자 자랑했다. (148)

 

 장 회르니는 주인공 그레그 모텐슨의 일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가장 큰 후원을 아끼지 않은 후원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백혈병에 걸려 죽기 몇 주전에야 첫 학교가 설립되었고 그가 이 사실을 친구에게 자랑하는 장면이 바로 위의 글입니다. 책을 읽다 이 부분에서 울컥 눈물 한 방울 떨어집니다. 기부라는 일에 돈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양의 재산을 기부하고도 바라는 것이라곤 자신이 그 일에 큰 공헌을 했다는 사실, 그것도 언론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 친구에게 자랑하는 모습은 한 사람의 품성을 오롯이 느끼게 해 줍니다. 물론 그런 사람을 만난 것도 주인공의 삶의 행보에 따른 것이겠지요.

 

 최근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해외 오지의 난민들이나 아이들에게 적지 않은 관심들을 쏟고 있습니다. 절대빈곤 - 굶어죽는 아이들이 없는, 기초치료를 받지 못하여 죽어나가는 아이들을 줄려나가는 운동에 많은 이들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참 다행한 일입니다. 우리가 먼저 앞서 그 길에 선다면 우리의 아이들도 함께 그 길에 나설 것임을 이 책은 주인공과 그의 달을 통하여서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임이 드러납니다. 슬쩍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아이가 아빠는,엄마는 이런 아이들을 위하여 조그만한 무언가라도 하고 있는지 물어볼 때, 그래, 아빠는, 엄마는 ~~~이런 일들을 하고 있단다. 이제는 너도 함께 이 활동/기부를 해야겠지라고 떳떳이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이 책에는 이러한 뜻깊은 활동을 통하여 - 지은이는 파키스탄 분만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터에 이르기까지 학교 건립 등의 일을 합니다. - 마침내 우리를 깨우치는 커다란 울림이 탄생합니다. 예전에는 막연하던 느낌을 마침내 이처럼 확실한 선언으로 만나게 됩니다.

 

 "나는 테러와 싸우기 위해 이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걱정되기 대문에 이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일하면서 몇 가지를 배웠어요.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지역의 사람들이 단지 우리를 미워하기 때문에 테러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어요.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할 만큼 밝은 미래를 아이들에게 주지 못하기 때문에 테러가 생기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04)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우리가 해야할 일들은 달라집니다. 우연한 계기로 산악 오지에 고마움을 표하러 시작한 일이 중앙아시아 어린이들의 미래를 바꿀 희망으로까지 번져나가는 과정이 실감나게 소개된 이 책은 원작을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개작한 것입니다. 덕분에 더 쉽고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적지 않은 화보까지 더해져 있기도 합니다. 특히 끝부분의 주인공의 딸, 아미라가 들려주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지금의 활동 이야기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특히 아이들 스스로 이뤄나가는 '평화를 위한 동전 모으기'는 얼마전 랑딸도 학교에서 집에 가져온 "이웃사랑회" 동전 모으기 처럼 쉽고도 뜻깊은 활동입니다.

 

 하여 이 책은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과 반드시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은 그런 책입니다. 지난 해부터 랑딸도 자신의 이름으로 한달에 얼마씩을 기부하고 있지만 그 참뜻은 제대로 느끼지 못할겁니다. 저도 랑딸과 함께 다시 한 번 이 책을 만나며 그 참뜻을 나눠보렵니다. 꼭 한 번씩 만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평화의 유산을 남기고 싶다면, 폭탄이 아닌 책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210)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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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그들의 가슴 속 이야기를 풀어낼 마당을 열어주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 공부에도 석 재미를 못 느끼는 수경은, 
모델이 되어 집안을 일으키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수경의 꿈을 헛바람으로 치부하며, 수재는 아니지만 착실함이 장점인 수경의 언니에게 모든 기대를 건다. 결국 집 안 어디에도 발붙일 곳을 찾지 못했던 수경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알바’를 할 수밖에 없었다.

     미혼모인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준.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것일까,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는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를 지켜보던 일진회 녀석들의 눈에 띄면서 결국 학교에서도 자퇴를 하고 만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두 사람은 그저 어디론가 향해 걸어가고 있었지만, 그 길이 제대로 가고 있는 지에 관한 확신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결국 분홍 벽돌로 둘러싸인 소년원에 가게 된 두 사람. 세상을 향해 어떤 꿈도 꾸지 못했던 그들은, 그곳에서 만난 털보 선생님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소설의 두 주인공인 수경과 준은 현대의 경쟁지상주의에서 떨어져 나온 아이들이다. 둘은 학교 공부에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의 사회적 ․ 경제적 위치는 전형적인 엘리트들과는 거리가 있다. 수경은 가난을 물려받았고, 준은 아버지의 부재를 물려받았다. 사실 그런 것들은 어떻게 보면 그들 자신이 어떠한가에 관해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들이 선택한 것도, 선호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이 사회가 그들의 그런 아픔, 혹은 상실을 확대재생산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난의 대물림은 좀처럼 끊어내기가 어려운 굵은 동아줄처럼 수경을 묶고 있었고, 어떻게든 가난으로부터 탈출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결국 자신이 가진 가장 비싼 것을 팔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돈을 주고 구입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자본주의의 아름다움’이여. 좀처럼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다 결국 일진회에 들어가게 된 준은, 학교의 누구로부터도 이해를 받지 못했고 결국 쫓겨나듯 자퇴를 하고 만다. 학교로서는 불량한 그를 쫓아냄으로써 나머지 학생들을 보호해야했다. 어차피 낙오자는 나오기 마련이었기에, 준 역시 그들이 보호해야 하는 한 명의 인격체라는 사실은 교육학 개론 첫 장에 쓰인 그대로 책장의 가장 아래쪽에 처박혀 있을 뿐이다. 경쟁지상주의라는 ‘신성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작가는 그들로 하여금 영화라는 소재를 통해 자신들 안에 담긴 이상을 표현하도록 만든다.(사실 이런 꽉 막힌 상황에서 소설 속 두 주인공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우선은 내 가슴 속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부터 시작하는 법이기에, 그들의 이러한 시도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그래서 누군가는 그렇게 사람들이 말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좀 더 많은 젊은이들이, 좀 더 일찍부터 자신들의 맑은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세상은 좀 더 다양하면서도 흥겨운 곳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무엇인가를 이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기성세대’?)의 책임은 그런 가능성의 세대들을 자신들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꿈을 풀어낼 수 있는 충분한 마당과 광장을 열어주는 일일 것이고. 언제쯤 그들은 아이들을 분홍 벽돌집 안으로 밀어 넣는 일을 그만 둘까.

written by
노란가방-rg 







Posted by 다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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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말라야 오지의 희망 이야기 세 잔의 차
_ 그레그 모텐슨, 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다른,2009-05-30 00:00:00
 
 


 
며칠 전 팔자에도 없는 미팅을 나갔었다. 아는 분이 심심하게 살지 말고, 이런 저런 사람들도 만나 보고 재미나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을 것이라며, 주선해 주셨다.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완전히 실망이였다.  

그들은 내게 이 뭐냐고 물었다.
나의 꿈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있는 학교재단을 세우는 것이다. 입학과 졸업이 어려우나, 그 안은 최대한의 학생들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한다. 때로는 지겹기도 하고, 그 시간에 유흥을 즐길 수도 있지만 언젠가 내가 만든 학교에서 신나게 자신들의 역량을 시험해 볼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다지 힘들지만은 않다. 다시 힘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꿈을 미팅에 나온 이들은 전혀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저이는 나와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이로구나 하며 경계심만을 보여줬을 뿐이다. 뭐, 조금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언제나 사람들은 꿈에 대해 물어보고 질려 한다. 내 꿈이 그렇게 거창한가?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학교 하나 짓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냐고 타박하기 일쑤다. 꿈에서 그만 허우적대라고 말들 한다. 정말 개인은 아무리 해도 안되는 걸까? 한 개인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건 정말 어려운걸까?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질 때쯤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자신을 그레그 모텐슨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 줬다.

48살에 아버지를 잃고, 뇌막염과 간질을 앓다 죽어간 여동생을 추모하기 위해 오른 K2등반에서 그는 코르페 마을 사람을 만났다. 등반 코스에서 벗어나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그를 구해 준 이들이였다. 코르페 마을 사람들은 그레그를 헌신적으로 보살펴 줬고, 이에 그레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눠 주었지만 어딘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처음엔 그저 아이들에게 학교비품이라도 제공하면 조금 더 나으려나 하는 생각으로 방문한 '학교'라는 곳에서 그레그는 소리없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마을 공동체가 모두 돈을 모아 선생님의 급여 1달러를 마련하는 것조차 힘든 일이지만, 공동체는 아이들의 교육을 지켜 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은 교실의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는 아니,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빈 공터를 교실삼아 3일에 한번 오는 선생님을 눈 빠지게 기다렸다. 책상? 책? 노트?? 이건 정말 꿈에나 볼 일이다. 그냥 찬 바닥에 엎드려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걸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 안달하는 아이들. 칠판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공터에서 일제강점기에 목숨걸고 우리말을 교육했던 그때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 미래를 꿈꾸는 걸 계속 이어 나가고 싶어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들의 불안한 영혼이 부럽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신들보다는 우리가 행복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다녔으면 합니다. 당신들이 가진 것 중에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가장 바라는 것이 배움입니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레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처분하고, 어떻게 하면 학교를 지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궁
하면 통한다고 하던가? 과학자이자, 뛰어난 경영인 장 회르니와 만나게 된다. 장은 덥썩 그에게 만 달러를 준다. 허생전의 변씨 부자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이다. 이렇게 하여 드디어 그는 꿈에도 그리던 코르페 마을로 돌아 간다. 

사실 코르페 마을을 거쳐 간 이는 그레그가 처음은 아니다. 수많은 인종의 사람들이 왔다 갔고,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한 명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립서비스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레그는 신의를 지키기 위해 돌아 왔다. 학교를 지을 돈을 갖고서. 드디어 학교를 짓게 된다! 그레그는 벅차 오르는 전율에 감동했다. 그러나 그 감동도 잠시. 자신은 학교를 지어야 하는데 왜 다리를 먼저 세워야 한다는 건가? 자신이 이용만 당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자신의 계획에만 급급해서 주변를 제대로 인지하고, 배려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코르페 마을은 외부와의 소통이 매우 어려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느다란 외줄에 의지해서 산과 산을 건너야 하는 극악한 환경조건이였기에, 다리가 없다면 그레그가 전 재산을 들여 장만한 자재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되는 것이였다. 다리를 다 놓고 난 다음에도 문제는 여기저기서 터졌다. 우리 나라만큼은 아니지만 미국도 빨리 빨리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라, 좀체 서두르는 법이 없는 그곳 사람들이 너무 답답한 것이다. 매일 매일 현장에 나가 그들을 독촉해 봤지만, 독촉할수록 일의 진행은 더디기만 했다. 답답함만 가득했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같은 그레그에게 마을 촌장은 차를 건네며 얘기한다.

“자네가 발티족과 처음으로 차를 마신다면 자네는 이방인이네. 두 번째로 차를 마신다면 자네는 환대받는 손님이 된 거지. 세 번째로 차를 함께 마시면, 가족인 된 것이네. 그러면 우리는 자네를 위해 죽음도 무릅쓰고 무슨 일이든 할 거라네.”


 

그레그는 '이해' 와 '신뢰'를 배웠다.

그 후 그레그는 좀 더 본격적으로 다른 마을에 학교를 짓기로 결심하고 이런 그를 장이 지속적으로 후원해 주기 시작한다. 그렇게 중앙아시아 협회가 설립됐고, 현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지대에 학교 짓기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78곳의 학교를 세운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코란의 여성은 교육시키지 않는다에 당당히 반기(?)를 들고 여성들을 위한 교육에도 몰두하고 있다.


한 사람의 생각이, 한 사람의 용기있는 행동이 지금 세계를 바꾸기 위한 물결을 힘차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겸손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그레그를 보고 난 새삼 이 남자는 뭔가? 하고 생각했다.
어디 외계에서 왔나?  남의 나라에 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은 그의 조국과는 편치 않은 관계이지 않은가. 실제로 911 테러 이후 그레그의 활동에 대해 욕을 하는 이들도 많이 생겼고, 실제로 많은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그레그는 자신을 향한 적대감에 이렇게 대응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2006년 현재 114기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미사일 1기에 레이시언 유도 시스템을 더한 비용은 대략 8만4천 달러쯤 된다. 그 돈이 있다면 수만 명의 학생들에게 30년 동안 균형 잡힌 교육을 제공할 학교를 스무 곳 이상 세울 수 있다. 어느 쪽이 미국의 안보를 지켜줄 것인가?
 

테러를 무찌르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테러범들이 존재하는 이 나라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이곳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생산적인 시민이 되는 것과 테러범이 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저는 교육이 그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무력만으로 테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는 911이전보다 더 안전해지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평화의 유산을 남겨주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이 전쟁을 최종적으로 이길 방법은 폭탄이 아니라 책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 그는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인가 정확히 아는 사람인 것이다.
만약 그가 코르페 마을과 한 약속을 그냥 립서비스로 알았더라면, 신뢰를 저버렸다면? 만약 그가 꿈을 이루기 위한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여전히 코르페 마을엔 휑한 그 차디찬 바닥에 아이들은 엎드린 체 공부를 하고 있었겠지. 만약 그가 자신과 다른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은 체 그저 감독관으로써의 위치를 고수했다면, 그레그는 이방인에 그쳤을 것이다. 뭐 운이 좋으면 환대받는 손님 정도는 됐겠지만, 절대로 코르페 마을에 가족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는 내게 물어 본다. 정말 당신이 꿈꾸는 것이 그것입니까? 그렇다면 용기를 잃지 마세요. 망설이며 주변에서 서성이지 말고, 차라리 맨발이여도 괜찮으니까 한발 더 내딛으세요. 세계를 바꾸고 싶으세요? 그것도 좋겠지만 일단 당신과 관계를 맺는 이들을 보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게 더 나은 일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세 잔의 차를 마실 때까지 좀 더 느긋하게 그들과 함께 하길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과 당신과 함께 하는 이들을 모두 행복하게 해 줄 겁니다. 한 사람의 힘은 결코 미약하지 않습니다. 당신으로부터 세계가 변합니다.

(written by seubas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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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직도 여자들이 교육을 받기 힘들다. 극심한 가부장제에서 성장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은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쓰고 학교에 등교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학교에 간다는 사실이 가족들, 특히 아버지 등 가부장에게 알려지면 학교에 못 갈수도 있다. 아프가니스탄 여학교에서는 폭탄이 터지거나 여교사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아프가니스탄 소녀들에게 있어 배운다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기도 하다. 탈레반은 퇴각했지만 아직도 카불 이남 지역에서는 그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여자들의 삶은 대테러 전쟁 이전과 비교할 때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6120029

 지난 주말에 예멘에 사는 열 살 이혼녀 누주드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이슬람 국가에서 여자로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그 책을 읽으며 화가 났습니다. 누주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이 학교에 가는 일이라고 했는데도 그 행복한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한참 배우고 자라야 할 아이가 공부는커녕 자라기도 전에 어른(!)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죠.  오늘 검색을 하다가 위의 글을 읽고 나니 또 한 번 한숨이 나옵니다. 배운다는 것이 목숨을 건 일이라니요?  

 

문득 『세 잔의 차』가 생각나더군요. 그레그가 만난 아프카니스탄 두르카니 고등학교의 우즈라 파이자드 교장은 전쟁 후에 탈레반이 물러가고 여자아이들이 교육을 받으러 올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어프카니스탄의 문제들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 교육이라는 것을 깨닫고 무너진 학교를 복원하려 애쓰고 있었죠. 그걸 본 그레그는 그녀를 도와줍니다. 

이렇듯 세상엔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찾을 때까지 투쟁하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그러려니 오래된 풍습이니 해보나마나야 하고 포기하며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서라도 공부를 하겠다는 아프카니스탄의 여자아이들이나 그 아이들을 위해 무너진 학교를 복원하려고 노력하는 우즈라가 있고, 기가 막힌 풍습의 희생양이지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누주드가 있는 한, 언젠가는 아프카니스탄이나 예멘이나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받는 여자들에게도 '자유'를 만끽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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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페 학교>

 

파키스탄의 학교가 궁금해! 

학교는 대개가 작고 직사각형 모양이고 아늑하대요.
흙바닥이지만 시멘트 바닥보다 따뜻하답니다.
벽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고, 계단을 따라 빨간 화분이 놓여 있대요.
교실엔 칠판과 작은 책상 몇 개가 있으며 항상 교실 밖에서 두세 개의 수업이 이루어진답니다.
보통 한 교실에서 네다섯 개의 수업이 이루어진다네요. 

학생들은 책상과 다른 물건들을 나누어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기적이지 않고 가난하기때문에 물건을 나누어 사용한대요.

 

<다쑤 게곡의 론두 학교> 

아미라는 그곳에서 징징거는 아이들을 한 명도 보질 못했다고 하네요.
항상 건물이 없는 밖에서 수업을 하다가
건물이 있는 학교에 다니는 걸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말이죠. 

아미라가 다니는 미국의 학교만큼 크지도 현대적이지도 않지만
아이들은 착하고 많은 것을 배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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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바보'가 세상의 화두가 되었다. 공동체 대신에 개인이 들어선 자리에, 여유로운 삶 대신에 성공한 삶이 들어선 자리에서 보면 '바보'들은 드물다. 식량이 부족해도 손님이 오면 모두 내놓는 시골인심에 대한 향수를 희말라야 오지의 촌장에게서 발견할 때 오는 가슴 따듯함을 우리는 그 '바보'들에게서 느낀다.

스스로 바보가 되고 싶어하기도 했고, 별명으로 바보가 붙기도 했던 김수환 추기경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주는 반향은 크다. 먼 친척보다 먼 분들이지만, 수 십만에서 수백만의 조문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우리 자신이 가진 순수성의 죽음때문이 아닐까.

맨발이 기봉이는 달린다. 누구 보다 똑똑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진심으로 어머니를 살아하는 기봉이는 어머니의 틀니를 위해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안고 달린다. 기봉이는 남들에게 많은 일을 해주고도 아주 작은 일삯만 받는 '바보'이지만, 그렇게 계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보다 훨씬 행복한 '바보'다.

학교를 간절히 원하지만, 자재가 준비안되 1년을 더 기다려야 함에도 촌장 알리는 느긋하다. 수 천년 동안 없던 학교가 올해가 아니라 내년에 세워져도 알라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알리에게 시간은 째깍째깍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자신이 할 일을 꾸준히 하면서 만들어 가는 삶들의 과정일 뿐이다.

폭탄과 학교를 선택하라면 어떤 것을 선택할 까? 폭탄은 죽음과 증오를 낳고 테러를 낳지만, 학교는 연대와 희망을 낳는다. 그렇게 당연한 것임에도 군산복합체의 경제논리에 휩싸인 국가는 진짜 바보짓인 폭탄과 군인들을 공수한다.
<희말라야 오지의 희망이야기, 세잔의 차>(다른)속의 실제 주인공 그레그 모텐슨이 이 시대의 또다른 '바보'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다.

이익과는 멀고, 화려함과는 다르고, 물질적 풍요와는 먼 곳에서 인간의 삶의 진정한 향기가 펴 오른다.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나,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끼는 따뜻한 감성이 각박한 경쟁적 삶에서 다시 왜곡되지 않는다면 그 향기로 인해 희망이라는 글자를 우리 지구촌 모두에 새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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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 - 히말라야 오지의 희망 이야기』의 저자인 그레그 모텐슨은 히말라야 K2등반 하다 길을 잃어 도움을 받은 파키스탄 오지의 코르페 마을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코르페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건립하겠노라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켰죠. 그런 그의 생각과 똑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것 아세요? 바로 산악인 엄홍길 대장입니다. 

엄홍길 대장을 모르는 분은 없으실 거예요. 그는 네팔의 히말라야 오지 팡보체 마을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데 보은의 뜻으로 초등학교를 건립하기로 했다네요. 

각기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이 '히말라야'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조금 놀랍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곳에 사는 아이들이 (비록 나라는 다르지만 '히말라야'라는 산 밑에 살고 있는 그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교육의 기회를 제대로 가지지 못한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인 구달은 " 한 인간의 모험과 용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켰다."라고 했습니다. 

그레그 모텐슨과 엄홍길 대장, 그들의 모험과 용기가 보여 준 아름다운 세상!!
두 남자의 히말라야 아이들에 대한 사랑에 박수를 보냅니다.

 

  

 

세 잔의 차
카테고리 아동
지은이 그레그 모텐슨 (다른, 2009년)
상세보기

제가 수많은 오지를 다니며 본 아이들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앞길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말라야 자락에 있는 팡보체 마을에 학교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행동한 것을 보고 정말 기뻤습니다. 저자의 용기 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내며, 우리 아이들도 이 책을 통해 어렵게 살고 있는 아이들을 한 번쯤 생각하길 소망합니다.  _엄홍길(산악인, 『80000미터의 희망과 고독』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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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그가 파키스탄에 학교를 짓겠다는 결심은 왜 하게 되었을까요? 

여동생 크리스타의 목걸이를 묻고 추모하기 위해 K2봉을 오르려던 그레그는 길을 잃게 됩니다. 따뜻한 옷과 먹을 것이 없어 조만간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쌓여 있을때 천만다행으로 짐을 실어주었던 셀퍼 무자파를 다시 만나게 되고 무자파가 사는 마을 부족들의 도움을 받게 되죠. 

무자파는 발티족이었는데 그들은 지극정성으로 그레그를 돌봅니다. 몸이 완쾌된 후 그레그는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주면 좋을까 고민을 하기도 하는데 코르페의 아이들과 함게 시간을 보내면서 동생이 크리스타를 많이 떠올리게 됩니다. 그레그는 그렇다면 코르페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필요한 교과서난 비품을 제공해주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촌장인 하지 알리에게 학교를 보여달라고 하죠.

 

 "아침을 먹은 후 하지 알리는 가파른 길을 지나 공터가 있는 곳으로 그레르를 데려갔다. 78명의 소년과 4명의 소녀가 공부하기 위해 언 땅 위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지 알리는 코르페에는 학교 건물이 없고, 하루에 1달러를 받고 가르치는 교사 한 명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1달러도 마을 사람들이 부담하기에 버거운 돈이었다. 아이들은 이웃 마을아이들과 같은 교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교사가 일주일에 세 번씩 코르페에 왔다. 교사가 오지 않는 날에는아이들끼리 공터에서 숙제를 했다."p40 

하지만 그곳은 학교라기 보다는 그냥 공터였답니다.
반듯한 학교 건물은 차치하고 조그만 방조차도 없이 그냥 공터에 앉아 돌을 책상 삼아 아이들은 공부를 했어요.ㅠㅠ  

 

그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그레그의 마음이 어땠을 지 알 것 같습니다. 
여동생 크리스타를 추모하고 목걸이를 묻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을 깨닫게 되죠.
그레그는 하지 알리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합니다. 

"이곳에 학교를 짓겠어요. 약속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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